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나는 70점짜리 부모가 되기로 했다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20.02.05 11:38 수정 2020.02.06 11:3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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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이 넘는 나이에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부모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예전에 부모님에 대한 첫 기억을 물어보셨잖아요. 기억 안 난다고 한 것은 사실 거짓말이었어요. 두 분에 대한 첫 기억은 하나예요. 두 분이 싸우고, 전 방에서 울고 있던 기억이요. 제 불안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또 부모님이다. 이 내담자는 심각한 불안의 근원을 부모에게서 찾았다. 이 내담자만이 아니다. 유도한 것이 아니건만 상담하는 분들 대부분 성격 특성의 근원을 부모에게서 찾는다. 말하는 내용 또한 놀랍도록 공통적이다.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는 내담자에게서는 과거 불안했던 환경이나 불안의 수위가 높았던 부모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갑자기 떨어지게 되었던 상실의 기억들은 우울증을 지닌 분들께 종종 듣는다. 식이 장애의 경우 통제적인 부모님, 반복되는 자해의 경우 성취지향적인 부모님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생애 초기 부모의 양육 방식은 아이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아기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며, 부모와의 관계가 미래의 대인관계 패턴의 원형이다. 따뜻하게 대해주는 부모 밑에서는 세상을 살만할 곳으로, 가혹한 부모 밑에서는 무서운 곳으로, 비일관적인 부모 밑에서는 혼란스러운 곳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때 형성된 시각은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바뀔 순 있지만,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 정신의학의 발달 이론들은 학자들의 수많은 직접 관찰을 통해 형성되어 온 것이며, 나는 그 이론의 살아있는 증거들을 매일 보고 있다. 오늘날 부모의 양육 방식이 아이 성격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기본 인식이 되었다. 정말 다행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생겼다는 것을 진료실에서 종종 느낀다.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육아가 내 마음대로 항상 잘 될 순 없다. 퇴근이 늦어지면 어린이집에 친구들보다 늦게 남겨진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 새벽 출근에 야근 후 퇴근하면 아이 얼굴 한 번 못 본다. 종일 회사에서 치이다 집에 돌아가면 말 안 듣고 투정부리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욱하기도 한다. 이게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인가. 물론 슬픈 일이지만 지나친 자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진료실에 오는 분들의 양심은 대체로 더 크다. 자기 합리화를 잘 하지 못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완벽한 육아란 것이 존재할까. 아이를 키워본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에 도전하고 좌절한다. 나 역시도 완벽한 육아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생애 초기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수없이 봐왔기에, 배운 그대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었다. 배운 바에 의하면 육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기의 요구에 민감하고 즉각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일관되게 반응해주는 것이다.

 말이 쉽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좋은 부모는 아기의 울음이 배고픔으로 인한 것인지, 쉬가 마려워서인지, 아니면 졸려서인지 그 차이를 민감하게 구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분명 내가 배우기는 했었던, 기억에 남아있는 저 말은 누가 한 것일까. 그 분은 정말 다 아기 울음의 원인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일단 나는 민감함 면에서는 탈락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으로 메꾸려 노력했다. 울 때마다 일관되게 즉각적으로 안아서 달래 주었다. 그 덕분인진 모르겠지만 아이는 밝게 자라났고 나와의 관계도 좋았다. 그렇게 2년을 보낸 어느 날, 나는 출근길에 신발을 신던 도중 허리 디스크가 터져 쓰러졌다.

 둘째는 더 손이 많이 갔다. 처음으로 말한 단어가 '아빠'일 때부터 불안하다 싶었는데, 하루에도 수백 번 쉬지 않고 아빠를 부르며 모든 의사소통을 그 단어 하나로 해결했다. 그렇게 아이의 요구를 맞추며 지쳐가던 중,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진행하는 친구들끼리 가족 동반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모든 부모들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둘째에게 종일 잡혀 힘들어하고 있는 나만 제외하고.

 다들 아빠만 찾는 둘째의 모습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 소아정신과를 전공한 친구가 내게 말해주었다.
 

 "내가 볼 땐 너무 100점짜리 육아를 하려는 형이 문제야. 그런데 당연히 그게 안 되고 지친 부모가 0점짜리 모습을 보이게 되거든. 그게 아이에게 훨씬 안 좋아. 조금 부족한 듯해도 꾸준한 70점짜리 부모가 되는게 아이에겐 더 좋아."


 그렇다. 난 과거의 실수를 깨닫지 못하고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리 디스크로 요양을 위해 며칠간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때, 첫째가 통곡하던 장면을 잊지 못 한다. 미리 설명하지도 않고 갑자기 사라진 나는 0점짜리 아빠였다. 이후에도 허리 통증 때문에 점차 '감정 그릇'의 크기가 줄어 안아 달라는 아이에게 쉽게 짜증내곤 했다. 웃으며 안아주던 아빠가 똑같은 상황에서 갑자기 짜증내는 모습. 이렇게 100점과 0점의 모습이 예측할 수 없이 등장하는 것은 아이를 혼란스럽게, 안정된 애착을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 친구의 조언을 들은 뒤로는 스스로의 기준을 낮추려 줄곧 노력하고 있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닌 '충분히 좋은 부모'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진 상황 역시 요즘 젊은 부모들의 자책감을 늘리는 요인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교된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밥을 사 먹게 된다. 부모로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사회가 바뀌었을 뿐.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아이와 깊은 교감을 하며 보낼 수 있다면, 하루 단 30분도 괜찮다. 하지만 이 역시 생각보다 어렵다. 퇴근 후엔 얼마나 몸이 무거운지. 아빠는 '게을킹'이라는 말에 충격 받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부모님도 오늘 퇴근 후 딱 30분만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 보길 바란다. 나 역시 오늘도 그 시간만큼 도전해보려 한다. 그때만큼은 스마트폰을 멀리 놓고. 그리고 스스로 칭찬해주자. 난 충분히 좋은 부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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