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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120개국 암호 장비 댄 회사 배후는 CIA…한국도 고객"

"수십 년간 120개국 암호 장비 댄 회사 배후는 CIA…한국도 고객"
▲ 미 버지니아주의 CIA 본부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전세계 정부를 상대로 암호장비를 팔아온 스위스 회사가 사실은 미 중앙정보국, 즉 CIA 소유였으며 CIA는 서독 정보기관과 함께 손쉽게 정보를 빼내왔다고 미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습니다.

이 회사의 고객이었던 국가는 120개국이 넘는데 확인된 62개국에는 한국과 일본도 포함되며 특히 1981년 기준으로 한국이 이 회사의 10위권에 드는 고객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독일의 방송사 ZDF와 함께 기밀인 CIA 작전자료를 입수해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각국에 암호 장비를 제작·판매하는 영역에서 독보적 위상을 유지해온 스위스 회사 '크립토AG'는 CIA가 당시 서독 정보기관 BND와의 긴밀한 협조하에 소유한 회사였습니다.

크립토AG는 2차 대전 당시 미군과 첫 계약을 맺은 이후 전 세계의 정부들과 계약을 맺고 암호 장비를 판매해왔으며 각국은 이 암호 장비를 통해 자국의 첩보요원, 외교관, 군과 연락을 유지해 왔습니다.

CIA와 BND는 미리 프로그램을 조작해둬 이 장비를 통해 오가는 각국의 기밀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장비 판매 대금으로 수백만 달러의 거액도 챙길 수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크립토AG의 장비를 쓴 나라는 120여 개국에 달했으며 확인된 곳만 62개국입니다.

한국과 일본도 포함됐고, 앙숙 관계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물론 미국과 오랫동안 대치해온 이란, 미국의 오랜 우방 사우디아라비아도 포함됐습니다.

바티칸도 고객 리스트에 들어 있었습니다.

1981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사우디가 이 회사의 가장 큰 고객이었으며 이란과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이라크, 리비아, 요르단에 이어 한국이 뒤를 이었다고 신문은 보도했습니다.

입수 문건에는 미국과 동맹국이 다른 나라들을 오랫동안 이용해 장비 판매대금으로 돈도 받고 기밀도 빼낸 내역이 들어있으며 자칫 작전을 망치게 할 뻔한 내부갈등도 들어있다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구체적인 사례도 보도했습니다.

이 장비를 통해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미국인 인질 사태 당시 CIA는 이란의 이슬람 율법학자들을 모니터할 수 있었으며 포틀랜드 전쟁 당시엔 아르헨티나군의 정보를 빼내 영국에 넘겨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재자들의 암살 과정과 1986년 리비아 당국자들이 서독의 베를린 나이트클럽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후 자축하는 과정도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구 소련과 중국은 크립토AG의 장비를 절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가 서방과 연계돼 있다고 의심했던 것입니다.

CIA는 다른 나라들이 구 소련 또는 러시아와 연락하는 과정을 추적해 상당량의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설명했습니다.

1990년대 초 BND는 발각의 위험이 너무 크다고 보고 작전에서 손을 뗐지만 CIA는 독일이 갖고 있던 지분을 사들여 계속 작전을 이어가다가 2018년이 돼서야 물러섰습니다.

그때쯤부터 국제 보안시장에서 온라인 암호기술의 확산과 맞물려 크립토AG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CIA 내부 기관인 정보연구센터가 2004년 완성한 96쪽짜리 작전 문건과 독일 정보당국에서 2008년 편집한 구술사 등을 확보해 보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CIA와 BND는 코멘트 요청을 거부했지만 문건의 진위를 반박하지도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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