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500만 원→재계 2위→해체…파란만장했던 대우

韓 고속성장의 그림자

김도균 기자 getset@sbs.co.kr

작성 2019.12.10 20:37 수정 2019.12.10 22: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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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무역회사 직원이었던 김우중 회장은 만 30살에 대우를 창업했습니다. 이후 30년 만에 대우를 41개 계열사, 직원 숫자 30만 명인 국내 재계 2위 회사로 만들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도 불렸지만, IMF 외환 위기 속에 막대한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결국 그룹이 해체됐습니다. 우리나라 과거 고속 성장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여준 기업인이라는 평가입니다.

이어서 김도균 기자입니다.

<기자>

[대우그룹 TV 광고 : 세계와 함께 숨 쉬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갑니다. 큰 나라를 만드는 세계 경영. 대우가 있습니다.]

1967년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대우는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무역회사였습니다.

섬유와 와이셔츠 수출에서 10년 만에 조선소와 전자산업으로 진출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남미와 아프리카 시장에 이어 소련 붕괴 직후인 90년대에는 폴란드, 헝가리 등의 자동차 공장을 인수하며 동유럽 시장까지 진출했습니다.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故 김우중/전 대우회장 (97년 4월) : 이만한 능력을 갖춘 회사, 이만한 엔지니어를 가진 우리나라. 자신감 가져도 돼요. 절대 경쟁에서 진다고 안 봅니다.]

하지만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뒤따른 무리한 차입경영은 외환위기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故 김우중/전 대우회장 (99년 7월) : 저희 대우그룹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많은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애초 계획했던 GM과의 자동차 사업 합작에 의한 외자 유치 협상이 지난해 9월 돌연히 연기됨으로써….]

급격한 유동성 위기 속에 구조조정을 모색하던 대우는 막대한 분식회계까지 드러나면서 1999년 해체의 운명을 맞았습니다.

[조영무/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한국이) 고도로 성장하는 시기를 상징했던 기업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 부채가 급증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을 초래함으로써 우리 경제가 IMF 경제위기에 빠지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돌아볼 부분 역시 많은….]

징역형을 받았다가 2007년 사면됐던 김 전 회장이지만, 검찰은 아직 남은 17조 원대의 추징금에 대해선 연대 책임이 있는 전직 대우 임원들을 통해 계속 집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영상편집 : 이승희)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경제계 잇단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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