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폭언에 다리 마비? 무의식이 만든 '전환 장애'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20.01.07 10: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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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폭언에 다리 마비? 무의식이 만든 전환 장애
최근 한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담임 교사의 지속적 폭언을 들은 초등학생에게 이전에 없던 다리 마비가 생겨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다양했다. 교사를 비난하는 말들, 한쪽의 말만 들으면 안 되고 교사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는 말들. 그리고 또 다수를 차지하는 댓글들이 이런 내용들이었다.

'욕해서 다리 마비시킬 정도면 초능력자 아닌가?'

'말로써 다리가 마비되면 의학계 보도될 감이네'

'잘잘못은 따져봐야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팩트는 아무리 폭언을 들어도 다리가 마비될 방법은 없다는 것'

나는 저 사건의 자세한 내막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학부모의 주장대로 담임교사의 지속적 폭언이 아이의 다리 마비를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인지 알지 못한다. 아이를 직접 진료하지 않았으니 아이에게 실제 질환이 존재하는지, 진단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의학적 팩트를 말하자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다리 마비가 유발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신기한, 어찌 보면 속임수 같고 어찌 보면 기적 같은 케이스들은 100년도 넘는 이전부터 정신의학계에서 꾸준히 보고되어 왔고 지금은 특정한 질환들로 분류되어 있다. 특히 현대 정신의학의 시작점인 프로이트(Freud)가 정신분석학을 발전시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최초로 자유연상을 통해 치료한 환자가 이 경우였는데, 해당 여성의 다리 마비는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되었다. 형부를 흠모하면서도 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 애정을 의식 아래로 밀어 넣기만 했던 그녀는,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이제 형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고 한다. 형부를 향한 애정과 언니에게 느끼는 죄책감, 이 두 가지 감정의 강렬한 충돌로 생긴 심리적 내적 갈등이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어 다리 마비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 질환의 이름은 전환 장애. 무의식이 만들어낸 이 다리 마비의 의미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한 자신에게 내리는 처벌의 의미가 있을 수도, 형부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으며, 마비 증상에만 신경 쓰며 자신의 내적 갈등을 잊기 위한 도구일 수도 있다.

너무 옛날 이야기이고, 너무 특수한 케이스일까?

갑작스럽게 시력이 상실되어서, 또는 팔이나 다리가 마비되어서 응급실로 찾아오지만 안과나 신경과에서는 어떠한 이상도 발견되지 않아 정신과에서 진료하게 되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리적 스트레스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부터, 중요한 일이나 시험을 앞두고 복통이나 두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만성 소화불량으로 인해 찾아간 내과에서 항불안제를 처방받는 것은 흔한 일이며, 통증에 효과 있는 몇몇 항우울제의 경우 정신과보다 신경외과와 통증클리닉 등에서 더 많이 처방되고 있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심한 내적갈등을 겪는다고 누구나 이런 증상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꾀병의 가능성을 머리 속에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꾀병 환자는 매우 많다. 2차 이득을 노리고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아마도 보험금을 목적으로 작은 교통사고 후 심각한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던 사람, 입대 회피를 목적으로 환청을 듣던 사람, 교도소에서 벗어나 병원에서 지내고픈 목적으로 팔 마비를 주장하던 사람 등등. 지금 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가짜 환자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신체증상장애(과거 신체화장애, 신체형장애 등으로 구분되던 질환들을 통합하여 일컫는다)나 전환장애의 경우 꾀병과는 분명히 다른 진짜 질환이다. 2차 이득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증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그리하여 의식적으로 증상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 글에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진짜 증상인지 아닌지 감별하는 정신과 의사들만의 무기도 있다. 자신은 의사들을 완벽히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상은 대부분 알면서도 '당신의 진단은 꾀병이군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을 뿐이다.

또한 현대의학은 이런 설명되지 않는 신체기능의 이상이 온전히 심리작용에 의한 것만은 아님을 밝혀내고 있다. 여러 연구들이 전환장애의 경우 양쪽 대뇌반구의 연결이 저하되어 있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의 과도한 상승으로 인해 뇌에서 신체감각을 인식하는 기능이 차단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10-15세 사이에서 더 많이 발병하는 경향성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직 발달 중인 미성숙한 뇌가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이런 신체기능의 오류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대부분 2주 이내 증상에서 회복되는데, 이 역시 스트레스 호르몬의 정상화와 관련되어 있다.

뇌와 사람의 정신세계는 참 신비하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다리가 마비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겠지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이를 꾀병으로 확신하고 상처가 될 말을 하는 것이 더욱 이상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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