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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9년간 가정폭력'…"집은 지옥이었고 우린 노예였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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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생겼습니다. "아니 39년 동안 맞고 살면서 왜 주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 주변의 이웃은 보고도 모른 척했나?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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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준 취파용
송성준 취파용
피해 어머니가 남편을 신고할 생각을 아예 못 한 건 아닙니다. 지난 1998년 이러다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파출소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해 놓고선 그 길로 파출소로 달려간 겁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남편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했고 석 달간 강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앞으로 잘하겠다"며 선처를 호소해 퇴원해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뿐이었습니다. 돌아온 것은 더 가혹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후론 신고는커녕 이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감시와 폭행은 더 심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집을 나가고 나서 혼자 고통을 받고 아이들이라도 고통 없이 생활해 주는 것이 엄마로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특히 만약 자신도 어디론가 사라졌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이들과 자신을 추적해 보복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웃에 도움을 요청한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아래층에 세 들어 살거나 바로 이웃집에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했지만 "못 한다" 는 대답이었고 이유는 "보복이 두려워서"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17일 집에서 죽도록 맞고 이웃집으로 달려가 "경찰에 신고 좀 해달라"고 했을 때도 "보복이 두려워 못 하겠다"며 "직접 해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결국 딸과 함께 경찰서로 가 고소장을 접수시켰고 아버지의 구속으로 지긋지긋했던 39년간의 가정폭력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 "아버지 구속은 매우 이례적…경찰의 적극적 수사로 가능"
송성준 취파용
송성준 취파용
이번 사건을 수사한 부산 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가정폭력 고소장 접수 후 구속 수사를 한 것은 최초의 사례라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가정폭력으로 가해자를 구속시키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겠죠.

여청수사팀은 고소장을 접수한 뒤 피해자 보호와 입증 자료 수집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담당 부서원뿐만 아니라 팀장이 직접 수사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보호기관을 주선하는 등 신변 보호에 나섰고 증거 수집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이 가운데 공소시효가 아직 지나지 않은 12건의 범죄 일람표를 작성하고 공소 시효가 지났더라도 정상을 참작할 수 있는 피해자의 자필 수기와 녹취 음성파일 상해진단서 등을 첨부해 구속수사를 이끌어 냈습니다.

수사를 이끈 남부서 권 환식 여청수사팀장은 "가정폭력 기간이 40년 가까이 진행됐고 그 폭행의 강도가 너무 심각해 가족과의 격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 "법률 홈닥터 소속 변호사의 법률 자문과 지원도 큰 역할 해"
송성준 취파용
이들 피해 가족은 "아버지를 격리시킬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와 함께 법률홈닥터 변호사의 적극적이고도 실질적인 도움이 너무 컸다"며 "꼭 가정폭력 피해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버지를 고소하기 전까지는 이런 제도가 있는 지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번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한 송승은 변호사는 법률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쉼터' 소개와 수사와 소송에 대비한 증거 수집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고 가족은 밝혔습니다.

송 변호사는 "가정폭력을 빙자해 자신의 이혼을 합리화하려는 일부 악용 사례도 있지만 이 사건 자체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하며 문제는 이 어머니 한 명으로 끝나는 가정폭력 사건이 아니라 그 자녀들한테도 그대로 아동학대로 이어졌고 빨리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법률홈닥터는 법무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협의체가 함께 진행하는 사업으로 법률홈닥터가 지역거점 기관에 상주하면서 취약계층을 비롯한 주민에게 1차 무료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찾아가는 서민 법률주치의' 제도입니다. 전국에 66곳이 설치돼 운영 중입니다.

송 변호사는 법률홈닥터 제도는 특히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독거노인, 결혼이주여성, 저소득 주민 등 법률적인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며 소송 등 법률적 지원이나 도움뿐만 아니라 채권 채무 임대차, 이혼 친권 양육권 상속 유언, 손해 배상, 근로관계 등 생활법률 전반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피해 가족은 2차 보복 살해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
송성준 취파용
가해자 아내와 두 자녀는 한결같이 2차 보복 살해에 대한 공포 때문에 숨어 살아야 한다고 두려워했습니다. 가해자의 치밀한 성격과 집요함 잔인함에 비춰 형을 살고 나오면 가족들을 끝까지 추적해 보복을 할 것이라는 피해 의식이 매우 강했습니다.

피해 어머니는 탄원서에서 "집에 있는 시한폭탄(남편)을 제가 안고 있으면 아이들은 좀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왔다"며 '남편을 감옥에서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당부했습니다.

큰딸도 "가정폭력은 아동폭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며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일생을 망가뜨리는 나아가 피해자는 평생을 보복의 두려움에 살게 되는 심각한 범죄"라며 "가해자로부터 벗어나 피해자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들도 "그 인간(아버지)이 평생 행하고 있는 폭력들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알려주시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피해 가족은 "가해자가 아닌 가정폭력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하는 이런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며 "가정폭력에 대한 보다 엄격한 법 집행과 처벌 강화 그리고 사회적 인식 변화를 강조했습니다.

● "가정폭력은 중대 범죄란 사회적 인식 변화와 적극적 피해 대책 마련해야"
딸의 탄원서 첫 페이지
지난 2018년 한 해 동안 경찰에 접수된 가정폭력은 24만 건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수사가 진행된 사건은 4만여 건. 불과 17%에 불과합니다. 신고해도 가족 일은 가족끼리 해결하라는 인식이 아직도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가정폭력은 철저하게 한 가정을 무너뜨리고 가족 해체를 불러왔습니다. 2018년 이혼한 아내를 미행한 끝에 살해하는 '등촌동 살인사건'의 사례에서 보듯 2차 보복 살해의 위험도 상존합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대책도 부실합니다. 정부는 등촌동 살해사건을 계기로 접근금지 명령을 어길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징역형도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어도 관련 법안은 국회에 머물고 있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보복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률홈닥터 송승은 변호사는 "가정폭력의 2차 보복피해를 막기 위해 접근금지 명령 등 다양한 보호 대책과 처벌강화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보복 위험에 살아야 할 거예요. 제 동생은 계속 숨어 살아야 할 거고, 엄마도 그렇고…" 피해자 가족의 절규가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법적 제도적 보완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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