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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꿈'에서 '골칫거리'로 변한 집…거품 막을 묘책은?

주택정책 실패를 다룬 주간 이코노미스트 표지
지난해 12월 16일 대출규제와 보유세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초고강도 부동산 가격 안정 대책이 발표되면서 고가 아파트가 많은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혼돈에 빠졌다.

한국감정원은 23일 12·16대책의 효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아파트값이 7개월 만에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은 지난 21일 열린 '2020년 부동산 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수도권의 집값은 0.8% 하락하면서 7년 만에 하락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국의 주택 가격도 0.9%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연구원은 "12·16 대책 발표로 고가주택 가격의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다"면서 "대출 규제와 보유세 강화 등으로 매수심리가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 양도세 회피 매물이 증가하면서 상반기에 집값이 하락하겠지만 하반기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것과 달리, 보유세 부담이 증가하면서 올 하반기에도 고가 주택의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주식이나 채권시장처럼 세계적인 동조현상을 보이며 상승해온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비단 한국의 경우만은 아니다. 도이체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르스텐 슬록(Torsten Slok)은 지난해 11월 '2020년도 20대 위험'을 발표하면서 양극화와 저성장, 저신용 경제주체들의 신용경색 등과 함께 호주와 스웨덴, 캐나다의 부동산 가격 급락 위험을 제시했다.

하지만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월 16일 자 특집기사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국가에서 잘못된 정책으로 집이 여러 가지 문제의 근원이 됐다"면서, "앞으로도 집값은 소득증가 속도를 능가하며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전 세계의 집값은 20세기 중반까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등하기 시작했다. 소득이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너무 빨리 올랐다는 분석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주택연구센터(The Joint Center for Housing Studies of Harvard University)에 따르면 196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임대료는 물가상승분을 제외하고도 61%가 올랐다. 같은 기간 동안 중간 계층 세입자의 실질소득은 5%에 오르는 데 그쳤다. 18세기에는 농장이 가장 큰 자산이었고, 19세기 산업혁명 당시에는 공장이 가장 값이 나가는 자산이었지만, 지금은 주택이 압도적으로 큰 자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택이 자산 가치를 불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 것이다.
전세계 평균 주택가격 추이
전세계 자산 종류별 가치, 단위 조 달러
20세기 중반까지 집값이 안정세를 보인 것은 ①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고, ②교통수단의 급속한 발달로 이용 가능한 땅이 많아졌으며, ③토지에 대한 규제가 없어 자유롭게 집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시장은 혁명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서방국가들은 전쟁 동안의 희생에 보답하고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주택보급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들은 주택담보대출 전담 기관과 금융기관을 설치하고 싼 이자로 쉽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

1940년부터 2000년까지 선진국의 GDP 대비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배 이상 늘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자가주택소유비율은 45%에서 70%로, 영국의 자가주택보유비율은 30%에서 70%로 높아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전과 달리 20세기 후반의 주택수요 증가는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모기지 대출 증가와 함께 교통수단의 발달 지연에 따른 교통체증, 토지개발 규제를 꼽았다.

각국 정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면서도 토지이용 규제를 확대해 나갔다. 영국에서는 1940년대와 1950년대 그린벨트를 설정해 도시의 확산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비슷한 규제를 도입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도 주택 신축 허가를 받는 데 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의 인구 1천 명당 주택 신축 규모는 1960년대의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 맨하탄의 경우 1960년 한 해 동안 1만 3천 채에 달했던 주택 신축 허가 규모가 1990년대에는 10년 동안 2만 1천 채에 그쳤다.

선진국의 1천 명당 주택 건축 건수
선진국의 자가주택소유 비율
이코노미스트는 도심지역의 주택신축 규제 강화가 기존 주택 소유자들의 주택신축 반대 때문이라면서 미국 다트머스 대학 윌리엄 피셸(William Fischel) 교수의 '주택 소유자 투표 가설(Homevoter Hypothesis)'를 제시했다. 한 지역의 주택 소유자가 많을수록 그 지역 주택 소유자들의 주택 신축 반대는 확산한다는 이론이다. 미국 샌디에고와 뉴욕에서도 비슷한 조사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린벨트에 집착하면서 도심에서 15분 거리에 주택 대신 세차장이 즐비한 영국 런던, 94%의 택지에 대해 아파트 건설을 금지하고 단독주택만 허용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이들 도시에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주택 공급을 억제하는 규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주택 신축에 따라 증가하는 세수가 주택이 신축되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중앙정부에 귀속되는 조세제도도 주택신축 허가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스위스의 경우 주택 신축에 따른 세수 증가분이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돼 주택신축이 비교적 많았고, 상대적으로 주택가격 상승률이 낮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집값 상승과 최근의 집값 상승을 불러온 것은 무엇보다 낮은 금리와 쉬운 모기지 대출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무모한, 때로는 불법적인 모기지 대출이 증가하면서 부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계부채가 늘어났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가계부채는 가계소득의 104%에서 144%로 증가했고, 이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 주택가격은 50%가 상승했다. 이런 대출 증가는 결국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고, 전 세계적인 금융시스템 붕괴를 초래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모기지 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나갔다. 소득의 일정 규모 이상은 대출을 해주지 않는 총량 규제가 대표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 비은행권의 모기지 대출은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금융위기 이전 성행했던 초고속 모기지대출이 2018년 슈퍼볼 광고에 다시 나타났다. 미국에서 이런 비은행권 모기지 대출이 전체 모기지 대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비은행권의 모기지 대출 비중
한국 보험사의 대출 광고 전단지
지난달 16일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시가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주택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시가 9억 원 이상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을 20%(과거 40%)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강남지역에서 나타난 보험사의 대출 광고 전단지는 정부의 은행권에 대한 대출규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전통적으로 정치인들은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선호한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주택 소유자들은 재산이 증가한 것으로 느끼고 소비를 더 하게 되고, 소비를 더 하게 되면 생산이 증가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유권자들이 경제 사정이 좋아진 것으로 느끼게 되면 현직 정치인들이 재선 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주택가격의 상승은 집이 없는 사람들의 임차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임차료가 올라가면 그만큼 소비 여력은 줄어든다. 차입에 의존한 경기부양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IMF의 연구에 따르면 가계부채 증가는 처음에는 경기를 진작하고 고용을 증가시키지만, 3~5년 후에는 차입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면서 경기를 후퇴시키고,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1960년부터 2000년대까지 선진국 경기침체의 4분의 1이 주택가격의 급락과 연관이 있고, 주택가격 급락에 따른 경기침체는 그 정도와 후유증이 더 심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의 실질 주택가격은 평균 15%가 올라 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아졌고, 영어권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비싼 집값은 경제에 타격을 주고 정치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주택정책에 따른 지나친 집값 상승은 기업가 정신을 떨어트리고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성장률을 끌어내리며 금융불안을 초래하고, 부의 양극화와 인기영합주의(Populism)를 확산해 정치적인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분석이다.

지난 70년 동안 전 세계의 실질 주택가격은 4배가 됐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18개월에서 2년마다 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반세기 동안 지속됐듯이 지난 70년 동안 계속된 집값 상승세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득 증가와 교통시스템의 낙후에 따른 출퇴근 시간 증가로 대도시의 주택 수요는 계속 늘어나지만, 개발 규제 등에 따른 주택공급의 부족으로 도시의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①주택담보 대출의 효과적 관리 ②교통시스템의 개혁 ③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꼽았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의 주택공급이 충분하게 이뤄졌다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0%가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특히 주택공급 확대는 주거안정과 함께 경제성장, 정치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도했다.

실례로 싱가포르는 국민의 80%가 정부가 공급한 주택에 살며, 정부가 주기적으로 주택 리모델링도 하면서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빈민촌의 생성을 막기 위해 여러 계층이 함께 살도록 조정도 한다. 일본 도쿄는 2000년대 초중반 주택 인허가를 빠르게 하고 주민들에게 재량권을 더 부여하면서 주택공급이 30%가 늘어났다. 2013년에서 2017년까지 도쿄는 영국 전체의 주택공급량과 비슷한 규모의 주택을 지었고, 그 결과 2000년 대비 주택가격은 9%가 하락했다. 같은 기간 영국의 실질 주택가격은 144%가 상승했다.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 가격 안정 대책 등으로 집값 불안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 3구의 집값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장기적인 집값 안정은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는 주택의 공급이 이뤄졌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꿈인 아늑한 내 집 마련을 좀 더 쉽게 하고, 주택이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제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주택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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