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누구를 위하여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개편하나?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20.01.15 15:42 수정 2020.01.17 13:4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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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헤밍웨이는 물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대한항공 승객들도 묻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마일리지를 개편하나?"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적립·사용 제도를 바꾸겠다고 밝힌 데 대해 승객들이 발끈하고 일어선 것입니다. 대한항공은 사용 편의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분명히 '개선'했다고 하는데, 왜 승객들은 '개악'이라며 반발할까요?

● 오만과 편견

시작은 선(善)했습니다. "지난해부터 소멸하기 시작한 마일리지를 승객들이 더 많이 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가 나올 때까지는 적어도 그랬습니다. 이에 대한항공도 "비행기 표를 구매할 때, 현금뿐 아니라 마일리지도 최대 20%까지 같이 쓸 수 있게 하겠다. 그러면 승객들이 마일리지를 더 적극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 제도를 '복합 결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여기까지도 좋았습니다. '아, 이제 마일리지를 더 잘 쓸 수 있겠구나'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니 '이거 뭐지?'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더 자세히 보니 결국에는 시쳇말로 '낚였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복합 결제'는 대한항공 홈페이지나 앱에서 항공권을 살 때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터넷이나 다른 여행사를 통해 구매할 때는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승객 대다수는 항공사 홈페이지나 앱에서 항공권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항공사들은 영업 비밀이라며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취재해 보니 20%가량만 홈페이지나 앱에서 항공권을 사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10명 중 8명은 인터넷 최저가 사이트 등 다른 경로로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 싼 표를 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경제 활동 주체인 사람을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규정합니다. 그런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인'으로서 더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경로를 알고 있다면, 또 그 플랫폼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면, 홈페이지나 앱 대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실제로 여행사들은 항공사에서 항공권을 '미리',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표를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실적으로 '복합 결제'를 이용할 경우 상대적으로 더 비싼 항공권을 구매해야 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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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홈페이지나 앱에서만 가능한 대한항공 '복합 결제'
그런데도 대한항공은 "홈페이지나 모바일에서도 여행사와 동일한 프로모션와 특가운임 항공권을 판매한다. 최저가 항공권 검색 사이트와 비교해도 비싸지 않다"라고 단정적으로 설명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지요?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항공권을 구하려고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지는 승객들에게는 '오만하고, 편견적인' 자의적 해명은 아닐는지요.

● 마일리지여 잘 있거라!

흥미로운 점은 이 '복합 결제'가 이번 마일리지 제도 개편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미끼 상품'이고, 핵심은 실제 마일리지 사용과 적립 기준을 크게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역별>로 적용했던 마일리지 사용과 적립 기준을 <운항 거리>별로 나눈 것인데, 가령 북미·유럽·동북아·서남아 이렇게 지역별로 구분하던 것을 같은 미국이라도 LA와 뉴욕 등을 <거리>에 따라 차등화한 것입니다. 인천을 기준으로 보면 뉴욕은 LA보다 4,000㎞가량을 더 날아가야 하니 그만큼 더 많이 차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대한항공이 만든 새 기준을 적용하면 승객들은 혜택을 더 볼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물론, 대한항공 설명처럼 일부 단거리 노선은 보너스 항공권을 발급받는 데 필요한 마일리지가 줄어들기는 합니다. 일본 후쿠오카, 중국 칭다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일반석과 비즈니스석 마일리지 차감률은 각각 33%와 11% 줄어듭니다. 그래서 대한항공도 64개 노선은 공제율이 줄어든 반면, 인상된 것은 48개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은 아시아만 벗어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장거리 노선일수록, 일반석보다 비즈니스석, 일등석으로 갈수록 공제 비율이 대폭 높아지는 것입니다. 가령, 인천에서 뉴욕 등 미주 동부로 가는 경우를 보면 일반석은 28%, 비즈니스석은 44%, 일등석은 무려 69%나 마일리지를 더 많이 써야 보너스 항공권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다른 인기 노선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석 14%, 비즈니스석 28%, 일등석은 50%를 현재보다 더 차감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서남아도 좌석 등급별로 37%에서 최대 83%까지, 사실상 2배 가까이 더 마일리지를 써야 보너스 항공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세현 취재파일-2비행 거리·좌석을 높일수록 마일리지 공제율 대폭 높아져
현실적으로, 승객들은 대한항공이 혜택을 준다는 단거리 노선·일반석보다는 '장거리·비즈니스석 이상 좌석'에 그동안 적립해온 마일리지를 쓰려고 합니다. 단거리 노선·일반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할인 판매하는 경우도 많아 마일리지를 쓰는 가격대 성능비, 이른바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한항공이 정작 승객들이 많이 찾는 인기 노선은 마일리지 차감을 많이 하고, 마일리지를 잘 쓰지 않는 비인기 노선은 인하한다고 그럴 듯하게 생색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처럼 구매할 때는 마일리지를 더 쓰게 됐는데, 정작 여행사 등에서 자주 구매하는 가장 저렴한 '일반석 Q등급' 적립률은 70%에서 25%로 대폭 감소시켰습니다.
가장 저렴한 일반석 'Q 등급' 마일리지 적립률 대폭 감소
포장은 그럴싸하지만 결국 핵심은 한곳으로 수렴합니다. "소비자들의 마일리지 사용량이 줄어드는 경우보다, 늘어나는 경우가 현저히 많다. 동시에 이번 개편으로 이익을 보는 것 소비자가 아닌 대한항공이다." 승객들은 외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마일리지여 잘 있거라!"

● 참을 수 없는 '부채의 무거움'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대한항공은 왜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것일까요? 취재해 보니 대한항공 측도 승객들에게 험한 비난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제도 변경을 강행하는 것일까요? 이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제회계기준(IFRS)상 마일리지 판매 대금은 전체가 부채, 즉 빚으로 인식됩니다. 승객들 마일리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대한항공 장부에 기록되는 빚이 더 커진다는 뜻입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빚으로 기록되는 부채가 많아지면 경영에는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항공기를 대여해 들여오거나 항공기 연료 등을 살 때 신용도가 떨어져 더 크고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너는 빚을 못 갚을 가능성이 크니 이자도 더 내고, 할부 기간도 짧게 하고, 돈도 빨리 갚아야 해"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대한항공의 이 마일리지 빚은 무려 2조 3천억이 넘습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객들이 가진 마일리지를 어떻게든 털어내야 하는 절박한 처지입니다.

물론 대한항공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다른 외국 항공사들보다 적립도 많이 해주고, 마일리지 유효기간도 더 길고, 가족 간 공유도 해주고,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여전히 매우 후하다. 한마디로 덜 주는 게 아니라 그동안 많이 주던 걸 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대한항공은 이를 <현실화>라는 고상한 단어를 이용해 설명합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만난 승객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할 말이 많으셨습니다. "더 저렴한 다른 외국 항공사 대신 당신 비행기 열심히 타주고, 신용카드도 대한항공 제휴 카드로 가입해 부지런히 써주고, 카드사에서 주는 포인트 혜택도 포기하고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적립했는데…. 게다가, 심지어 총수 일가가 해외에서 멀쩡하게 가던 비행기 되돌리고, 명품 밀수하고,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하고, 사람들까지 폭행하고…. 그래서 우리 얼굴에 먹칠하고 망신살 뻗친 것도 용서하고 충성도 높게 애용해줬는데, 이제 와 우리를 이렇게 대한다고?"

이런 관점에서 왜 승객들이 마일리지 혜택 변경에 대해 공정위에 고발 조치하려고 공동소송을 진행하고(법무법인 태림), 공정위조차 "소비자 입장을 헤아려 달라"라고 요청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한항공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른바 '세계적 기준에 맞춘다'라는 미명 아래. 자신들의 '참을 수 없는 부채의 무거움'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건 아닌지, 승객들은 준엄하게 묻고 있습니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사람에 대한 근원적이고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1. 사람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저는 이번 취재를 하며 톨스토이가 던진 같은 질문을 대한항공에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1) 대한항공 안에는 무엇이 있으며, 2) 대한항공에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3) 대한항공은 무엇으로 사는가?

"1) 대한항공 안에는 '승객을 최우선시하는 마음'이 있고, 2) '승객 최우선' 이외는 무엇도 허락되지 않으며, 3) 대한항공은 우리 비행기를 애용해주시는 '승객들로 살아간다'"라는 답을 하고 싶었지만… 그건 진실이 아닌 거짓에 가깝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1) 대한항공 안에는 '출발한 비행기마저 과감히 되돌리는 용기'가 있고,
2) 대한항공에 허락도 되지 않은 것은 '승객과 임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며,
3) 대한항공은 '가족들끼리 싸움질한 뒤 그것을 밖으로 알리고, 유리컵도 과감히 던지는 정도의 용기'로 살아간다,

이게 더 솔직하고 적나라한 대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참고로 톨스토이는 사람 마음에는 '베푸는 마음'이 있으며,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기 앞날을 알 수 있는 능력'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작품을 통해 전했습니다.)

더 나아가, 경영 부채는 승객들이 어렵게 고이고이 쌓아온 마일리지를 털어내기보다, 경영을 더 잘해서 영업 실적을 높여 해결해간다면 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았을까요?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지분을 가진 가족들이 경영권을 두고 악다구니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바람은 아직은 이상적인 얘기인 거 같았습니다. 대한항공이 어떤 길로 가는 길을 시청자 또 승객 여러분과 '비판의 시각'으로 지켜보겠습니다.


▶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도움 될까…"적립률↓ 소진율↑" (한세현 기자, SBS 8뉴스, 2019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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