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영장판사가 '판사 가족관계'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20.02.14 12:01 수정 2020.02.14 17: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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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두 번째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신광렬 판사와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였던 조의연-성창호 판사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앞서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유해용 변호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에 대한 판결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법농단 의혹' 현직 판사들 모두 무죄● '사법농단' 연루 현직 판사에 대한 첫 판결…"모두 무죄"

재판장인 유영근 판사와 신동주 판사, 배인영 판사로 구성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3형사부는 2020년 2월 13일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공무상비밀을 누설하자는 세 사람의 공모도 없었고, 영장전담판사였던 조의연-성창호가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신광렬에게 검찰 수사기록을 복사해 보고한 것은 직무상 정당성이 인정되는 행위였으며, 신광렬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한 내용 역시 공무상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없거나 법원 내부의 보고로서 용인될 수 있는 범위 내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판결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구조를 간략하게나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의 혐의는 여러 파트로 구성된 사법농단이라는 거대한 사건 가운데 '사법부의 부당한 조직 보호' 파트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 검찰은 왜 현직 판사 3명을 기소했나

검찰은 법조 비리 사건이었던 '정운호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2016년에 법원행정처가 현직 법관에 대한 비리 수사로 확대될 것을 대비하여 수사상황을 수사로 파악하면서 수사 확대 저지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이를 위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수사 상황 파악을 위해 관련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신광렬에게 검찰 수사 내용을 보고해달라고 요구했다고 검찰은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신광렬은 조의연-성창호와 공모한 뒤, 검찰이 영장 청구를 위해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을 볼 수 있었던 영장판사 조의연-성창호로부터 수사정보를 전달받아 임종헌에게 보고했으므로 세 사람이 공무상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 공소장의 핵심 내용입니다. 또,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신광렬을 통해 '정운호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는 판사들과 관련된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영장판사들에게 전달해 검찰 수사 확대를 막으려 했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 사건은 신봉수 검사가 기소했고, 고영하-김진용-단성한-민병권-이주용-조정호 검사가 함께 공판을 담당했습니다.)
검찰이 보는 공무상비밀 누설 경로
●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5가지 논리

이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논리는 크게 5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법원행정처가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는 것을 저지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 검찰이 판사 수사와 관련해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법원행정처는 이에 대응하려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른바 '검찰총장 압박 문건' 등을 작성했을 뿐이다. 이 문건에 포함된 방안이 실행되지도 않았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해 신광렬을 통해 조의연-성창호 등 영장전담판사에게 전달된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이 영장심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 법관에 대한 수사를 저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법관 비리 은폐 축소를 통한 사법부의 부당한 조직 조호를 위해 신광렬이 법원행정처의 지시에 적극 협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 법원행정처는 수사 축소 목적이 아니라 '정운호 게이트' 연루 법관에 대한 징계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등을 목적으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관련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신광렬에게 직무상 정당한 보고를 요구한 것이다. 신광렬은 이에 정당하게 응한 것뿐이다.

3) 영장판사였던 조의연-성창호는 신광렬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정운호 게이트' 수사 관련 내용을 보고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공무상비밀을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누설하는 행위에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

4) 영장판사들이 주요 사건에 대한 영장처리 결과를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보고하는 것이나,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법관 비위 관련 사항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 것은 업무상 관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법행정을 위한 직무행위로서 정당성이 있다.

5) 신광렬이 법원행정처 측에 보고한 내용 역시 검찰이 언론에 브리핑한 것이거나 검찰관계자가 법원행정처 관계자에게 알려준 내용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대해 검찰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검찰이 2월 13일 오후에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을 간략히 옮기자면 1) 법원행정처가 '정운호 게이트'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피고인들에게 수사기밀 수집과 보고를 지시한 사실 2) 피고인들이 그 지시에 따라 약 10회 걸쳐 보고를 했을 뿐만 아니라, 사건관계인들의 진술과 통화내역, 계좌추적결과 등이 망라된 153쪽짜리 수사보고서를 통째로 복사하여 유출한 사실 3) 이를 통해 법원행정처는 관련 법관들과 그 가족에 대한 영장심사를 강화하도록 지시하고 별도의 팀을 만들어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공판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와 진술에 의해 확인되었다는 것입니다. 검찰은 항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판사 가족관계 문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며 내세운 5가지 논리가 적절한지 하나하나 따져 보려면 너무나 긴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 글에서는 재판부 논리 중 첫 번째 대목인 '법원행정처의 정운호 게이트 수사 확대 저지 목적'에 대해서, 특히 그중에서도 존재의 이유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1개의 문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검토해보려 합니다. 바로 '판사 가족관계 문건'입니다.

'판사 가족관계 문건'은 '정운호 게이트' 수사가 현직 판사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지 못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주장에 대한 핵심 증거로 검찰이 제시한 자료입니다. 이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정운호 게이트' 연루 의혹이 있다고 자체적으로 파악한 (당시) 현직 판사 7명의 가족 31명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습니다.

일단 이 문건이 영장판사들에게 전달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판부, 검사, 피고인들이 모두 인정합니다. 재판부는 "임종헌이 2016년 6월 22일 경 정운호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는 김 모, 임 모 등 현직 부장판사 7명의 가족관계와 그들의 배우자, 전 배우자, 자녀, 부모 등 31명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기재된 법관 가족관계 문건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에게 작성하게 한 다음 이메일로 신광렬에게 보낸 사실, 피고인 신광렬은 2015년 6월 23일 10시 47분경 피고인 조의연에게, 피고인 조의연은 같은 날 17시 54분경 피고인 성창호에게 가족관계 문건을 이메일로 전달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정운호 게이트' 수사 때문에 법원행정처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영장판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당시, 뜬금없이 판사 가족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이 바쁜 사람들에게 전달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검찰은 법원행정처의 '영장재판 가이드라인'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행정처 측이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신광렬을 통해 영장판사들에게 '법관과 그 가족들에 대한 계좌추적영장을 검찰이 청구할 경우 더 엄격히 심사하라'는 취지의 영장재판(영장심사) 가이드라인을 전달하면서 '판사 가족관계 문건'을 보냈다고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검찰이 법관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판사뿐만 아니라 판사 가족의 금융계좌기록이나 통신기록 등을 추적할 수 있는 상황을 법원행정처가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사의 "배우자, 전 배우자, 자녀, 부모 등"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숙지하고 있다가 이들에 대한 영장이 청구되면 법관 관련 영장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신중하게 심사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 문건'을 영장판사 등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검찰의 생각입니다.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1) 2016년 8월 10일 '가족관계 문건' 전달 이후에 조의연 영장판사가 '정운호 게이트' 관련자에 대한 계좌추적영장을 발부하면서 부장판사였던 김 모 씨의 가족의 계좌로 연결되는 부분은 삭제한 사실 2) 관련자 통신영장을 발부하면서 역시 부장판사 김 모 씨의 자녀의 통신내역 관련 대목은 기각한 사실 3) 2016년 8월 18일 성창호 영장판사가 부장판사 김 모 씨 가족에 대한 신용카드거래내역에 대한 영장 청구를 기각한 사실을 제시했습니다. 재판부도 이 같은 사실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법원 재판-법정, 판사석● 재판부 "처리 후 결과 보고해달라는 것…영장재판 가이드라인 없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문건이 영장심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기능을 수행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행정처로부터 '판사 가족관계 문건'을 전달받아 영장판사들에게 전달한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판사 가족들에 대한 계좌영장이 청구될 경우 "처리 후 결과"를 보고해 달라는 취지에서 문건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영장심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영장심사가 끝난 뒤 결과만 보고해달라는 취지였다는 신광렬 등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재판부는 영장판사였던 조의연-성창호도 신광렬로부터 판사 가족들에 대한 "처리 후 결과"를 보고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사실상 같은 진술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재판부는 영장판사들은 '판사 가족관계 문건'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파단했습니다. 문건을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영장판사들에게 말한 적이 없다고 신광렬이 진술하고 있고, 조의연-성창호도 '판사 가족관계 문건'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영장판사들은 법원행정처가 보낸 문건인 것도 몰랐기 때문에, 영장판사들이 '정운호 게이트'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한 법원행정처의 목적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조의연-성창호 판사가 판사 가족 관련 영장을 일부 기각한 것 역시 이른바 '가이드라인'과 관계없이 원칙에 입각해 처분한 것이었다고 재판부는 밝혔습니다.


● 석연찮은 이유 1: '제3의 영장판사' 증언은 왜 판결문에서 빠졌나

그러나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적어도 3가지 면에서 석연치 않습니다.

첫째, '제3의 영장판사' 한정석의 증언을 재판부가 무시한 이유가 석연치 않습니다. 조의연-성창호 판사와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판사로 근무했던 한정석 판사는 2019년 12월 16일 법정에 나와서 '판사 가족관계 문건'과 관련된 당부사항을 들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당부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당시 법정에서 오간 검사의 질문과 증인 한정석 판사의 답변, 그리고 변호인의 질문과 한정석 판사의 답변을 옮겨보겠습니다.

(문) 검사: 신광렬이 조의연에게 보낸 이메일을 (증거로) 제시하겠습니다. 김00 부장판사 등 가족관계 문건입니다. 신광렬은 2016년 6월 23일 목요일 10시 47분경에 조의연에게 임종헌 차장으로부터 받은 김00 부장판사 등 '가족관계 문건'을 첨부해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증인은 이 문건 관련 지시사항을 누구로부터 직접 들은 걸로 기억합니까?

(답) 증인 한정석: 어떤 지시사항을 말씀하시는 건지?

(문) 검사: 이 문건 받으면서 지시사항 전달받은 적 없나요?

(답) 증인 한정석: 조의연 부장님이 저한테 이메일로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문) 검사: 어떤 지시했는지 기억나시나요?

(답) 증인 한정석: 정학하게 안 나는데, 명단 보고 혹시 저 ('판사 가족관계 문건') 명단에 있는 사람들 압수수색영장이나 (검찰이) '끼워 넣기' 할 때 유심히 보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문) 검사: '끼워 넣기'가 뭔가요?

(답) 증인 한정석: 검찰이 전혀 무관한 (다른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등에) 원하는 대상자를 끼워 넣는 경우를 말합니다.

(문) 검사: 그런 지시를 조의연 판사한테 직접 들었다는 건가요?

(답) 증인 한정석: (조의연 판사한테) 직접 들었는지... 아무튼 (그런 지시한 사람이 신광렬) 수석님은 아니시니까... 검찰이 제 이메일 압수수색한다고 했을 때 뭐가 있는지 살펴봤는데, 조의연이 보낸 게 있길래, 이게 뭔가 생각해보니까 그 이메일이었던 같고, 그런 취지로 받았던 걸로 기억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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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변호인: 증인은 당시 조의연으로부터 (신광렬) 수석이 어떤 의미로 (가족관계) 문건을 전달했다고 들었나요?

(답) 증인 한정석: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문) 변호인: 증인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의연 부장님 말씀에 의하면 신광렬 수석께서 검찰이 다른 수사 과정에서 이 문건에 기재된 계좌 수사를 몰래 끼워서 할 수 있으니 잘 보라는 취지였다.'라고 진술했다는데 맞나요?

(답) 증인 한정석: 네

(문) 변호인: 증인이 말씀하신 '끼워 넣기'라는 것은 검찰에서 다른 사건 영장 청구하면서 그와 무관한 법관이나 가족을 해당 사건 관련자인 것처럼 몰래 영장 발부받는 거 말하는 것이죠?

(답) 증인 한정석: 네

(문) 변호인: (신광렬) 수석부장이 '법관 가족관계' 명단 전달한 것은 청구되면 그 결과 알려달라는 요청과 함께 이런 편법적 영장 청구 주의하라는 뜻이겠죠?

(답) 증인 한정석: 네

(문) 변호인: 아무런 관련 없는 대상자를 몰래 끼워 넣어 청구한다면 이건 영장전담 판사 매뉴얼 보더라도 명백히 불법적 행위인 거죠?

(답) 증인 한정석: 네

(문) 변호인: 형사수석부장이 관련 부장 가족관계 문건 전달한 게 (영장) 기각하란 취지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답) 증인 한정석: 아니요. 그렇게 하셨을 거라면 불러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양 쪽의 증인신문 내용을 종합하면 '제3의 영장판사' 한정석 판사의 증언은 '누구로부터 전달받았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조의연 영장판사로부터 판사 가족관계 문건의 취지에 대해서 전달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검찰이 전혀 관계없는 사건에 판사 가족의 이름을 끼워 넣어 계좌추적 영장 등을 청구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취지였다. 다만 검찰이 관계없는 사건에 판사 가족을 슬쩍 끼워 넣어서 영장을 청구하는 편법을 주의하라는 메시지였지, 판사 가족 영장을 기각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의연 판사든 아니면 다른 누구든, 한정석 영장판사에게 '판사 가족'들에 대한 '끼워 넣기'를 주의하라고 특별히 당부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검찰은 당시 '정운호 게이트'뿐만 아니라 롯데 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롯데 그룹 일가의 명단을 정리한 문건을 영장판사에게 전달하면서 '검찰이 이 사람들에 대해 전혀 다른 사건에 끼워 넣어서 영장을 청구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롯데 일가와 달리 '판사 가족'에 대해서만 특별히 '끼워 넣기'를 주의하라고 당부한 이유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판사 가족들에 대해서만 '끼워 넣기'를 주의하라며 특별히 유의해야 할 31명의 이름과 생년월일까지 전달한 행위는, 설사 직접적으로 '기각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운호 게이트' 연루 의혹이 있는 판사 가족들의 영장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 써서 심사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이는 직장에서 상급자가 신규 채용을 담당한 하급자에게 자신의 친구들의 자녀 이름이 들어있는 문건을 건네면서 '이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살펴봐 달라.'고 부탁한 것과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하급자가 상급자가 준 명단을 살펴보면서 '정말 억울한 일만 당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겠지.'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판사 가족관계 문건'의 성격을 드러낸 한정석 판사의 중요한 증언은 이번 판결문에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끼워 넣기'라는 단어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재판부는 판사 가족들에 대한 영장심사 "처리 후 결과"를 보고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라는 신광렬 형사수석부장의 진술과, 신광렬 형사수석의 진술이 사실이라는 취지의 조의연-성창호 판사의 진술만 판결문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정석 판사의 증언이 '가족관계 문건'의 성격에 대한 핵심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설사 한정석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진술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만 대해서라도 언급하는 것이 적절했다고 봅니다. 재판부가 현직 판사이자 핵심 증인인 한정석의 진술을 무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법원 재판-법정, 판사● 석연찮은 이유 2: 영장판사들은 법원행정처 문건이라는 점을 정말 몰랐나

둘째, 재판부가 '판사 가족관계 문건'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사실을 영장판사들이 몰랐다고 판단한 점입니다. 이는 영장판사들이 이를 '법원행정처의 영장심사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였을 리 없다는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법원행정처 측으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겠다고 신광렬-조의연-성창호가 공모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만 봐도 당시 영장판사였던 조의연-성창호는 '판사 가족관계 문건'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사실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커 보입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만 놓고 봐도 신광렬이 조의연에게 보낸 '판사 가족관계 문건' 이메일과 관련해 "임종헌에게 받은 메일을 그대로 포워딩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별도의 이메일을 작성하여 전송하였고, 가족관계 문건 제1면에는 법원행정처 문건에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작성부서의 기재가 없고, 제2면 하단의 꼬리말 부분에 본문보다 작은 글씨체로 '윤리감사관실'이라고 기재되어 있다."라고 돼있습니다.

2면에 적혀있는 '윤리감사관실'은 법원행정처 내부의 조직입니다. 판사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서류의 내용과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지는 것을 업으로 하는 판사들이 형사수석부장이 보낸 이메일에 적혀 있는 '윤리감사관실'이라는 단어를 보지 못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재판부 역시 '아예 몰랐을 것'이라는 표현은 차마 쓸 수 없었던지, 영장판사들은 가족관계 문건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히고 있긴 합니다. 글씨가 작았으니까요.

나아가, 설사 "본문보다 작은 글씨체"로 적혀 있는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라는 문구를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영장전담 판사를 맡을 정도로 경험 많은 법관들이 문건 내용을 보고 작성 주체를 짐작하지 못했다는 점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법원 사정에 대해 약간의 이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 소속도 아닌 판사 7명의 "배우자, 전 배우자, 자녀, 부모 등" 31명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판사 31명도 아니고 판사 가족 31명의 생년월일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곳은 법원행정처뿐이라는 것 역시 상식에 속합니다. 영장판사들이 '판사 가족관계 문건'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사실을 몰랐을 것이란 재판부 판단에 의문이 남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 석연찮은 이유 3: 사법행정을 위한 수사기록 활용은 정당한가

셋째, 영장심사를 위해 법원에 접수된 수사 기록을 법원 조직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사법행정을 위한 직무상 정당한 행위였다고 판단한 재판부의 인식입니다. 국민을 위한 법원의 재판과 법원 내부의 조직 관리를 위한 사법행정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수사기록은 영장심사라는 재판을 위해 법원이 맡아서 보관하는 공적인 서류이지, 법원이 조직 내부의 행정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임의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닙니다.

때문에 설사 재판부의 판단대로 법원행정처가 현직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직 관련자 징계나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수사 정보를 활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수사기록 내용을 재판과 관련 없는 사법행정 담당자에게 보고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같은 논리라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며 수사기록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구할 때 영장판사가 이를 알려주는 행위 역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장판사나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수사 저지 목적이 없는' 대기업에 수사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나, 영장판사 등이 '수사 저지 목적이 없는' 법원행정처에 수사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나, 재판과 관련 없는 사람에게 수사정보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담당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수사정보가 유출되긴 했지만 법원이라는 조직 내부에서 수사정보가 이동한 것이니, 대기업 등 법원 외부로 나간 것과는 다르다고 반론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목적으로 맡겨진 정보를 해당 조직이 별개의 목적으로 내부에서 공유하고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은행에서 감사 담당 부서가 고객 계좌 관리 담당자로부터 금품 관련 비위 의혹을 받고 있는 직원과 관련된 금융거래 정보를 전달받은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와 같은 행위가 적법하다고 판단하는 법률가는 없을 것입니다. 이동통신사가 내부 비위 의혹의 진상을 파악하겠다면서 직원의 휴대전화 통신기록을 활용했다면 이 역시 불법입니다. 은행이나 통신사 내부에 감사 업무를 위해 금융거래기록이나 통신기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고 해도 이런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법원의 특정 재판부나 판사가 재판을 위해 확보한 수사기록의 상세한 내용을 재판 담당자가 아닌 법원 내부자에게 전달한 행위는 순수하게 사법행정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됩니다. 법원행정처가 전달받은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했다면 이행위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판사● 판사가 판사를 재판하는 사건…더욱 엄정하게 감시해야

지금까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살펴보면서, 특히 '판사 가족관계 문건'과 관련한 재판부 판단에 대해 검토해 봤습니다. '판사 가족관계 문건'이 설사 '가이드라인' 취지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무죄가 유죄로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가 조직 보호를 위해 재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논란은 법원 입장에서 가장 아프게 느껴지는 점일 수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석연찮은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이밖에도 이번 판결에는 따져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판단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사법농단 관련 재판이 있을 때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판결을 분석하는 취재파일을 써보겠습니다. 법관이 법관을 재판하는 사법농단 사건이야 말로 언론의 엄정한 감시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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