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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사] 명감독과 명배우가 만나 빚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La veri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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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책영사 102 : 명감독과 명배우가 만나 빚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Le verite, 2019)

이번 주 [책영사: 책과 영화 사이]는 책영사가 사랑해 마지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으로 일본 밖에서 찍은 영화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전설적인 여배우는 현실에서도 전설적인 프랑스 배우인 카트린 드뇌브가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는데요, 다시 한 번 가족 이야기로 돌아온 '고' 감독은 보고 나면 무거운 느낌이 드는 전작들을 연이어 만들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는 조금은 가볍고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어떤 저택에서 노년의 여배우가 인터뷰 중입니다. 인터뷰하러 온 기자는 그녀의 기세에 눌려 쩔쩔매고 있습니다. 이 배우의 이름은 '파비안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딸 뤼미르는 엄마의 회고록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옵니다. 그런데 어쩐지 뤼미르는 축하보다 엄마가 쓴 책에 더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곳곳에 표시해가며 공부하듯 엄마의 자서전을 꼼꼼하게 읽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자신의 회고록을 공부라도 했느냐며 비아냥거리는 파비안느에게 뤼미르는 회고록에 진실이 단 한 줄도 없다며 엄마를 비난합니다. 회고록엔 멀쩡히 살아있는 전 남편이 이미 죽었다고 쓰여 있으며 평생을 함께해 온 매니저 뤼크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과거 파비안느가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어린 뤼미에르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죠.

서운했던 뤼크는 파비안느 곁을 떠나버리고, 얼결에 뤼미르는 엄마의 매니저를 대신하게 됩니다. 파비안느는 '내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SF영화를 촬영 중입니다. 이 '영화 속의 영화'는 우주에 살아서 늙지 않는 엄마와 지구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딸의 이야기입니다.

파비안느는 노인이 된 딸 역할을 맡았죠. 뤼미르는 우주에 사는 젊은 모습의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 '마농'을 보고 놀랍니다. 마농이 어렸을 적 바쁜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 주었던 배우 '사라'와 닮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라는 영화 내내 인물들의 입을 통해 언급될 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생전에 파비안느의 라이벌이었으며 뤼미르를 살뜰히 챙겨줬던 것 같습니다.

사라와 닮은 마농을 엄마라고 부르며 연기를 하는 파비안느는 어릴 적 자신을 기다렸을 딸의 심정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의 말미에서 파비안느는 뤼미르가 읽은 동화가 원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뤼미르가 어릴 적 했던 연극에도 몰래 갔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파비안느의 말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요?

파비안느가 사라를 질투했던 것은 뤼미르가 그녀를 좋아하고 잘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에 딸에게 소홀했던 것이 미안했던 것입니다. 뤼미르는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오직 배우로서의 삶에만 몰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파비안느는 뤼미르에게 애정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파비안느의 말은 전부 사실은 아니지만 진심이 담겨있습니다.

사람은 하루에도 여러 번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이런 거짓말들이 모두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사실이 꼭 진심과 일치한다는 법도 없죠. 우리가 종종 하는 선의의 거짓말 속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지켜주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처럼 거짓이더라도 그 속에 진심이 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연기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대다수 인물들은 연기자이고, 상당 부분 연기와 맞닿아있습니다. 파비안느는 원로배우, 딸 뤼미르의 남편 행크는 B급 배우, 그리고 생전의 사라를 닮은 마농은 신인배우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뤼미르와의 대화에서 파비안느는 갑자기 "이 감정으로 연기를 했어야 했는데!"하며 탄식하죠. 뤼미르 역시 자신의 딸 샤를로트에게 "할머니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연기하도록 대사를 정해줍니다.

배우의 연기는 허구적인 상황을 가정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는 바로 이런 '허구로 진실을 말하는' 작업을 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영화가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은 '허구적 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 : 인턴 서예서, 감수·진행 : MAX, 출연 : 라미·안군·씬디·청취자 김주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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