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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람들은 기술의 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첨단기술에 포위당한 2020

AI한돌과 바둑 대결하는 이세돌 (사진=연합뉴스)
● 진화하는 AI, 사람은 AI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2019년 기해년(己亥年)의 세밑에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AI 바둑프로그램 '한돌'의 대국이 AI와 첨단기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세돌이 두 점을 먼저 깔고 둔 첫판은 78수 만에 이세돌의 불계승, 호선으로 둔 둘째 판은 122수 만에 '한돌'의 불계승, 그리고 하루 쉬고 둔 세 번째 판은 첫 대국에서처럼 이세돌이 두 점을 먼저 깔고 뒀지만 180수 만에 '한돌'이 승리했다.

세 차례에 걸친 한돌과 이세돌의 대국은 회를 거듭할수록 승패가 결정되기까지 더 많은 수를 겨뤘지만 이제 바둑에서는 두 점을 먼저 두고도 AI를 능가할 인간 기사가 없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확인해 준 이벤트가 된 것 같다.

이제 바둑판에서는 연습 대국도 AI 프로그램과 한다고 한다. AI와 마지막 대국을 하고 은퇴한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의 행보가 마치 바둑판에서 사람의 퇴장을 보는 듯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IT 전문가들은 3년 전인 201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했을 때 이미 사람이 개발한 가장 고차원 게임인 바둑에서조차 사람은 더 이상 AI의 맞수가 되지 못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당시 구글의 딥 마인드 챌린지 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의 포시즌호텔은 AI가 사람의 지능을 능가하기 시작한 장소로 AI 연구자들이 한국에 오면 꼭 방문하는 'AI의 성지'가 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1956년 처음으로 등장한 AI는 'AI의 겨울(AI Winter)'이라고 불리는 두 번의 침체기를 겪은 뒤 2012년부터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고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의 개선과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로 이번 AI 붐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났던 과거와 달리 실질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구글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업들은 '딥 러닝' 기법과 센서기술, IOT 기반의 빅데이터로 AI의 분석과 예측력을 한층 드높이고 있다.

구글은 지난 10월 자신들이 개발한 양자 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IBM 서밋)로 1만 년 걸리는 계산을 3분 20초 만에 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AI는 사람을 능가하는 것은 물론 블록 체인을 비롯한 기존의 모든 암호화 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AI의 응용분야, WIPO Technology Trends 2019
● 일상생활에 파고든 AI, 섬뜩한 편리함

이달 초 기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인공 수상도시 구베이수이전(古北水鎭)에다녀왔다.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규모에 배를 타고 즐길 수 있는 구베이수이전의 스케일에도 놀랐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관광지 입장 절차다. 표도 사지 않았는데 그냥 개찰구 앞에 서자 문이 열렸다.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 숙박 고객의 얼굴을 등록하면,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안면인식으로 공원에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구베이수이전의 모든 식당은 물론 노점에서도 메뉴판에 QR코드가 있어, 휴대전화만 대면 그 자리에서 계산 끝이다.

요즘 출입국 심사 때 안면 인식은 기본, 하루 입장객을 8만명으로 제한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중국의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에서는 곳곳의 CCTV를 통해 관광객들의 얼굴을 모니터링해 실시간으로 신원을 파악하고 감시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산업현장에서는 AI 로봇으로 작업을 자동화하는 것은 옛말이 됐다. 컴퓨터로 실물과 같은 가상의 복제품,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만들어 테스트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신제품개발과 환자의 치료는 더욱 용이하게 됐다. 전시장에서는 AI 로봇이 안내를 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AI가 비서 역할도 한다. AI 앵커가 등장해 AI가 선정한 뉴스를 전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AI 전성시대, AI는 연구소나 산업현장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급속히 스며들고 있다.
AI 관련 특허와 과학 출판물 규모, WIPO Technology Trends 2019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연초 발간한 보고서 '2019년 기술동향(Technology Trend),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요즘 대세가 된 'AI 붐'을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WIPO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1960년대부터 2018년까지의 특허와 과학출판물을 조사한 결과, 이 기간 동안 출원된 AI 관련 특허는 34만 건에 달하고 과학 출판물은 1백60만 건에 달했다. WIPO 보고서에 따르면 AI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1980년대 초부터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2년부터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위 그림 3-1 참조)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연간 8% 늘던 특허 건수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28%가 증가했다. 2006년에 8,515건이었던 특허가 2017년에는 55,660건으로 12년 동안 6.5배가 증가했다. AI 관련 특허의 53%가 2013년 이후에 출원된 것이다.

AI 관련 논문은 AI 관련 특허가 본격적으로 출원되기 10년 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연간 8%가 늘어났던 AI 관련 과학출판물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18%가 늘어난 뒤 다소 둔화됐다. AI 과학출판물보다는 관련 특허가 더 빨리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10년 특허 1건당 8건에 달했던 AI 관련 과학출판물은 2015년 3건으로 줄어들었다. AI는 이제 학술적 연구대상이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돼 본격적으로 상용화하는 시기가 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WIPO는 풀이하고 있다.
분야별 AI 특허 규모, WIPO Technology Trends 2019
AI 붐이 확산하는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분야는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다. AI 관련 특허의 40%가 머신 러닝에 집중돼 있고, AI 관련 특허의 87%에서 머신 러닝을 언급하고 있다고 WIPO는 밝혔다.

특히 다중 신경망(Multilayered Neural Network)에 기반한 딥 러닝 기술의 발달로 이제 AI의 언어 인식(speech recognition)과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 번역(Machine Translation) 능력이 사람의 능력과 맞먹는 수준이 됐다. 이 분야 AI 알고리즘은 기존 기술의 효용을 완전히 해체하는 와해적인(Disruptive) 수준으로 산업분야는 물론 경제와 사회 전반에 새로운 산업혁명에 맞먹는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자연어에 기반한 인공지능컴퓨터 IBM 왓슨은 퀴즈 문제 풀이는 물론 X-레이 판독에서도 전문가를 능가하는 수준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공 시각과 인공 와우로 시각과 청각을 잃은 사람들의 눈과 귀 역할을 대신하고, 뇌를 스캔해서 심리상태는 물론 생각까지 읽어내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 신기술은 해결사…정치적 무능력이 문제

스마트폰과 SNS에 열광하며 시작했던 2010년대가 이제 막을 내리고 로봇과 AI 전성시대와 함께 새로운 2020년대가 시작된다.

AI가 문자는 물론 말과 영상을 인식하고, 사물의 정체를 분간할 수 있게 되면서 운전도 대신하는 시대. 휴대전화로 아무 곳에서나 택시를 불러 탈 수 있고, AI가 추천하는 동영상이나 기사를 본다. 사람들의 경험은 고스란히 빅데이터로 기록돼 이제는 컴퓨터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가 됐다. 무엇이든 한 번 입력되면 잊지 않는 컴퓨터, 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이제 사막에서 바늘도 금세 찾아낼 수 있는 정도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을 좀 더 가깝게 연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SNS와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사는 스마트폰 좀비 '스몸비'를 양산하고, 우버나 리프트 같은 차량공유서비스는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I와 로봇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사회적 편향성을 강화하며, 부의 양극화와 계층 간 갈등을 심화하고 가짜 뉴스를 확산하는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됐던 신기술은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독재자들을 탄생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치병을 치료해줄 신기의 기술로 기대됐던 유전자 조작 기술 등 바이오 기술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바이오산업이 잉태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12월 18일 자 커버 기사에서 이런 신기술에 대한 실망과 우려는 신기술이 가져온 긍정적 성과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신기술이 유발하는 문제점만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산업혁명 때도 그랬고, 자동차가 처음 도입됐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신기술이 초래하는 창조적인 파괴는 사회적 반발을 초래하지만 결국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평가다.

강력한 신기술은 양날의 칼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신기술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 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수용 태세 마련과 함께 신기술을 더욱 발전 시켜 온난화와 가짜 뉴스 확산 같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코노미스트는 결국 신기술에 대한 불안의 원인은 '신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신기술에 대한 불안과 논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인 비관'이라고 진단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신기술이 초래하는 문제점에 대한 논란은 논란이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며,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인류를 기아와 질병, 무지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신기술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줄 유일한 돌파구라고 지적한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신기술에 포위된 채 또 다른 10년을 맞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역사상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와해적인 신기술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사람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2020년대 새로운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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