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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재판과 앙가주망의 변증법

[취재파일] 재판과 앙가주망의 변증법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작성 2020.01.20 09:09 수정 2020.01.20 09: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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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재판-법정, 판사 "나는 법관이기에 앞서 부족한 사람이라 하나하나에 상처받고 평정심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어떤 예단도 갖지 않고 공정성을 잃지 않고 재판할 것입니다. (...) 법관은 눈을 가리고 법을 보는 정의의 여신처럼 재판 과정을 확인하고 정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고독한 수도자에 불과합니다.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비난하는 일각의 태도는 마치 경기 시작도 전에 승패를 예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일 선고를 앞둔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의 2심 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첫 재판에서 이처럼 길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일각에서 양승태 전 대법관의 전속재판연구관으로 재직했던 차 부장판사의 이력을 거론하며 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공정성을 공공연히 의심하자, '고독한 수도자'라는 비유를 들어가며 자제를 요청한 겁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최종적 결론이 사법부를 통해 내려지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됐습니다. 십수 년 전부터 이 말이 나왔지만, 아직도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는 사건들의 결론이 법원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판결은 물론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 과정까지 사회적 홍역을 치르는 상황 속, '고독한 수도자'를 소환해야만 하는 법관들의 정신적 부담은 이처럼 상당해 보입니다.

● 법복을 입는 자, '이중인격'의 무게를 견뎌라?

헌법 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관의 직업적 양심은 '헌법', '법률', 그리고 '독립'이라는 주변 단어에 의해 몇 중으로 규율됩니다. 법관은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사회적 판단을 포함한 양심의 자유를 가지지만, 법관으로서 판단을 내릴 때 그의 '개인적 양심'은 철저히 제약받는다는 겁니다.

변호사 강석정은 논문 <법관은 두 개의 양심을 가져야 하는가?> 에서 법관의 판단과 관련해 법에서 '양심'을 언급하는 건 일본과 우리나라 정도의 꽤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헌법은 법관에게 이중인격과 정신분열을 강요하는 난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권력과 국가와 집단의 권위가 끊임없이 의심받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그러면서도 정치적 갈등 해결 과정의 상당 부분을 사법부에 떠넘기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판사의 '양심'에 지워진 이중적 지위는 매우 숭고해 보이면서도, 그만큼 꽤나 위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사진=연합뉴스이 '이중 양심'을 견뎌야 하는 자로서의 아우라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SNS에 '가카의 빅엿'을 올렸던 서기호 판사가 근무평정 미달을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역시 SNS에 '가카새끼 짬뽕'을 올렸던 이정렬 부장판사가 재판 내용을 공개한 일로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을 때, 보수 진영에선 '정치 판사들로부터 사법부 권위'를 세웠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사법행정권의 행사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치명적 의혹을 낳았습니다.

양승태 대법원 이후, 사법부는 평판사들도 참여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꾸렸습니다. 부정적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토론과 합의를 통한 새로운 권위를 형성하자는 노력이자, '조직'의 개입 없는 독립적인 법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발버둥이었습니다. 이러한 법관의 이상은 전국법관대표회의 1차 회의에서의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말에서도 나타납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일부에서 제기하는 법관 개인의 신상이나 성향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법원의 노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국민의 진정한 의사는 법원이 어떠한 사회 세력이나 집단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아니한 채 헌법의 명령에 따라 오직 법률과 양심에 의하여 공정하게 판단해 줄 것이라는 데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판결과 앙가주망의 변증법

그 중심에 섰던 법관대표회의의 주축들이 최근 법복을 벗었습니다. 의장을 맡았던 최기상 부장판사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폭로하며 사법부 자정을 촉구했던 이수진 부장판사는 총선 출마를 위한 공직 사퇴시한을 며칠 앞두고 사직했습니다. 곧이어 더불어민주당 영입설이 흘러나왔습니다. 언제부터 정치권과 교감이 있었던 것인지, 법관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정치 행보를 타진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물음들엔 여전히 답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정치권에서 제안이 온 것은 맞지만 아직 고민중'이라며 정치권 행 자체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을 맡았던 장동혁 부장판사도 선거를 앞두고 사직했습니다. 장 부장 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재판 심리에는 정치성을 개입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면서도, "정치를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왜 미리 사직하지 않고 재판 도중에, 사퇴 시한을 코앞에 두고 사직했는지" 묻자 "오랫동안 꿈꿔왔던 판사직을 사퇴하는 것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가 많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조국 전 장관의 페이스북 글을 빌리자면, 재직 시 재판과 앙가주망 사이에서 꽤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론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재판 업무를 맡은 도중에 정치권과의 교감을 하고 있었다면, 그 판사의 심리가 공정한지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나라의 판사들은 '외부로부터 독립된 엄격한 법리의 해석자' 일 땐 판결이 결과적으로 정치적 현실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법복을 벗은 개인으로서 정치적 참여의 주체가 되고자 할 땐, 그 주체로서의 자격을 공격받는 모순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고위 법관들이 법관의 이상으로 '고독한 수도자',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법관'을 상정한 상황에서, 법원에 몸담으면서 정치권과 교감한 판사들을 보는 대중들의 시선을 성급한 예단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총선 앞두고 정치 판사 논란여기서 다시 판사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이 다시 소환됩니다. 실체 구석구석에 정치적 쟁점이 얽히고설켜 있는 사안들이 사법부로 밀려오는 상황 속에서, 이런 사안들을 심리할 땐 개인적 양심의 정치성을 멸균하듯 없애는, '초인적 법관' 개념을 상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많은 판사들이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상황 속에서 '판사'라는 직업적 인격에 대한 정의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법부의 신뢰 회복은 이러한 '초인적 법관' 상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비단 사법부만의 고민이 아니라, 수많은 갈등의 해결 작용을 사법 절차로 떠넘긴 우리 사회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 조용히 처리된 사표의 부적절함에 대하여

통상 인사철인 2월에 법관 사직서를 수리하는 대법원이, 출마를 염두에 둔 판사들의 사직서는 공직 사퇴시한 전에 신속히 수리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습니다.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총선 출마에 편의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며 "대법원장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와 대법원 관계자는 "선거에 나가겠다고 한 사람들을 재판에 두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답변에선 앞서 언급한, 개인적 인격과 직업적 인격을 완벽히 분리한 '초인적 판사'가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사법부 스스로의 회의감이 읽히기도 합니다.

이제 사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엔 또 하나의 과제가 던져졌습니다. '초인적 판사'를 가능케 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을 경주할 것인지, 아니면 판사의 정치성과 관련한 새로운 논의와 고민을 모색할 것인지. 고르디온의 매듭과도 같지만, 단칼에 끊는 방식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마를 꿈꾸는 판사들에 대한 대법원의 조용하고도 신속한 사직 처리는 여러모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판 외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양심과 법리에 따라 재판하는' 법관의 아우라를 복원하는 데에도 기여하지 못했을 뿐더러, '판사의 정치성'에 대한 사법부 내·외부의 논의를 주체적으로 촉발시킬 기회도 잃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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