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강아지 놀이터에 왜 내 세금을 써요?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SBS 뉴스

작성 2020.02.08 11:49 수정 2020.02.08 13: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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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거의 유일한 운동은 수영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공설 실내수영장이 있는데, 단돈 3천 원이면 국제 규격의 수영장에서 편하게 자유수영을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수영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시민들의 건강증진과 취미생활 지원을 위해 시청에서 예산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영을 하지 않는 시민 입장에서는 "왜 내가 낸 세금을 '일부 시민'을 위해 사용하느냐?"라며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비슷한 일이 동물 판에도 벌어지고 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왜 '강아지 놀이터'를 짓냐?"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할 때면 반드시 목줄을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잘 알려진 펫-티켓이지만, 매번 목줄을 차고 산책하는 게 강아지에게 답답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반려견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목줄을 풀고 마음껏 뛰어 놀아야 정신건강에 좋다고 한다. 또 반려동물 인구가 천만에 달하면서 반려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각 지자체도 반려동물과 보호자들의 복지를 위해 앞다투어 반려견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며, 그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 동물복지지원시설 현황
그런데 지자체가 반려견 놀이터를 만들 때, 공설 수영장과 똑같은 불만이 제기된다. "왜 내가 낸 혈세를 가지고 강아지 운동장 따위를 만드냐? 동물 키우는 사람보다 안 키우는 사람이 더 많다. 차라리 사람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라"라는 민원이다. 이쯤 되면, 동물 키우는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서 반려동물 관련 시설을 만들어 당당하게 이용하고 싶어진다. 동물을 키우는 게 죄도 아닌데, 마치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반려동물 세금' '반려동물 보유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14일 동물복지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부터 반려동물 보유세 또는 부담금, 동물복지 기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세금 · 부담금 ·기금 등 여러 형태로 반려동물을 위한 돈을 모아 지자체 동물보호센터, 전문기관 등의 설치 · 운영비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계획 발표 직후 "또 세금이냐?", "반려견을 키우는 데 나라가 보태준 게 있냐?", "세금을 피하려 유기견을 양산하는 정책이다" 등의 비판 여론이 거세다.

하지만 반려동물 보호자가 낸 돈을 모아 반려견 놀이터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비반려인의 불만도 줄 수 있고, 반려인들도 보다 편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당당하게 동물 관련 정책과 서비스를 요구할 수도 있게 된다. 반려동물 보유세는 반려동물과의 공생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뿐만 아니라 유실·유기동물을 위한 동물보호센터 운영비 등을 정부와 보호자가 함께 책임진다는 의미도 가진다.

반려동물 인구가 크게 늘고,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복지에 투입되는 예산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동물복지 예산은 2015년 14억 9천만 원에서 2019년 135억 9천만 원으로 4년 만에 9배가량 늘었고, 동물보호센터 운영비 등 지자체 유기동물 관리 예산도 2016년 114억 7천만 원에서 2018년 200억 4천만 원으로 2년 만에 75% 증가했다. 앞으로도 관련 비용이 계속 늘어나고 국민 혈세가 점점 더 많이 투입될 텐데, 이런 부담을 정부가 전적으로 떠안는 게 아니라, 반려동물 보호자도 책임의식을 갖고 부담을 나누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 검토'라는 정부 계획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충분한 설명 없이 단순히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말이 앞서니 큰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농식품부 측은 "아직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 여부와 시기, 사용처가 구체적으로 정해진바 없으며 2022년부터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론화 과정 끝에 반려동물 세금이 국내 실정에 맞지 않고 부작용이 클 것 같다면 세금 부과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늘어나는 동물복지 예산과 행정력 소모를 고려하면, 반려동물을 위한 예산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복지를 위한 실효성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수 감소, 펫 산업 붕괴 등 산업계가 우려하는 부작용을 펼쳐 놓고 동일 선상에 놓고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을 물건처럼 여기게 하는 '보유세'라는 단어 대신, '반려동물 돌봄 비용(녹색당 제안 용어)'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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