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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국에서는 팔아달라는데…"코로나 보다 무서운 규제"

자외선을 쬐면 색이 변하는 메니큐어 등을 생산하는 비비엠코리아 공장 전경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한국 경제의 큰 축인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서고 있습니다. 부품을 대는 중국 협력업체들이 휴업을 하니 도리가 없습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중국의 부품 도입선이 계속 막히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뿐 아니라 한국 경제도 적잖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코로나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코로나의 파도가 덮치지 않았는데도 공장을 못 돌리는 업체들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팔아달라고 간청을 하지만 코로나보다 무서운 정부 규제에 묶여 공장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규제에 발목 잡혀 수출과 일자리 창출 기회를 모두 잃고 있는 'Made in Korea'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 터키는 기존 실적 확인해주면 사겠다는데…

K2 흑표 전차는 자주국방, 국산 무기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전차의 심장 파워팩을 구성하는 엔진과 변속기, 냉각기 등을 국산화해서 명실공히 한국형 전차를 꿈꿨지만 엔진과 변속기 개발이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1,500마력 엔진은 고군분투 끝에 개발 및 양산 내구도 평가를 모두 통과했는데 S&T중공업의 1,500마력 변속기는 개발 내구도 평가를 통과하고 양산 내구도 평가에서 멈췄습니다. 9부 능선에서 전차 완전 국산화가 중단된 겁니다.

하지만 평가 기준이 너무 가혹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이 제시한 국산 1,500마력 변속기의 내구도 평가 규격은 전차의 일생 동안 주행 거리 즉 수명 주기 9,600km를 달리면서 잔고장 한번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 국방 규격보다도 엄격합니다.

S&T중공업의 변속기는 내구도 평가에서 9,600km에는 못 미쳤지만 7,110km를 달성했습니다. 그제(4일) 국회에서 열린 '방위산업의 미래비전과 지역 경제 기여방안' 세미나에서 군사전문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변속기의 최고 사양인 1,500마력이 (잔고장 한 번 없이) 7,000km 넘게 달렸다고 하면 세계가 깜짝 놀란다"며 "1,500마력 변속기 개발은 성공한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제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K2 국산 변속기 활성화 방안을 토론하고 있다.
김종대 의원은 개발 과정 정부의 무책임함을 꼬집어 성토했습니다. 김 의원은 "체계 개발 착수한지 2년이 더 지나서 개발 계획(9,600km 무결점 규격)을 내고 이걸로 개발하라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500마력 변속기 개발을 2년 이상 하고 있는데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이 가혹한 9,600km 내구도 평가 기준을 강요한 점을 비판한 겁니다.

터키 정부는 한국 정부가 이미 달성한 S&T중공업 1,500마력 변속기의 7,000km 이상 내구도 평가 주행 성능을 보증해주면 두산인프라코어의 1,500마력 엔진과 함께 한국형 파워팩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습니다. 터키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 방위사업청을 직접 방문해서, 또 터키 파견 한국 관료와 S&T중공업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7,110km면 터키 작전환경에서 충분히 전투 투입이 가능하다"며 "한국 정부가 1,500마력 변속기의 7,110km 내구 성능 보장만 해주면 사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요지부동입니다. "9,600km 내구도 평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어떤 보증도 못하겠다"입니다. 2018년 국정감사 결과 국회 국방위원회가 감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국산 변속기 내구도 시험 기준 관련 국방 규격의 모호성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도 방위사업청은 작년 "국방 규격을 재정립하겠다"고 국회에 보고한 뒤 모르쇠입니다.

방위사업청은 K2 전차 3차 양산 완전 국산화, 국산 파워팩 수출에 손을 놓았고 변속기 공장은 멈췄습니다. S&T중공업 노동조합 윤정민 지회장은 세미나에서 "조합원 평균 연령이 57세로 기술력이 상당하지만 현장 인원 170명이 휴직 중"이라며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한 협력업체들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독일제 변속기가 장착된 국산 K2 전차
● 해외에서 대박 났지만 한국 규제로 추가 수출 중단

제품의 종류는 많이 다르지만 K2 국산 파워팩과 똑같은 사례가 있습니다. 의사와 광학 연구진들이 창업한 비비엠코리아라는 벤처회사의 일입니다. 자외선을 쬐면 색이 변하는 물질을 개발해 매니큐어, 립글로스 등으로 상품화했고 대량 수출하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부터 미국에 매니큐어 300만 개, 립스틱 55만 개, 립글로스 55만 개를, 2017년 10월부터 일본에는 매니큐어 20만 개, 립스틱 5만 5,000개, 립글로스 3만 5,000개를 수출했습니다. 시쳇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물론 화장품이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엄격한 검증을 거친 뒤 수출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8가지 성분은 ICID(국제화장품 원료집)에 등록됐고 미국, 일본의 보건 당국은 이를 근거로 성분의 안정성을 확인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아이템이다 보니 2019년 초부터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수출 의뢰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박준철 비비엠코리아 연구소장은 "아시아 바이어들이 다급하게 매니큐어 4백만 개, 립스틱 1백만 개, 립글로스 1백만 개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아시아에는 팔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은 자체적으로 성분 검사를 해서 수입하는데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의 '자유판매 증명서'를 첨부해야 거래가 이뤄집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체 검사보다는 한국의 공식적인 인증을 신뢰하다 보니 한국에서 제품의 안정성 인증을 받아야 수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 일본도 인정한 해당 제품 성분의 안정성을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년 이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판매 증명서를 받을 길도 막혔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성분의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도 있지만 좀 더 검토해봐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박준철 소장은 "인체에 유해하다면 미국, 일본이 허가했을 리 만무하다"며 "화장품 대기업들이 영향력을 행사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어렵다지만 코로나 뚫고 수출하고 일자리 창출하겠다는 기업들입니다. 불합리한 규제만 없애주면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하는 기업들입니다. 규제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관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귀담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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