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면제라고 하니, 현역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사람들은 큰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3년 동안 대기하다가 면제된 당사자들도 속이 좋을 리 없습니다. 어정쩡하게 기다린 3년이란 시간이 생산적이지 않았을 테고, 병역 미필이란 낙인은 사회생활하는 데 적잖은 장애가 됩니다.
공공기관, 사회복지단체 같은 데서 사회복무요원들을 추가로 더 데려가서 일 시키면 될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사회복무요원 월급은 일 시키는 기관이 부담하도록 규정됐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병역의 수급 예측에 실패한 국방부와 병무청 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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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검사에서 1~3급을 받으면 현역 대상이고, 4급은 보충역 즉 사회복무요원 대상입니다. 5급은 전시 근로역이고 6급은 면제인데 전시 근로역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만 소집 대상이어서 사실상 5급부터는 면제입니다.
수요와 공급 예측을 잘해야 하는 대상은 1~4급입니다. 그런데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역병 입영 대상자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현역 가겠다는 장정들이 원하는 때에 입대 못 하니 원성이 높았습니다.
군이 내놓은 대책은 신체검사 기준 강화였습니다. 학력과 신체조건 등의 기준을 강화해서 현역 대상자를 정예화, 즉 줄이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이 대책은 2015년 신체검사부터 적용됐습니다.
이에 따라 1~3급 현역 입영 대상자 수는 줄었습니다. 대신, 4급 보충역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했습니다. 2014년 보충역 판정자는 2만 명이 채 안됐는데 2018년에는 4만 4천 명에 육박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국방부와 병무청은 보충역을 데려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을 시킬 공공기관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마른 수건 짜듯 기관 수요를 늘려본들 쏟아져 나오는 4급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무할 곳을 못 찾은 보충역들은 2016년 11명, 2017년 90명, 2018년 2,313명, 2019년 1만 1,457명씩 소집 면제됐습니다. 병무청은 올해도 1월 중 9천여 명, 7월 중 1천 수백 명 보충역에게 소집 면제 통보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익 면제 1만 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불편합니다. 특히 전방에서 고생하는 현역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국어사전에는 현역의 반대말이 예비역으로 나오지만, 병무청 신체검사 기준으로 하면 현역의 반대말은 면제입니다. 현역들에게 면제는 부러움의 대상이고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복불복' 3년 장기 대기 후 면제는 5, 6급의 일반적인 면제와는 좀 다릅니다. 겨울이면 "오는 봄에 가려나", 봄이 오면 "여름에는 가려나"하는 심정으로 애매하게 3년을 흘려보낸 뒤 따라온 면제입니다. 그 3년이 온전한 시간이었을 리 없고, 앞으로 병역 미필자로서도 여러 가지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병무청 관계자는 "장기 대기 3년 간 허송세월 하느니 그 기간에 시원하게 복무하고 병역필 자격 얻는 편이 훨씬 낫다"며 "제발 빨리 소집해달라는 장기대기자들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자원 부족을 걱정할 때가 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슬슬 신체검사 기준을 완화해 현역 1~3급 인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입니다. 4급 보충역, 장기 대기에 따른 면제자의 수도 따라서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규모 면제라는, 모두를 언짢게 하는 결과를 낳은 국방부와 병무청의 병역 자원 관리 실패는 많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