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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쁘거나 무책임하거나…라임-대신증권 녹취에서 나타난 부실 '은폐 의혹'

1조 6,6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를 중단한 라임 자산 운용과 판매사, 각각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녹취 파일을 SBS가 확보했습니다. 라임 측 등장인물은 대표 원 모 씨와 지금은 잠적한 전 부사장 이모 씨, 이모 상무입니다. 대신증권 측 등장인물은 당시 반포지점장과 펀드 판매 직원입니다. 대신증권 반포지점은 순수 개인 투자자 자금만 2,000억 원을 모은 핵심 판매처입니다. 당시 반포지점장에 따르면 이중 본인 고객 자금만 1,500억 원 규모라고 합니다. 전체 1조 6,600억 원 중 '알맹이'에 해당하는 순수 투자금은 9,900억 원, TRS 계약을 맺고 자금을 빌려 '뻥튀기'한 금액은 6,700억 원입니다. '알맹이'에 해당하는 순수 투자금 중 20%는 대신증권 반포지점 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반포지점장 한 사람이 모집한 금액으로 계산해도 15%가 넘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대신증권
SBS가 확보한 녹취 파일에는 도피 중인 라임자산운용 전 부사장 이모 씨와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당시 반포지점장이 펀드 부실을 고의로 은폐한 정황이 나타납니다. 이 녹취는 당시 대신증권 반포지점장이 라임 측에 돈을 얼마나 융통할 수 있는지 묻는 과정에서 이뤄진 대화입니다. 일부를 들리는 대로 옮겨 적습니다.

[대신증권 당시 반포지점장 : 이 말 앞서서 뭐 **이(라임자산운용 대표)는 뭐 몰랐을 수도 있고. 이** 상무하고도 얘기한 게 있었는데. 내 고객들이 다 환매 나오면 너희는 그때부터 환매 중단이었잖아. 언제든지. 유동성이 확보가 안 되니까. 아니 이번에 우리은행 그 사태 나오고 처음에 환매, 너희가 판매가 안돼서 내주려고 했을 때 그때 8월 20일경에 그때 만약에 내 고객이 환매 나왔으면 이 사태가 더 일찍 왔겠지 그치. 그래서 8월 20일날에 내가 어떻게 해결되냐 이렇게 이렇게 해서 막고 있다 막고 있다. 정말 이것만 해결되면 괜찮을 거라고 했지? (…) 너희는 막말로 정말 무조건 막아달라고 해놓고. 왜. 그것도 지금 환매도 무슨 몇 백억 나온 것도 아니고. 70억 나온 건데.]

녹취 내용을 들어보면 대신증권은 적어도 지난해 8월쯤, 해당 펀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 보도로 라임 펀드의 부실 의혹이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해 7월 23일이었습니다. 라임자산운용이 한계기업들의 전환사채를 집중적으로 매입해 위험한 투자를 하고 있고, 수익률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상품을 대규모로 판매한 대신 증권이 녹취상 언급한 8월 20일에서야 낌새를 알아차렸다는 것도 사실은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대신증권
이보다 먼저 알았을 정황도 포착됩니다. 라임 펀드 투자 피해자들의 형사 고소를 대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대신증권이 자체적으로 라임 펀드의 수익률을 조정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4월, 대신증권이 테티스 펀드의 수익률을 임의로 적어 넣고 투자자들에게 안내해 팔았다는 근거 자료가 있다고 합니다.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상품의 수익률을 조정하는 건 판매사 권한 밖의 일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대신증권은 중요한 사실 관계를 속이고 상품을 판매한 꼴이 되므로 사기죄가 성립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라임자산운용과 공모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투자 피해자 법률 대리인의 설명입니다. 사법적인 판단은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적어도 지난해 4월 대신증권은 이미 라임 펀드의 부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라임 투자 피해 관련 통장
라임 투자 피해 관련 통장
이렇게 라임 펀드의 부실을 알거나 충분히 알 수 있던 상황에서도 펀드는 계속 팔려 나갔습니다. 라임의 소송을 대리하는 한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대신증권 반포지점장은 지난해 9월 17일에도 라임 테티스 펀드를 팔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환매 중단 불과 2주 전입니다. 녹취에 따르면 대신증권 당시 반포지점장은 늦어도 8월쯤부터 고객들의 환매 신청을 막아달라는 라임의 요구를 받았고, 실제로 펀드 환매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투자한 고객의 돈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추가 투자자까지 모집한 겁니다.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녹취가 이뤄진 지난해 10월 13일에는 이런 말도 주고 받습니다. 일부를 들리는 대로 옮겨 적습니다.

[대신증권 당시 반포지점장 : 내일 만약에 기자들이 엄청나게 질문을 할 텐데. 기자회견 하고 난 다음에 결론은 이젠 끝이라는 거거든. 종지부라는 거거든. 솔직히. 여기서 확신 있는 말이…]

[라임 전 부사장 이 모 씨 : 자신 있게 할게, 자신 있게.]

[당시 대신증권 반포지점장 : 정말 그거는 그래야 불안감을 잠재우니까. 그러고 나서 이제 뭐 상환되는 거는 최선을 다하자고. 근데 불안해 하면서 있는 거보단. 아 라임이 공식 기자회견 했는데 '아 괜찮을 거 같네.' 그래야 우리가 그걸 우리도 힘을 받아가지고 한다고. 어차피 이제 환매 지연 글렀고, 이미 다 터졌고. '저 정도 나왔으면 우리도 되겠네.' 이러고 '우리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게 돼야 되는데. 그게 되게 제일 중요할 거 같아, 이제는. 제일 중요한 부분일 거 같고.]

[라임 전 부사장 이 모 씨: 자신 있게 하려고 노력할 게. 멘탈이 안좋아서 요즘에 내가. 아... 그게 걱정이야. 한 번 해 볼게. 자신 있게. 자신 있게 하려고 하고 있어.]

라임자산운용 기자회견
녹취가 이뤄진 날은 라임자산운용이 테티스 등 3개 모펀드의 환매 중단을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 전날이었습니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든, 펀드 자체의 부실이든 돈을 제때 못 돌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던 시점입니다. 그런데도 라임자산운용과 판매사인 대신증권은 투자자들에게 펀드의 운용 구조와 건전성, 확보할 수 있는 유동성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고객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데 대화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판매사는 자신감 있는 모습을 주문했고 운용사는 그렇게 하겠노라 답했을 뿐입니다. 녹취 전반을 들어보면 판매사가 고객의 이익이 아니라 운용사의 편의에 따라 움직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환매 관련 민원이나 관련 자산의 이탈을 막는 것이 고객의 자산을 지키는 일보다 우선 순위에 있는 듯 들립니다.

대신증권 당시 반포지점장에게 언제 라임 펀드가 부실하거나 부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냐고 물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뒤 펀드의 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금방 해결할 수 있다"는 라임 측의 설명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고 답했습니다.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자산운용사가 자산 관련 상황을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설명과 함께 였습니다. 믿기 어려웠습니다. 고객 자산 1천 500억 원을 받아 자산운용사에 투자를 맡긴 '큰손'이 펀드에 관련된 정보를 언론보다 늦게 알았고, 자산운용사의 말만 믿고 기다렸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사실이라면 무책임이고 거짓이라면 사기 혐의가 짙습니다.

왜 펀드의 부실 의혹이 세상에 알려진 7월 이후, 고객들에게 환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회까지 열었냐고 물었습니다. 대신증권 당시 반포지점장은 '큰손'인 자신의 고객들이 환매 요청을 하게 되면 대규모 펀드런이 일어나 실제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까 우려했다고 답했습니다. 우려 자체가 우려하는 사태를 불러올까 걱정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그 판단이 고객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대신증권 당시 반포지점장은 현재 자신의 고객 중 환매 중단 펀드에 넣은 돈을 돌려 받은 고객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지난해 의혹이 불거진 7월부터 환매가 중단된 10월 사이, 일부 고객들이 환매를 신청했을 때 라임의 요구보다 고객의 판단을 존중했다면 일부 고객이나마 자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고객의 판단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이마저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면 방종입니다.
예상 회수율표
라임자산운용은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받은 실사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모펀드인 '플루토 FI D-1호'의 회수율은 50%~65%, '테티스2호'의 회수율은 58%~77%로 산정됐다고 합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 숫자는 상한치입니다. 환매 중단된 모펀드의 자펀드들에는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KB증권과 맺은 TRS 계약으로 빌린 돈이 섞여 있습니다. 라임자산운용은 이 3개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을 먼저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갚고 남은 돈을 개인 투자자들이 나눠 갖는 구조입니다. 개인 투자자의 투자금이 자펀드에 투자됐다면 회수할 수 있는 돈은 공개된 회수율을 한참 밑돌 수 있습니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라임 펀드 투자자들은 조만간 대신 증권도 고소할 계획입니다. 긴 법적 공방이 이어지겠지만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이런 펀드 사기 의혹이 불거지는 경우 자산운용사의 위법한 행위가 드러나더라도 판매사들은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사모펀드의 경우, '돈은 운용사에서 굴린 것이고 펀드 구조가 복잡해 미처 몰랐다, 고객 신뢰를 잃게 돼 판매사로서 피해가 막심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검증이 어려운 말입니다. 금융 상품의 복잡성을 방패 삼는 무책임과 무모함이 금융시장의 피해자를 거듭 만들어내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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