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완벽주의자들의 착각 - 실수와 실패 사이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20.02.26 11:11 수정 2020.02.26 13:3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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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금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네 번째 재시도인데요, 오늘로 금연 30일, 딱 한 달째가 되었습니다. 훈련병 시절에 강제 금연을 한 달 넘게 했었던 걸 빼면, 자발적 금연 시도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유지 중입니다. 저의 의지박약을 워낙 잘 아는 부모님께서도 의아해하시더군요.
 

- 어떻게 이렇게나 오랫동안 유지를 하니? 뭔 일 있니?

= 뭔 일은 아니고, 금연과 인생의 핵심 비법을 전수 받았다고 해야 하나?

- 뭐 그렇게 대단한 걸 들으셨대. 어디서?

= 보건소에서.


때는 바야흐로 금연 3일째, 보건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사실 보건소를 가려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었고요. 그저 산책 중이었는데, 자꾸만 발길이 편의점 쪽으로 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눈을 딱 감고 바로 옆 건물인 보건소에 들어가 버린 것이지요. 잠깐의 피난처였던 셈입니다. 간 김에 금연 클리닉에 들른 것이지요.

하지만 사실 금연 클리닉 자체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벌써 세 번이나 갔었지만 죄다 실패했었거든요. 거기서 나눠주는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도 담배를 물어버려서 니코틴 과다흡입으로 현기증이 났던 적도 있고, 금연 확인 전화를 계속 못 받는 척하면서 회피하면서 '나는 정말 안될 놈이구나...' 한숨을 내쉰 적도 많았습니다. 도와주는 곳이 열심이어도, 제 의지가 이 모양이니 기대가 없을 수밖에요.

내 인생 네 번째 금연, '핵심 비법'을 전수받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하는 것은 비슷하더군요. 문진표를 작성하고, 금연 도구를 몇 개 나눠주시고, 몇 번 문자가 갈 것이고 몇 번 전화가 갈 것이다. 안내해주시고... 그런데 문을 나서려는 마지막에 담당 선생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 장재열님. 혹시 담배를 물게 되실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생각하세요. '아, 실수했다!' 실패가 아니고, '실수'라고 생각하시고요. 만약 오늘 피셨어도 내일은 다시 1일 아니고, 금연 4일째인 거예요. 그렇게 계속 날짜 세어 가시면 돼요. 1일부터 다시 카운트하실 필요 없어요. 아셨죠?

아, 생각지 못한 계산법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 모든 금연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무는 순간 "망했다."라고 생각한 뒤, 1일부터 다시 세다가 지쳐 나가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금연만 그랬냐? 다이어트도, 시험공부도 마찬가지였지요. "오늘까지는 망했으니까 남은 날짜부터 해서 새로 계획 세우자." 입버릇이었습니다.

새해가 두 달 지난 지금, 여러분도 비슷하진 않나요?
한 달 내내 다이어트 하기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치킨을 먹는 순간 프로젝트는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매일 영어 공부하기는 어떤가요? 그리고는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아예 목표 자체를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거나 폐기해버리지는 않나요? 전형적인 강박적 완벽주의자의 모습 말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이름값을 못 합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완벽한 결말'을 자주 맞이하지 못하고, 대체로 실패합니다. 100 아니면 0만 있다고 하지만, 그 두 결괏값의 비율은 1:1, 반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생각합니다. '99부터 1까지는 모두 100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0이나 다를 바 없다.' 즉 100을 제외한 모든 것을 0으로 대신해버리는 생각은, 확률상 실패가 99%, 성공이 1% 정도의 될 수밖에 없는 비율이라는 겁니다.

즉, 이름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완벽하지 못한 순간에 무너질 확률만이 훨씬 더 높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이죠. 마치 식물로 치면, 갈대가 되지 못해서, 태풍에 꺾이고야 마는 나무들 같은 기질이랄까요? 그런 저에게 보건소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97%도 한번 인정해줘 보면 어때요?"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회복 탄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회복 탄력성이라는 게 대단한 역경을 이겨내거나, 상처를 드라마틱하게 극복한다는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그냥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이지요. 태풍에 쓰러졌다가 다시 잠잠해지면 일어나 있는 갈대처럼 말입니다. 실생활에서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어도 다시 금연의 레이스에 돌아와서 "자, 다음은 4일째…."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달력에 30일 내내 다이어트 성공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지 않더라도, 대략 20일쯤의 성공을 성공으로 쳐주고 다음 달도 계속 시도를 이어가는 힘입니다.

'실패'가 아닌, '실수'라고 생각해보기.
저는 오늘로 30일째, 두 번의 실수를 했지만, 여전히 실패는 아닌 성공적인 금연의 나날들입니다.

여러분의 결심에는 몇 번의 실수가 있었나요?
이미 실패로 규정지어버리진 않았나요?

 

#인-잇 #인잇 #장재열 #러닝머신세대

인잇 시즌 2 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