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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라이벌'의 한계를 넘어 '즐기기'

이세형 | 퓨전 재즈밴드 '라스트폴'의 기타리스트

왼쪽부터 깁슨(Gibson), 펜더(Fender)의 일렉 기타
실력으로 평가받는 분야에서는 늘 '라이벌'이 존재한다. 최고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도 긴장과 재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음악은 경기나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연주나 악기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기에, 매년 다양한 악기 콩쿠르가 열리며 악기에도 등급이 매겨지고 가격이 정해진다. 물론 기타의 세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라이벌 구도가 있다.

일렉 기타 제작업체 중 전통의 양대 산맥을 들라면 많은 이들이 펜더(Fender)와 깁슨(Gibson)을 꼽을 것이다. 수백만 원대 가격 때문에 초보자가 구입하기는 쉽지 않지만, 전문적인 연주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면 결국은 두 브랜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펜더의 대표적인 모델인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는 경쾌하면서도 카랑카랑한 톤이 매력적인데, 하드록부터 재즈, 심지어 트로트에서도 사용되는 범용성을 자랑한다. 깁슨의 대표적 모델인 레스폴(Les Paul)은 묵직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팝과 록음악에서 주로 사용된다. 스트라토캐스터와 레스폴을 안다면 둘 중 한 대는 결국 가지게 된다는 농담이 있다.

어쿠스틱 기타에서도 역시 비슷한 라이벌 구도가 있다. 바로 마틴(Martin)과 테일러(Taylor)다. 마틴이 거의 2백 년 역사를 가진 것에 비해 테일러의 역사는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문가 레벨에서는 비슷한 가격대와 품질을 갖추었으면서도 소리의 특성이 확연히 다른 이 두 회사가 라이벌로 평가받는다.

마틴이 조금 더 빈티지한 느낌의 소리를 낸다면 테일러는 깔끔하고 세련된 소리가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참고로 영국의 유명한 재즈기타리스트 마틴 테일러(Martin Taylor)가 있으니 검색할 때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마틴 테일러는 일렉 기타를 친다.)

기타 연주에서 초보 단계를 넘어서면 자연스럽게 본인의 취향을 검증하는 시기가 온다. 바로 록(Rock) 과 재즈(Jazz) 사이에서 느끼는 취향 차다. 팝과 같이 대중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록에 기반한 기타 연주를 선호되는 경우가 많고, 연주 자체에 더 중점을 두는 순수음악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재즈 연주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프로 연주자는 본인만의 스타일로 대중에게 인정을 받기에 장르 구분이 큰 의미가 없지만, 아직 그 단계가 아닌 학생들의 경우에는 호불호를 분명히 드러내기도 한다. 유치할지 모르지만 록파인지 재즈파인지 구분해서 서로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경향도 있다. 미국 유학시절에도 기타 교수님들 사이에 두 파간 보이지 않는 경쟁 구도가 형성돼 있는 걸 재미있게 지켜보며, 라이벌 구도는 세계 공통임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프로 레벨도 접어들고 관객이 생기면, 라이벌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중이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 경우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 그 분야에서 톱 레벨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때는 나도 누군가의 라이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음악은 경기도 게임도 아니다. 이제는 브랜드와 평판에 상관없이 소리로만 악기와 연주를 판단하고, 어릴 적 듣던 록 음악과 요즘 듣는 재즈를 둘 다 좋아하게 되었다. 기타를 처음 잡은 그 순간 나는 편견 없이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을, 그리고 연주를 전문적으로 하기로 마음먹은 건 내가 즐겁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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