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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DLF·라임 사태에도 "사모펀드 문제없다"는 금융당국

[취재파일] DLF·라임 사태에도 "사모펀드 문제없다"는 금융당국
● "규제 완화와 무관" 책임 피하는 금융위

금융감독원의 라임자산운용 중간조사 발표가 있는 날. 금융위는 사모펀드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라임 사태에 대한 정부 책임론을 의식한 듯 금융위는 예상되는 주요 Q&A를 정리한 보도자료 첫머리에 이를 언급했습니다.

<금융위원회 사모펀드 제도 개선안 관련 '주요 Q&A' 자료 中 (2020.02.14)>
-2015년 사모펀드 제도 개편을 통해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한 것 아닌지?
=모든 규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후에 발생한 사고로 제도개선의 적정성 여부를 재단하기 어려움.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변화된 여건에 뒤처진 규제를 계속 유지한다면 보다 나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음

-라임 사태는 2015년 규제완화와 관계가 없는 것인지?
=사모펀드 점검결과 대부분의 사모펀드는 제도개선의 취지에 맞게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를 제도개선의 탓으로 연결, 확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


이날 제도개선안 기자회견에서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사모펀드 규제완화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자 "정책을 마련하면서 완벽하게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후 발생한 사고를 미리 예단해서 할 수는 없었다"며 "라임자산운용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모펀드는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라임 사태는 일부 운용사의 일탈로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금융당국의 책임은 크지 않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또한 그제(19일) 기자간담회에서 "라임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가 방관하거나 책임회피를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라임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은 위원장은 "사모펀드 시장의 순기능은 살려두는 것으로 하고 유동성 문제, 판매사의 책임 등에 대해서 좀 더 관리하는 방향으로 개선안을 발표했다"며 "완벽한 제도는 없고, 다 금지시켜버리면 사고가 없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금융 상품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느냐 생각을 한다. 혁신금융을 위해 규제를 바꾸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따라올 수 있다는 게 원천적인 딜레마"라고 밝혔습니다.

DLF, 라임 등 사모펀드로 인한 대규모 피해사례가 나온 뒤였지만 금융위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규제'나 '책임'과 같은 단어를 피하고, '제도 개선', '일부 보완', '필요 최소한의 규율'과 같은 단어를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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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 정책관이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 금융노조·시민단체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

금융위의 입장과 달리, 외부에서는 라임 사태에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에서 비롯된 규제완화 이후에 사모펀드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사고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모펀드 운용사 등록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개인투자자들의 최소 투자금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내리는 법안은 2015년 7월 6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4년 정부(금융위)가 발의한 법안을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 민주당 이종걸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반영해 수정한 안이 2015년에 결국 통과된 겁니다. 개정안 통과 당시 금융위는 "부동자금의 '돈맥경화'를 해소할 투자 기회가 제공될 것이며, 상장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을 크게 개선시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금융노조와 시민단체는 2015년의 규제완화가 5년 뒤 라임 사태를 불러왔다고 말합니다.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조는 "라임사태는 금융위의 정책 실패가 초래한 참사"라고 규정했습니다. 사무금융노조는 20일 금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융위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공시 의무도 지지 않는 사모펀드들이 인가받지 않고 우후죽순으로 등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위가 2015년 법 개정을 통해 초대형 투자은행 육성에 나선 결과, 증권회사들은 고위험 상품 판매에 몰두하고 판매원들에게 이런 상품에서 성과를 내도록 내몰았다는 게 노조의 의견입니다.
사무금융노조 금융위 앞 기자회견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도 "라임사태는 '사모펀드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도 감독은 소홀했던 금융당국의 책임"이라고 논평을 냈습니다.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윤리의식을 상실하고 이윤만 추구하던 판매사와 운용사가 각종 불법행위를 하도록 놓아뒀다는 겁니다.


● '필요 최소한의 규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간극

돈이 몰리는 곳에는 사기꾼도 몰립니다. 규제완화로 사모펀드가 급성장하는 환경에서 '꾼'들이 사모펀드 업계로 흘러들었습니다.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조 씨가 총괄대표로 있던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PE는 사모펀드 운용사 등록이 쉬워진 2015년 규제완화 이후 설립됐습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조 씨는 사모펀드를 이용해 주식 지분 50억 원을 허위공시하고, 실제로는 자금이 유입된 적 없는 전환사채 150억 원을 발행해 주가조작을 시도했으며, 72억 원 대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운용사와 투자자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춰주면서 사모펀드 시장에 큰돈이 몰렸다. 그러면서 자격미달인 사람들까지 대거 몰려들어 운용사를 차린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라임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또한 리드와 관련한 800억대 횡령, 임직원 사모펀드를 이용한 수백억 대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습니다.

조범동과 이종필, DLF와 라임 사태를 겪으며 금융노조와 시민단체는 이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읍니다. 참여연대는 "이번 금융위의 제도개선안은 금융회사 내부 시스템 보완과 감독당국 모니터링 강화 정도에 그쳤다"면서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책임을 지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사무금융노조 또한 "금융회사들이 사기나 다름없는 무분별한 불법 판매를 한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유사한 부당행위를 저지를 수 없게 예방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목소리에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사형제를 도입한다고 범죄가 없어지겠느냐"며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은 위원장은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시민사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요구가 있으니 '징벌적 과징금'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판매에 대해 판매사들에 50% 정도만 과징금을 물리는 것을 '징벌적'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판매사들의 잘못이 밝혀지더라도 수익금의 절반만 내어주면 되니까 불완전판매 관행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금융위와 금감원, 미묘하게 다른 스탠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라임 사태에 대한 질문에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강조했습니다. 대규모 피해가 일어난 뒤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임에도, 규제는 필요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모펀드의 근간은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반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20일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라임 사태에 대해 "감독, 검사를 책임지고 있는 금융감독원장으로서 국민께 심려를 끼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 "위법행위를 엄정 조치하고 신속한 피해 구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융위가 정책적 실패의 책임은 없다고 강조한 것과는 사뭇 다른 답변으로 읽힙니다. 실제 금융감독원은 DLF, 라임 사태 이후 대규모 조직개편을 통해 투자자 보호 업무를 전담하는 금융소비자보호처를 확대 개편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현재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참여연대는 "금융정책 및 진흥이 목표인 금융위 산하에 금감원이 있는 현행 금융감독체제 하에서,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온전히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금융위 산하가 아닌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독립적인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시장의 확대와 혁신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금융위와 금융시장을 조사하고 감독하는 조직인 금감원이 라임 사태를 바라보는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두 조직 간 구성원의 차이에서 시각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번 정부 들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 '진보 경제학자'들이 한 축을 이뤘다면 반대편에는 금융위, 기재부 출신의 '정통 경제관료'가 있다. 지금 금융위-금감원에서 일어나는 일부 시각 차이가 이런 두 집단 간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보수 정부 때인 2015년 사모펀드 규제가 완화된 뒤, 정권이 바뀌었지만 금융규제 완화기조는 그대로였다"면서 "'경제에 여야가 어디 있다고 겁을 먹나.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한국경제는 우리가 움직여'라는 영화 <블랙머니>(론스타 사건을 다룬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 매각했다는 혐의로 체포됐지만 이후 무죄를 선고받음)처럼 금융위를 나온 관료들이 사모펀드 운용사를 차리는 사례들이 많아지지 않을지 주의 깊게 봐야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오른쪽)
● 제2의 DLF•라임 사태, '핀셋'으로 막을 수 있나?

사모펀드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사모펀드를 청동기에 비유했습니다. "인류 발전에서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발전이 있었다. 청동기를 발명했는데 이게 살인과 상해의 수단으로 쓰여질 수는 있다. 그렇다고 청동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인류는 계속 석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라임 사태와 같은) 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한 발짝도 못 나간다면 사모펀드를 한국에서는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같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비유지만 또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저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금융시스템을 자동차에 비유합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거나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고작해야 말을 타고 달리는 게 가장 빨랐던 시대에는 교통 신호도, ABS 브레이크도, 안전벨트도, 에어백도 없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고 규제를 통해 사용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강력하고 빠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잘못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이 갖는 위력과 중요성이 너무 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규모의 피해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청동기'든 '자동차'든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상품 자체는 유익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위력과 중요성이 큰 상품을 어떻게 규제하는지에 대해서는 금융위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입장이 엇갈립니다. 장하준 교수는 "수십 년 사이 '금융 혁신'으로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너무 복잡해졌고, 누구도 제어할 수 없게 됐다"고 경고합니다. 규제 기관은 물론 금융 산업 종사자들도 펀드와 펀드가, 담보 대출들이 얽히고설킨 금융 상품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는 게 불가능해졌다고 말합니다. 펀드들이 복잡하게 얽힌 순환 구조, 복층 투자 구조로 수익률을 내려고 한 라임자산운용이 떠오르는 부분입니다. 실제 라임 펀드를 판매한 판매직원들과 개인 투자자들은 이 펀드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금융 상품이 확산되는 것을 제한해 단순화해야한다. 특히 상품을 만든 사람들이 그 상품의 폐해보다 혜택이 더 많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고 저서에 썼습니다.

투자자들은 "일부 운용사들의 일탈일 뿐 제도 전반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핀셋형 제도 보완책으로 충분하다"는 금융위의 발표를 믿고 마음 놓고 사모펀드에 투자해도 될까요. 금융위는 DLF 문제가 불거지자 개인투자자들의 최소 투자금액을 1억에서 3억으로 올리는 등 개선책을 발표했고, 라임 사태가 드러나자 또다시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인 규제 강화는 옳지 않다는 큰 틀은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연이은 사모펀드 관련 사고에도 오히려 "규제 개혁을 뚜벅뚜벅 추진해나가겠다"는 답을 내놓은 금융위의 발표에 '핀셋이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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