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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결혼 이야기'는 왜 달콤하지 않은가?

김지미 | 영화평론가

[인-잇] '결혼 이야기'는 왜 달콤하지 않은가?
사랑은 누구에게나 늘 쉽지 않다. 특히 결혼 이후의 사랑은 더 그렇다. 영화가 연애를 다루면 주로 서정적 로맨스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가 된다. 그런데 결혼을 다루면 대부분은 심각한 드라마가 된다. 때로는 무시무시한 스릴러, 냉소적인 코미디, 무시무시한 공포물이 되기도 한다. 연애는 미래를 꿈꾸게 하지만 결혼은 현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노아 바움바흐의 <결혼 이야기>는 결혼이 깨어지는 과정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결혼이 로맨틱한 관계에 어떤 현실을 가져오고, 어떤 꿈들을 포기하게 하는지. 왜 부부는 결혼을 통해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더 멀어지게 되는지. 온전히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도 없지만, 부부는 어느덧 타협할 수 없는 지점에 서게 된다. 그리고 결혼의 종말, 이혼을 이야기하게 된다.

영화는 배우인 아내 니콜(스칼릿 조핸슨)과 연극 연출가인 남편 찰리(아담 드라이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서로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얼마나 좋은 배우자이자 양육자였는지를 읊어 내려가는 동안, 결혼 생활의 행복한 일상이 화면에 담긴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부부이자 믿음직한 부모처럼 보인다.

보통 이상으로 행복해 보이던 부부의 일상을 담은 회상 장면이 중단되고, 영화는 현실로 돌아온다. 니콜과 찰리는 부부 상담 치료 중이고, 그들의 내레이션은 이 상담을 위해 쓰인 편지였다. 니콜은 편지 읽기를 거부하고 상담실을 뛰쳐나간다. 그녀는 이혼을 준비 중이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에서 이혼은 둘 간에 이견 없이 합의된 것이 아니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대 배우자의 과실이 있어야 제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과실로 혼인이 파탄 났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린 공인들조차 이혼에 실패한다. 과실이 없는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혼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 이혼은 상대의 유책 여부와 상관없이 제기될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해서 더 이상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혼할 수 있다. 니콜의 이혼 소송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더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 어떻게 서로를 더 멀어지게 했는지 니콜은 변호사와 함께 짚어 나간다.

이 영화는 로버트 벤튼 감독의 1979년 작품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40년 후를 보여주는 듯하다. 내용뿐 아니라 연출가의 시선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우리는 집을 나가 독립하기로 한 미세스 크레이머(메릴 스트립)의 심정을 알기 어려웠다. 갑자기 남겨진 미스터 크레이머(더스틴 호프만)와 아들에게 주로 초점이 맞춰졌다. 그 영화는 가정에 갇혀 커리어를 잃은 여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모성에 비해 평가절하 되어왔던 부성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결혼 이야기>는 부부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들려준다. 그들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타협했고, 희생했고, 배려했다. 하지만 행복해지지는 못했다. 니콜과 찰리의 결혼에는 피해자도 없고, 가해자도 없다. 결혼과 이혼은 양쪽 말을 다 들어보아야 안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솔로몬 같은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 대체로 황희 정승이 된다. 그래 아내도 옳고, 남편 또한 옳다.

이 영화는 이혼이 여태까지 둘이 가져왔던 관계의 불행한 종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결말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보장해주는 안정감 때문에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둘이 오히려 그 제도를 벗어남으로써 소홀했던 관심을 회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포함하고 있다.

스칼릿 조핸슨이 출연했던 <사랑도 통역이 될까요?>, <그녀> 그리고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모두 감독들의 이혼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어떤 관계 안에 있을 때보다 거기서 벗어났을 때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결혼 이야기>도 감독의 개인적인 아픔과 거리감이 좋은 자양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우리는 모든 아픔을 직접 겪지 않고도 영화를 통해 조금은 이해하고 배우게 된다.

오래된 관계 안에서 상대와 처음보다 갈수록 더 소통하기 힘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물론 영화 하나로 상대가 모든 것을 이해해주리라 기대하면 금물이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그런 기대는 그저 또 한 번의 말다툼만 낳을 뿐이었다.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사랑했고 늘 함께였지만 그 세월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렇게 달랐구나를 담담하게 나눌 수만 있어도 좋지 않을까.

(사진=영화 〈결혼이야기〉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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