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기생에서 공생을 생각하다

김지미 | 영화평론가

SBS 뉴스

작성 2020.02.09 11:01 수정 2020.02.09 15: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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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이 지난달 미국 영화배우조합이 주최한 시상식(Screen Actors Guild Awards, 이하 SAG 시상식)에서 최고 앙상블상을 수상했다. SAG 시상식은 배우조합이 주최하는 만큼 연기 외에 다른 부문은 없다. 크게 영화와 TV 부문으로 나뉘고 TV 부문에서 다시 TV용 영화, 드라마, 코미디를 대상으로 각각 남·녀, 주·조연 그리고 일반 앙상블·스턴트 앙상블 등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최고 앙상블상은 영화 전반적으로 모든 배우가 조화로운 연기를 선보였다고 평가될 때 주는 상이다. 그래서 사실상 '작품상'에 해당한다.

 '기생충'은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기생충'에 대한 관심은 엄청나다. 특히 내가 한국인이고 영화평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많은 이들이 이 영화와 출연 배우에 대한 질문을 쏟아부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는 낯설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계급과 불평등의 문제는 보편적이기 때문에 미국 관객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들의 관심은 스토리와 상징성에서 시작해서 배우들의 연기로 넘어간다. '기생충'은 사실 어떤 한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이 도드라지는 작품이 아니다. 누가 주연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배우의 연기가 조화를 이뤄 빛을 발하는 영화다.


SAG '최고 앙상블상' 수상한 영화 '기생충' 배우들 조화를 이룬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다른 감흥을 주었다. 한 번은 한 미국 친구가 "남자 주연 배우 연기가 너무 자연스럽고 인상적이야.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길래 당연히 송강호인 줄 알고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배우 어쩌고 하다 보니 친구의 표정이 영 이상했다. 다시 확인해 보니 그는 극 중 아들 역을 맡았던 최우식을 말한 것이었다. 물론 정반대 경우도 있었다.

 여자 배우들의 경우 그 혼란은 더 심해진다. 누가 주연 여배우의 인상적인 연기를 이야기하면 도대체 어떤 배우를 말하는지 분명히 확인하기 전에는 반응조차 불가능하다. 조여정, 장혜진, 박소담 그리고 이정은의 연기 색깔은 너무 달랐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그 무게감을 따진다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연말 영화 주간지 설문에서 올해의 주·조연 여배우를 꼽을 때 나 스스로도 누구를 어느 자리에 넣어야 할지 몰라 무척 곤란하기도 했다. 다 넣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빼자니 너무 아쉽고.

 해외 영화 평론가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뉴욕 타임즈의 두 평론가, 마놀라 다지스(Manohla Dargis)와 A.O.스캇(A.O. Scott)은 한국 시간으로 내일(10일) 있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후보자를 예상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두 평론가가 거론했던 여우 조연상 후보 10자리에는 <기생충>의 배우들이 중복해 이름을 올렸었다. 즉 박소담, 이정은, 조여정, 장혜진이 두 리스트의 여우 조연상 후보 자리를 가득 채웠다.

 ※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등 6개 부문의 후보로 최종 지명돼 실제 조연상 후보 지명은 불발됐다.

 다시 SAG 시상식으로 돌아가 보자. 최고 앙상블상을 받은 뒤 송강호가 무대에 올라 밝힌 소감을 떠올려 본다.


SAG '최고 앙상블상' 수상 소감 밝히는 배우 송강호<br>(사진은 게티이미지 코리아)

“ 
비록 제목이 '기생충'이지만
 '기생충'은 우리가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영화입니다.
오늘 최고의 상을 받고 보니까 우리가 영화를 잘못 만들지는 않았구나 생각이 듭니다.
 ” 

 
관객들은 겸손하고 재치있는 그의 멘트에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보냈다. 그는 다시 덧붙였다.
 
 “
오늘 존경하는 대배우들 앞에서 큰 상을 받아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당시 객석에는 마틴 스콜세즈 회심의 복귀작 '아이리쉬맨'에 출연한 전설의 배우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를 비롯해 한때 미남 배우의 대명사였다가 이제는 연기파 중견 배우들이 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있었다. 또 다른 전설인 메릴 스트립과 인디 아트 영화의 여왕인 로라 던도 웃고 있었다. '조커'로 전미 크고 작은 모든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호아킨 피닉스도 있었다.

 SAG 시상식의 남우주연상도 역시 호아킨 피닉스의 몫이었다. 그는 자기와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그들이 자신에 준 자극과 영감이 무엇이었는지 밝혔다. 위트와 감동이 가득한 그의 수상 소감도 큰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영광을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로 열연해 많은 이들에게 조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준, 이제는 고인이 된 히스 레저에게 돌리고 퇴장했다.

 송강호와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 소감을 보고 있으니 영화도 사람 사는 모습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작품은 누군가의 독보적인 천재성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재능이 조화롭게 어울릴 때 만들어진다.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야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천재성도 결국은 그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이들이 전수해준 영감과 경험으로 빚어진 것이다. 어느 것도 혼자 이뤄진 것은 없다. 그게 영화라는 예술이 갖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기생충'이 빚어낸 역사는 올 한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계속 으쓱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 작품을 통해 한국을 이야기하고 한국 밖 사회와 공감할 수 있었다. 세계 영화 시장에서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봉준호 감독이 '로컬 영화제'라 칭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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