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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판사는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없을까?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인-잇] 판사는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없을까?
지난 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분으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며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법원 기록에 아내가 제출한 탄원서가 거꾸로 편철되어 있는 걸 보면서 판사님들은 읽지 않았겠구나 싶었습니다"

판사는 열심히 읽었으나 직원의 실수로 편철만 거꾸로 된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가족들이 탄원서를 가져와 제출해 달라고 할 때면 과연 판사가 이 탄원서를 제대로 읽어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판사들이 사건 당사자들의 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는 걸 종종 다른 사건에서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도를 한 배우자가 이혼해달라며 소송을 걸어 온 재판에서 당사자의 소송대리인이 된 적이 있다. 당사자는 이미 네 번의 이혼소송에서 승소했고, 다섯 번째 소송에서 재판부는 조정에 회부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당사자와 함께 참여한 조정기일에서 판사는 "어차피 이번에 이겨도 상대방이 소송을 계속 제기할텐데요. 이혼에 합의하시면 어떠실까요? 10분을 줄 테니 고민해보세요"라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당사자는 3년 넘게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혼소송에 임해왔는데, 고작 10분 동안 고민해 마음을 바꾸라니...10개월도 아니고, 10일도 아니고, 10시간도 아닌 단 10분...당사자에게 그 어처구니없는 순간을 빨리 피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이 소송대리인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하여 조정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즉시 자리를 떴던 기억이 있다.

올해 초에는 한 판사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기도 했다. 통근 버스 기사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노동청에 진정을 했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금액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만 인정되어 결국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는데, 판사는 첫 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해 이런 말을 남겼다. "수사기관에서 인정된 금액을 이미 지급했다고 회사가 주장하고 있는데, (소송을 통해) 미지급임금이 밝혀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액수가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대기시간을 포함하여 하루에 12시간 일터에 매여 있지만 8시간의 근로시간에 해당되는 임금만 지급받았던 당사자의 억울함, 노동청 진정절차를 통하여 해결하지 못해 민사소송을 거쳐서라도 지급받아야겠다는 당사자의 간절함을 조금이라도 공감했다면,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전화를 할 수 있었을까? 임금체불도 사업주의 갑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판사에게 이런 소송이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당사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택한 최후의 수단이다.

당사자들의 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판사들을 만날 때면, 왜 우리가 그런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판사를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는 없을까? 실제로 미국의 주법원은 법관선거제가 일반적인 제도이며 전체 주법원판사의 약 90% 정도가 다양한 유형의 선거(선출선거 내지는 인준선거)를 거쳐 선발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바 없다.

법관선거제 도입에 대한 논의와 함께 현행 제도 하에서 국민의 의견이 판사의 선발 또는 승진 등에 반영될 수는 것도 중요하다. 대법원은 2015년부터 신임경력 법관 선발 단계 중 최종 임명 직전에 예정자 명단을 공개하고 약 2주간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필자는 올해 처음 의견을 내보았는데, 의견을 내라며 발표한 대법원의 보도자료에 의견제출 방법도 기재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아래와 같이 적힌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구체적 사실이나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투서나 진정 형태의 의견을 제출하거나 의도적으로 이를 공개해 법관 임용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 하면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정말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하는 걸까? 그냥 그런 과정을 거쳤다는 걸 생색내려는 게 아닐까?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그 자세가 너무 고압적이다. 참고로 2015년부터 올해까지 국민의견을 거쳐 최종임명 단계에서 탈락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연말이 되면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발표하는 법관평가결과가 나온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의해 2009년 처음 도입된 변호사의 법관평가는 1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평가결과는 법관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최근 대법원은 변호사에 의한 법관평가를 사법개혁 차원에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는 제도가 최선이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외부 재판참여자인 변호사들에 의한 법관평가는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한 국내자동차회사가 연비를 과장하여 광고한 것이 문제되어 소비자가 제기한 소송에 패소했고, 유시한 소송이 미국에서 제기되었는데 이 자동차회사가 미국 소비자에게는 보상해주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알려져 국민들의 공분을 산적이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중 하나가 여전히 기억에 선하다. "자동차도 수입하고, 판사도 수입하자~"

이처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한계점에 이르렀지만,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도 각 정당들은 사법개혁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들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각 정당들은 국민의 의견이 법관선발 및 평가에 있어 반영될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대한 국민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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