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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이래저래 심란할 때 굴튀김! 하루키!!…'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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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31 : 이래저래 심란할 때 굴튀김! 하루키!!…'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수필을 비롯해 여러 책들의 서문·해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각종 인사말, 짧은 픽션에 이르기까지 실로 '잡다'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 되었습니다... 편집자와 협의하는 자리에서 줄곧 '잡문집'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뭐, 그대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라는 쪽으로 얘기가 흘러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 머리말: 어디까지나 잡다한 심경

코로나 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곧 마무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대로면 한동안 지속될 것 같습니다. 또 확진자가 더 나오지 않게 되더라도 그 여파는 올해 내내 미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뒤숭숭할 때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저에겐 그럼 하루키입니다. 그전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어디에 묶기도 애매했던 잡문들을 묶어낸, 이름마저 그러한, 2011년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 오늘 함께 읽는 책입니다.

잡문집이라는 이름과 정체성답게, 한 마디로 잡다합니다. 글을 쓴 시점도 1979년~ 2010년 30년에 걸쳐 있으니, 서른 살 청년 하루키와 예순 살 장년의 끝자락에 이른 하루키의 글까지 고루 섞여 있습니다. 서문 해설, 인사말, 메시지, 음악이나 번역, 인물에 관한 글 등 굳이 나누기는 했는데 분류하기 애매한 글들도 많이 섞여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하루키의 오랜 팬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오랜 팬이라면 이 책을 놓치셨을 리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읽으실 만합니다.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나는 굴튀김이 먹고 싶었고 그리고 이렇게 여덟 개짜리 굴튀김을 음미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짬짬이 맥주까지 마실 수 있다. 그런 것은 한정된 행복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에 내가 한정되지 않은 행복을 맛본 게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한정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저는 이를테면 치킨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제 소울푸드는 치킨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했던 일이 있는데 그런 치킨을 저는 한때 끊었었죠. 몇 달 먹지 않다 어느 순간 꽤 심란하다고 할지 쓸쓸하다고 할지 그런 날에 저를 조금 위로하자는 마음에 다시 치킨을 먹었습니다. 조금은 후회했고 조금 더 많이 안도했는데... 아무튼 그렇다는 말입니다.

남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남과는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 라는 피츠제럴드의 문구만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히 될 리는 없었다. 마흔 살이 되면 조금은 나은 글을 쓸 수 있겠지, 라며 계속해서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 1979년 군조신인문학상 수상소감

이것은 내가 소설을 쓸 때 늘 마음속에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소설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벽 쪽에 서서 작품을 썼다면, 과연 그 작가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2009년 예루살렘상 수상 인사말

1979년, 대학 졸업 후 술 집하다가 처음 쓴 소설로 바로 신인문학상을 받아버린 청년 하루키의 무심한 듯 잘난 척이 묻어나는 소감, 그리고 2009년 가자지구 폭격으로 비난받던 이스라엘에서 상을 받을 때 소감입니다. 저도 몇 번 수상소감을 써봤는데... 너무 멋 부려도 좀 그렇고 그저 덤덤하게만 써도 그래서 시종 애매하게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1978년의 시즌은 끝났고 모든 게 변했다. 그렇게 멋진 시즌은 두 번 다시없었다. 그러나 내가(혹은 당신이)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가? 애리조나에서 온 부드러운 눈빛의 나와 동갑내기 청년은 시즌이라는 시간의 표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단지 그것뿐이다. 안녕, 데이브 힐튼. -데이브 힐튼의 시즌

잡다하지만 저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글도 그렇고 청년과 노년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내 시대의 작가라서 팬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할까요. 나이 먹으면 그만큼 달라지고 성장도 해야겠으나 또 뭔가 간직하고 달라지지 말아야 할 원형, 바탕은 있어야 할 텐데 다행히도 저의 하루키는 그렇습니다. 40년 글을 쓰고 여전히 인기 작가인 하루키도 운 좋은 사람, 그의 글을 20년 가까이 읽고 있는 저도 어떤 면에선 그렇다고 여깁니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입니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복주머니니까요. 그렇지만 이런저런 참작 끝에, 내 안에 있는 '잡다한 심경'의 전체상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느껴주신다면,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 머리말: 어디까지나 잡다한 심경

*출판사 비채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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