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금융 리더의 경고 "기후변화 리스크 막아라"

김지석│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

SBS 뉴스

작성 2020.02.12 14:06 수정 2020.02.12 17:36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일단 다음 문제를 하나 풀고 시작해 보자.

 문제 : 다음 발언을 읽고 누가 한 말인지 맞춰보세요.

기후 변화는 기업들의 장기 전망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지난 9월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을 요구할 때, 대다수는 기후 변화가 앞으로 경제 성장과 번영에 미칠 지속적인 영향을 강조하였습니다. 기후 변화는 아직 금융시장이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리스크이기도 합니다만 인식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며, 저는 우리 모두가 금융업의 근본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제니퍼 모건 그린피스 사무총장
2) 그레타 툰베리 청소년 환경운동가
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4) 래리 핑크 블랙록(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기후변화는 금융시장이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리스크"
정답은 4) 래리 핑크 CEO다.

위 인용문은 래리 핑크가 올해 1월 14일에 발표한 CEO 연례 서한의 도입부에 나온 말이며 정확하게는 두 번째 문단 전체다. 블랙록 CEO 연례 서한의 전문은 블랙록 홈페이지에 한글로 번역되어 있는데 아래에서 읽을 수 있다. (들어가면 그린피스 홈페이지 같아 보이는데 블랙록의 한글 홈페이지가 맞다.)

▶ [전문] '블랙록 CEO' 래리 핑크 연례 서한 읽으러 가기

'블랙록' CEO 래리 핑크 (사진은 게티이미지 코리아)금융 시장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블랙록이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 업계에서 이곳은 대단히 유명한 회사이다. 블랙록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로 2019년 말 기준 보유자산 규모가 7조 달러(약 8000조 원)에 달한다. 자산 규모 기준 전 세계 3위이며 국민연금의 10배가 넘는다.

블랙록은 엄청난 규모의 주식, 채권을 사서 장기 보유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불린다. 예를 들어 2019년 2월 기준 블랙록은 삼성전자 주식의 5%를 보유한 3대 주주가 되었는데 당시 기준 5%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14조 원이다. 블랙록은 현대자동차 주식도 3%를 보유하고 있다.

블랙록은 국내 기관 투자자의 자금을 위탁 받아 운용해 주는 일도 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전체 기금 700조 원 중 200조 원을 해외 운용사에 맡겨 투자하고 있는데 상당 부분을 블랙록이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연금과 기금을 운용하는 최대 자산운용사의 CEO가 고객사 대표들에게 투자 방향을 알리는 연례 서한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 모두가 금융업의 근본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래리 핑크 CEO는 연례 서한을 발표한 당일 미국 방송사 CNBC와 인터뷰에서 기후 변화가 중대 리스크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인터뷰 중에 "고민이 많아 연례 서한을 여러 번 수정했다"며 인터뷰 진행자에게 읽어보니 어땠냐고 되묻기도 했다. 투자해 돈을 불리는 일을 하는 최고의 업체가 '기후 변화' 대응 필요성을 강조하는 서한을 낸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까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인터뷰 화면이 나간 뒤 CNBC의 진행자 중 한명은 "원래 래리 핑크는 사회주의자여서 저런 소리를 한다"며 핀잔을 줬다.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자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연례 서한 발표 후 열흘 후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래리 핑크 CEO는 연례 서한 발표 후 부정적인 후폭풍이 있을 것을 걱정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 고객들을 만났을 때 나온 반응은 99:1비율로 긍정적이어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이번 블랙록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기후 변화는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금융투자 리스크로 승격되었다. 블랙록의 발표가 뜬금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블랙록의 이런 선언은 지난해 10월에 국제통화기금(IMF)가 탄소세를 처방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면 경제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으며 기업도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사실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2015년말에 금융 회사들이 기후 변화 리스크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했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하면 블랙록 CEO의 이번 연례 서한은 당연한 수순이다.

발표 이후 부정적인 후폭풍 보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 역시 블랙록의 이번 발표가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인 발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기후 변화를 막연히 먼 미래의 환경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겠지만.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래리 핑크 CEO는 기후 변화 리스크를 대응하기 위한 자본의 대이동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날 거라고 단언했다. 이런 발언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의 CEO가 했다는 점은 사실 반칙이나 다름없다. 시장 리더인 블랙록이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회사의 자본을 팔아 치우기 시작하면 다른 회사들도 대부분 따라할 것이기 때문이다.

블랙록은 우선 석탄을 사용해 얻은 매출이 25%가 넘는 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올해 중순까지 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석탄은 가장 먼저 사용을 줄여야 하는 자원이고 이미 전 세계적으로 사용 추세가 가파른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 원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전력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국가 공기업 한국전력의 석탄 발전 비중은 여전히 40%가 넘는다. 2019년 8월에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블랙록은 이미 석탄발전소 관련 사업을 하는 한국전력과 두산중공업에 투자해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블랙록이 아직 한전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올해 중순쯤 버림 받을 확률이 크다.

기후 변화 리스크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한전이 처분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전력회사가 생산하는 전기로 물건을 만드는 기업들도 투자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전이 만든 전기를 사용하는 국내기업들도 기후 변화 리스크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석탄 발전 비중 높은 한국전력의 운명은...석탄으로 생산한 '지저분한 전기'를 쓰는 것 때문에 피 땀 흘려 만든 우수한 제품을 해외에 팔지 못하고 기후 변화를 심하게 만든다고 비난을 받는 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이번 블랙록 CEO 연례 서한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고 효과적으로 대응에 나서길 기대하면서 블랙록 CEO 연례 서한의 한 문단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 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다양한 예측치 중 어떤 것이 가장 정확한지 아직 알 수 없으며,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정부, 기업, 그리고 주주들은 반드시 기후 변화에 대처해야 합니다.

p.s. 경제 주체들이 변해야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다. 그린피스는 이런 점을 알리기 위해 경제적 관점에서 기후 변화를 설명하는 팟캐스트를 만들어 매주 올리고 있다. 래리 핑크의 CEO 서한에 대해 다룬 에피소드는 아래에서 들어볼 수 있다.

▶ '블랙록 CEO' 래리 핑크가 보낸 행운의 편지 듣기
 
#인-잇 #인잇 #김지석 #생존의조건
인잇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