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삶이었다. 옛 공산권과 아프리카 오지 등 각국에 현지 법인 396개를 세우고 지구를 240바퀴쯤 돌았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점심으론 비빔밥과 설렁탕만 먹었다고 했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은 김 전 회장이 늘 "오밤중까지 일했다"며 유럽 출장 뒤 홍콩에 들러 함께 방을 쓰게 됐는데 "새벽 4시에 깨보니 책을 읽고 있더라"고 말했다. 4시간 뒤에 있을 조찬 자리에 늦을까 봐 아예 안 잤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 빈소에서 만난 백지우 씨(29세)는 김우중이 마지막으로 뿌린 도전의 씨앗이 싹 틔운 경우다. 지방 국립대 졸업반 시절 학교 게시판에서 본 'GYBM' 프로그램이 인생을 바꿨다. GYBM은 옛 대우맨들이 만든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관해 청년의 해외 진출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청년을 선발해 어학과 비즈니스를 교육한 뒤 옛 대우 네트워크를 활용,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취업을 지원한다. 김우중 생애 마지막까지 애착을 가졌던 기획이다. 한 사람당 2천만 원 드는 교육비의 절반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대우 임직원 출신들 회비로 충당한다. 지금까지 700여 명이 혜택을 봤다.
백 씨는 2016년 인도네시아 신발 공장에 취업해 2년 만에 매니저로 승진했다. 한 달 1백만 족을 생산해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에도 납품하는 공장에서 5천 명 작업을 관리한다. 생산에서 선적, 신규모델 개발 등 직무에 필요한 교육은 이미 GYBM 프로그램을 통해 옛 대우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아직 취업난에 시달리는 친구들은 백 씨의 선택을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다고 한다. 백 씨는 "도전을 강조한 김우중 회장님이 세계에서 각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하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며 "세계 경영이란 가치, 딱 그것 하나만 마음에 품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최윤권 홍보위원은 "김 회장님은 평소 그룹은 해체됐지만 젊은 친구들을 통해 대우의 명맥을 잇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