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기생충 유감…누가 기생충인가?

김용철 기자 yckim@sbs.co.kr

작성 2020.02.14 16:01 수정 2020.02.14 17:1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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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기생충 유감…누가 기생충인가?
영화 기생충 (김용철 취파용)● 너무 불편했던 영화 '기생충'

'기생충', 참 불편한 영화였다. 적어도 지금 '꼰대'라고 불릴 법한 386세대에겐 대부분 그랬을 것 같다. 1969년 생인 봉준호 감독도 아마 그런 불편한 기억 속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써 나가지 않았을까?

1980년대 초반 서울 신림동 하숙방, 20만 원 남짓 하던 한 달 하숙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반 지하 방을 택하기도 했다. 그 반 지하 하숙방은 여름 장마철이면 곰팡이가 슬고, 겨울이면 음습했다. 햇살이 제대로 들지 않으니 항상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가 났다. 건조기가 없었던 때라 빨래는 뽀송뽀송 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 가난한 김씨네 일가가 사는 무대다.

거기다가 제목이 '기생충'이라니. 고3 막내에게 기생충 하면 어떤 곤충이 생각나냐고 물으니 '빈대'가 생각난다고 한다. 애교스럽다. 나에게 기생충 하면 초등학교 시절 회충약을 먹고, 약의 효과를 학교에 보고하기 위해 화장실을 본 뒤 마리 수를 헤아려야 했던 '회충'이다. 2017년 11월 온통 총상을 입고 공동경비구역(JSA)를 뛰어넘어 귀순했던 북한 병사의 소장에서 대거 발견된 회충들이다. 이 역겨운 '회충'에 비하면 '빈대'나 '곱등이'나 '바퀴벌레'는 귀엽기까지 하다.

하숙비를 벌기 위해 지겹게 실력이 안 느는 '고딩이'와 기싸움을 벌이던 과외의 추억, 여기에 재학증명서를 위조해 오누이가 부잣집 과외선생이 되고, 부모는 운전기사와 가정부가 되는 영화 '기생충'의 스토리 전개는 불편해도 너무 불편하다. 적어도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 무더기로 태어나 군사 정권 아래 고도 성장기와 민주화 시대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야 했던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그 불편함에 가위눌려 영화의 구성이나 상징적인 모티프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 누가 기생충인가?

2019년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2020년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 최고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거머쥐며 영화 '기생충'은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다시 보게 하고 있다.

박 사장네 저택 지하 대피소에 남편을 숨겨 놓고 살던 문광, 가정부 문광과 운전기사까지 내쫓고 박 사장네를 차지하는 기택. 화장실 변기가 노출된 기택 씨네 반 지하방과 와이파이, 수석, 거리를 소독하던 매캐한 연기, 예정에 없이 박 사장네가 캠핑에서 돌아오자 소파 밑으로 숨어드는 기택의 가족들, 두 가족의 싸움에서 무기로 쓰이는 동영상과 김정은의 미사일, 지하실에서 전등 스위치를 누르며 보내는 전등 모르스 신호 등 영화 '기생충'은 온갖 은유와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기택이 과외를 하면서 내뱉는 "실전은 기세야"라는 말, "부자인데 잘하지가 아니라 부자니까 잘하지", "돈이 다리미야. 쫙 펴줘",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 등 영화 중 대사는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이 수천만 관객들의 공감을 얻으며 제시하는 화두는 무엇보다 '누가 기생충이냐?'이다. 박 씨네 저택에 위장해 들어가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두 가족이 기생충인가? 아니면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박 씨네인가?
미국 포브스 홈페이지 트위터 대화 (https://www.forbes.com/sites/danidiplacido/2020/02/12/what-is-parasite-really-about/#50232fac2394)미국에서도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예술분야 전문 기고가 다니 디 플라시도(Dani Di Placido)가 쓴 '기생충이 진정 의미하는 것은?(What is Parasite really about?)'이라는 글을 놓고 '누가 기생충인가?'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우리 모두를 기생충으로 만들고 있다', '영화 속 부자는 기생충이 아니다. 고용한 사람들에게 물건값과 용역의 대가를 지불한다. 하지만 피고용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자를 착취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플라시도는 기고문에서 "영화 기생충이 근로자 계층을 살아 남기 위해 애를 쓰는 계층으로 나타내고 부자들을 기생충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 영화를 근로자 계층을 욕하는 이야기로 잘 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영화 기생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질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자리, 특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자격자'들로 가득한 부조리한 세상"이라고 지적한다.

"부잣집에 잠입해 들어가는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 임이 분명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부잣집 사람들도 기생충입니다. 설거지나 운전도 하지 못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붙어 산다는 점에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기생충입니다."

"재능 불문하고 예술가로 태어났다고 교육받는 부잣집 도련님, 예술적인 재능을 갖추었으면서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잣집 도련님의 과외에 나선 '기정'. 폭우로 반 지하 방이 침수된 뒤 이어지는 부잣집 도련님의 생일파티, '기우'와 '기정'은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부잣집 저택을 살 수 없기에 엄청난 벌이를 자랑하는 부잣집 주변을 맴돌며 사기 행각을 벌입니다. 단지 제대로 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사회적 계층 이동을 결정하는 교육과 지성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공이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결정되는 걸까요? 아니면 출생 신분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요."

플라시도는 의식을 되찾은 '기우'가 의사와 형사를 보고 웃는 장면은 이런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에서 실종된 '실력이 성공을 결정한다는 신화'에 대한 비웃음 이라면서, 기택이 박 사장을 죽이고 저택의 지하실에 가까스로 숨어 들어가는 데 성공하는 장면을 가장 상징성이 있는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쓰고 있다.
영화 기생충 (김용철 취파용)● 기생충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상생충 사회'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세계 최고의 영화로 지목되자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성한 '짜파구리'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한 홍보물을 내놓고 있다. BTS에 이은 '기생충'의 성공은 1천 년 이상 잠자던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대한민국의 쾌거라는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생충'의 성공 뒤에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층의 증가, 계층 간 이동 사다리의 붕괴와 사회적 역동성의 결여, 가짜가 판치는 황금만능주의, 집단이기주의, 계층 간 갈등 같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 내재돼 있다.

젊은 층의 인구는 줄고, 노년 층의 인구는 급증하면서 빈부 갈등은 물론 연령층 간의 갈등과 '기생충 논란'도 우려되고 있다. 현재와 10년 후 인구피라미드의 변화는 베이비 붐 세대의 노년층 진입에 따른 사회적 부담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2020년과 2030년 한국의 인구피라미드봉준호 감독이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처럼, 영화 '기생충'의 탄탄한 스토리 전개가 봉 감독의 체험에서 나온 '실제상황'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고착화된 빈부격차, 너도나도 공정사회를 외치면서도 사회 전반에 확산한 '내로남불'과 집단 이기주의, 황폐화된 산업 생태계, 잊힌 사회적 가치……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 '기생충'에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놓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 사회'가 아니라 서로 돕고 상생하는 '상생충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415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 후보들이 앞장서 고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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