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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낙하산 인사'인가 국정철학 실현인가 - 靑 경제수석이 기업은행장으로 간다면

● 10년 만의 '외부 인사' 기업은행장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4년 연속 꼴찌에 머물던 야구팀 이야기입니다. 야구에 대한 전문성 없는 단장(남궁민 분)이 외부에서 새롭게 영입되면서, 기존 야구팀의 비효율과 파벌싸움 등 고질병을 고쳐나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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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기업은행에도 지난 2일 외부 인사가 새롭게 조직의 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두 번째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던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입니다. 지난 3일 아침, 윤 행장은 기업은행 본점으로 첫 출근을 하려 했지만 출입을 막는 노조에 막혀 끝내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윤 행장은 본점이 아닌 다른 곳에 임시사무실을 차리고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3일에는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 기업은행장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6일에는 故 강권석 행장 묘소를 참배하며 본격적인 행장 업무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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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행장 측은 노조와 계속 대화를 시도한 뒤, 정상 출근이 가능해지면 취임식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기업은행 노조는 자진사퇴할 때까지 매일 아침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어서 기업은행이 한동안 정상화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 기업은행 노조 "함량 미달 낙하산 인사"

기업은행에선 2010년부터 3차례에 걸쳐 내부 직원이 승진을 통해 행장에 올랐습니다. 경제부처 관료 출신이 '낙하산 인사'로 기업은행장에 임명되던 과거의 관행이, MB 정부인 2010년 조준희 행장 때부터 내부 승진 전통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선임하는 자리인 만큼 '낙하산 인사'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과 2016년, 각각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내정하려 했지만 노조와 시민단체 그리고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의 강한 반대로 철회한 바 있습니다.

10년에 걸쳐 낙하산 인사를 막아냈던 전통이 다시 깨어지자 기업은행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내부 승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노조가 반대하는 건 아니다. 경제 관료, 청와대 출신 인사를 기업은행장으로 보내 관치금융을 하던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반발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기업은행은 내부 인사가 행장으로 이끌었던 지난 10년간 경영성과가 좋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윤 행장 출근 저지에 나선 기업은행 노조와 전국금융노조는 상위단체인 한국노총에 요구해 정부와 정책협약 파기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한국노총은 오는 1월 21일에 새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윤종원 신임 행장을 막아서면서 자진 사퇴를 요구한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도 이번 한국노조 위원장 선거에 런닝메이트격인 사무총장 후보로 나선 만큼, 기업은행장 임명 문제도 한국노총의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근 저지 투쟁하는 기업은행 노조 (사진=연합뉴스)

● 남이 할 땐 "독극물", 내가 할 땐?

기업은행 노조가 청와대를 비판하는 가장 큰 근거는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이 했던 발언에 있습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 대표 시절 '기업은행 만큼은 외부인사를 임명해선 안 된다'라고 했고,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기업은행장 임명에 반대해 함께 싸워왔던 세력"이라고 말합니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고 했던 말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2013년 박근혜 청와대가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을 기업은행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당시 민주당 정무위원들은 성명을 냈습니다.

<2013년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국회의원 성명>
"과거 산업화 시대의 인사와 관행, 관치금융의 폐습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개발독재 시대의 관치금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경우 또다시 금융위기가 도래하고 국민들을 불행하게 할 것"
"정부는 좋은 관치도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은 것. 좋은 관치가 있다는 말은 좋은 독극물, 좋은 발암물질이 있다는 것처럼 어불성설"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내부인사 출신을 내치고, 모피아를 낙하산으로 보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중소기업은행장의 모피아 낙하산 인사 계획을 하루빨리 단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6년에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업은행장으로 보내려는 시도가 있자 민주당이 반발하며 전문성 없는 금융기관 임원 선임을 제한하는 '낙하산 방지법'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민주당이 집권 세력이 되자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출근길 막힌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 (사진=연합뉴스)

● 청와대 "윤종원, 국정철학 잘 이해해"

출근 저지 논란이 있자 청와대는 "청와대에 있던 분들(경제수석으로 근무한 윤 행장)이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한다"고 밝혔지만, 낙하산 인사에 대한 해명은 되지 못했습니다. 대선 캠프 출신이나 청와대 출신의 낙하산 인사는 정부의 국정철학이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낙하산 인사의 문제는 해당 공공기관의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전문성이 있는지 등인데 이에 대한 답변은 없이 동어반복 수준의 입장만 밝힌 겁니다. 10년간 내부 승진으로 잘 운영해오던 기업은행에 왜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 관료를 임명해야 했는지에 대한 청와대의 합리적인 설명은 없었습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선거를 통해 집권하면 결국 정부 기관을 통해 통치를 해야 한다. 집권한 청와대가 국정철학을 이해하는 장관과 공공기관장을 임명함으로써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참여정부 때 보다 문재인 정부 인재풀이 넓어졌지만, 아직 한참 부족하다. 일하는 능력이 검증된 사람을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청와대는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정철학이 맞는 사람들 중 능력 있는 사람들을 공공기관장으로 써야 개혁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재수와 금융위

청와대의 사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특히 금융, 과학, 국방 쪽에 철학이 맞고 능력 있는 사람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보수 정권이 오래 집권한 만큼, 민주 정부가 집권을 한 뒤 개혁과 혁신을 하려면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을 통해 목표로 했던 정책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 집권한 세력이 기관장에 코드 인사와 낙하산 인사를 하는 것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모든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가 되려면 몇 가지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미 검찰의 이른바 '환경부 화이트리스트' 수사와 유재수 전 부시장 수사를 통해서 이번 정부의 부적절한 인사 관행이 일부 수면 위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먼저 전문성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논공행상식으로 공공기관에 임명하는 경우입니다.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에 관련 이력이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백두대간 관련 시를 썼다'는 게 전부인 인사를 이사장으로 임명한 사례가 검찰 수사로 드러났습니다. 환경부 직원이 장관 등의 지시로 이 후보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해주고, 면접 예상 질문을 만들어주면서까지 이사장으로 합격시킨 과정이 검찰의 공소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규정돼있는 적법한 절차를 어기고 무리하게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검찰이 기소해 재판 중인 내용에 따르면 한국환경공단의 경우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이사장과 상임감사에게 청와대와 환경부가 사표를 종용했습니다. 신모 당시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상임감사 공모 절차에 청와대가 원하는 인사가 탈락하자 환경부 직원을 질책하고 경위서를 쓰게 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내정한 후보가 떨어지자 나머지를 전원 탈락 처리를 한 뒤 재공모를 실시하기도 하는 등 공공기관 임원 공모 절차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이 천경득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과 상의해 금융위 상임위원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왔습니다. 금융위나 청와대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공식 라인 밖에 있는 유재수 당시 국장과 천 행정관이 인사를 논의했고, 실제로 임명됐다는 점에서 '비선' 없이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인사를 한다는 이번 청와대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존 인사의 관행을 명분 없이 뒤집고 이례적인 인사를 하는 경우입니다. 이번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기업은행장으로 임명한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10년간 세 번에 걸친 내부 출신 행장이 경영성과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내왔는데, 돌연 청와대 출신 관료를 앉힌 사례입니다. 앞서 말한 환경부 공공기관 인사처럼 직권을 남용하거나 규정된 절차를 어기진 않아 법적, 절차적인 하자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야당 시절 기업은행장 낙하산 인사를 반대해온 만큼 도덕적, 정치적인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청와대

● 낙하산 인사, 왜 문제일까

청와대 입맛에 맞지만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는 왜 문제일까요. 박근혜 정부 시절 홍기택 산업은행장과 대우조선해양 사례가 낙하산 인사의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교수였던 홍 전 행장은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에서 활동하다 산업은행장으로 임명됐습니다. 2015년 홍 행장 당시 산업은행은 분식회계 등으로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 4조 2천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도 산업은행은 수조 원의 세금을 투입하는 결정을 했는데, 배경에는 청와대가 있었습니다. 홍기택 행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자금 지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이후에 폭로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청와대와 인수위, 캠프 출신 낙하산 인사가 중요한 공공기관장으로 가게 됐을 때, 그 기관장은 청와대 입맛에는 맞지만 비합리적인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청와대 덕분에 임명이 된 만큼 공공기관 입장에 서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든 위치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들러리 역할'에서 벗어나 현 정권의 단기적 이익이 아닌 공공기관과 국가의 장기적 이익 추구하는 기관장이 낙하산 인사로는 나오기 힘든 구조입니다.

청와대가 '개혁적이고 철학에 맞는' 국정운영을 이유로 낙하산 인사를 정당화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겠습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청와대 정부>에서 개혁을 통치의 목표로 삼아 청와대가 정당과 내각을 이끌고 나가는 관행을 비판합니다. 박 학교장은 "자신은 개혁의 주체로 삼고, 타자는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도덕적 사명감을 가진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하는 한 그런 일방적이고 확고한 결론은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다"며 "특정 세력이나 당사자를 개혁 대 반개혁으로 양분해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썼습니다.

청와대는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만큼 상대편을 몰아내고 코드에 맞는 우리 편을 꽂아 넣어야 개혁과 적폐 청산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정운영은 앞서 말한 <스토브리그> 같은 드라마도 아니고, 스포츠팀 운영과는 다릅니다. 국정운영은 외부 인사가 들어와 일거에 개혁해내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다른 세력과 끊임없이 교섭과 협상을 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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