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밀려난 까마귀 같은 나"…집없는 청춘들을 위하여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20.01.04 11:00 수정 2020.01.05 12: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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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들판에 까마귀가 엄청나게 많더군요. 어림잡아 3~400마리는 되어 보였습니다. "이 동네는 왜 이렇게 까마귀 대 파티냐"는 가족들의 질문에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던 여동생이 말했습니다. "아, 원래는 울산 태화강 쪽에 까마귀가 엄청 많이 서식한대. 근데 초 초 과포화 상태라네? 그래서 밀려난 까마귀들은 경주까지 오게 됐다는 거 같은데?" 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지요. "음... 딱 나네 나."

까마귀에 감정 몰입해버린 이유는 저도 곧 서울 밖으로 나가게 되기 때문이지요. 나간다는 능동적인 표현법이 맞을지 모르겠네요. '나가지게 되었다'는 문법에 안맞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살이 17년 만의 일입니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 살았다가, 하숙집에도 살았다가, 원룸에 살았다가, 빌라에도 살았지요. 고시원 옆방 취객 아저씨가 복도에 큰 볼일(!)을 저지르고 말아서 "엄마 나 도저히 여기서 못 살겠어. 아직도 방에 아저씨 *냄새 들어와."라며 밤새 하소연했던 기억도 있네요.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얼른 사회인이 되고, 삼십 대가 되어 내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도 모았지요. 최근엔 가끔 통장 잔고를 보며 자신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내 또래 기준으로도 적지 않게 모았다. 나 자신은 그동안 안 쓰고 안 먹고 고생했어'라고요.

하지만 웬걸요. 집을 구할 때가 되니 나 자신을 칭찬한 순간들이 뻘쭘하고 머쓱해질 지경이더군요. 시세를 알아보러 다닐 때마다 뭐랄까요... 마치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내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손님, 이 제품은 많이 고가예요"라며 내쫓는 명품관 앞의 서민 같은 기분? 결국 서울의 25개 자치구를 전부 돌아도 내 집은 구할 수 없어 서울을 떠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나야 이렇게 서울 밖으로라도 나가면 집 구할 수 있다지만, 나보다 더 형편이 빠듯한 청년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그런 맥락에서 사실 청년 주거권 문제는 꾸준히 논의되어온 과제입니다. 청년 인구의 50%에 육박하는 인구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지금, '그러게 누가 서울 살랬냐?'라는 비난은 딱히 상황을 바꾸는데 별 도움 안되는 메시지겠지요. 어찌 되었든 도시에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고,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청년들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그렇기에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바로 청년 주택 사업인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더불어 분쟁도 일으키고 있습니다. 청년 주택 건립이 집값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역주민들의 불안감으로 시작해, 아예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으로 번지고, 결국 청년 자체에 대한 혐오성 발언과 극단적인 민원 릴레이로 번지는 과정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수 학교 건립에 반대하던 주민의 항의에 장애 아동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빌었던 사건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지요.

사실 무조건 지역주민을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합니다. 부동산이 자산의 핵심가치인 한국 사회에서, 내 집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데 누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청년 주택이 지어지면, 인근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라던가 (실제로 공청회에서 나왔던)'청년 주택에 입주한 청년이 내 자식을 폭행하면 그땐 어쩔 것이냐'는 모 지역주민들의 발언은, 무조건 추진을 막아야 하기에 찾아낸 '혐오의 이유'들이라는 생각을 쉬이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런 곳'에 입주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아이들 교육에 나쁘다는 생각은 결국 뭐랄까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젊은이들은 질이 낮은 사람들이라든가, 가난하고 못 배워 지역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라는, 또 다른 혐오와 차별에서 기인한 표현들임을 간과할 수 없으니까요. 마치 옛날 옛적 육체노동자를 보고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라고 하던 폭력적 말들처럼요. 이 수많은 혐오의 말들 속에서 이미 몇 군데나 반대에 부딪히고, 결국은 무산되어 버린 현재. 살 터를 잃은 청년들은 얼마 전 텀블벅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더군요. 계속 공청회를 열고, 주민들과 소통 할 장을 마련해나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며, 저는 곧 서울을 떠납니다. 생의 절반을 살았던 제2의 고향을 떠나는 건 퍽 마음이 허한 일입니다. 하지만 불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울 아닌 도시에서 내 집을 얻는다'라는 선택지조차 머나먼 꿈같은 청년들이, 지금도 너무나 많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이제 많이 배우든 적게 배우든, 열심히 일하든 직업이 없든, 증여와 상속을 기대할 수 없는 젊은이라면 거의 모두가 집을 가질 수 없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많은 젊은이가 살아가야 하는 도시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2020년의 시작을 맞이하는 지금, 부디 다가올 10년은 젊은이들에게도 조금씩 '주거'의 희망이 싹트는 10년으로 변모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마음을 무척 아리게 했던 그들의 크라우드 펀딩 제목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칩니다.

'집문서가 있어야만 시민인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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