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The Joshua Tree》(《TJT》; 1987년) 앨범 발매 30주년을 맞아 2017년 시작한 U2 세계 투어는 마침내 올해 오세아니아를 거쳐 아시아까지 확장됐다. 그동안 한 번도 찾지 않은 도시 3곳이 포함됐고, 이 가운데 서울이 있었다. 앨범 1억 8천만 장을 팔아치우고 그래미를 22번 수상한 데다 저 유명한 아이튠즈 '아티스트 아이콘' 실루엣 주인공의 내한 치고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데뷔 43년 만의 내한공연을 기다려온 2만 8천 명 팬들이 어제(8일) 서울 고척돔에 모였다.
● '전설'이 '전설'을 추모…가사 바꿔 존 레논 기억
초창기 히트곡 'I Will Follow'와 'New Year's Day'로 이어간 초반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뒤이어 부른 'Pride (In The Name Of Love)'였다. 보노는 관객 모두에게 휴대전화 손전등을 밝히라고 한 뒤 "39년 전 오늘이 존 레논이 숨진 날"이라며 또 다른 전설을 추모했다. 그리곤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추모해 만든 원곡 가사에서 킹 목사 암살 날과 장소를 레논 암살일과 장소로 바꿔 불러 청중을 숙연케 했다. 밴드 역사에 남을 이 진귀한 애드립만으로도 43년을 기다린 보상을 받았다는 팬이 많을 것이다.
● 초고해상도 대형 디스플레이 압도적…'금지곡 라이브'에 격세지감
U2하면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게 보노의 프로파간다다. 유엔에서, 다보스 포럼에서 기아와 난민 이슈를 논해온 슈퍼스타 보노는 공연장에서도 대중을 상대로 한 선전을 잊지 않는다. DVD로 접하면 '노래하다 말고 뭐하는 건가' 싶다는 팬도 있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보고 들으니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동료들이 연주로 받쳐주는 가운데 또박또박 분명하게 완급을 조절해가며 뱉는 말들은 여느 종교나 정치집회 연사의 말보다도 설득력 있었다.
장년 팬이라면 감회가 새로웠을 대목도 있다. 《TJT》 앨범 곡 전체를 소화하는 걸로 유명한 투어답게, 'Bullet The Blue Sky'부터 'Running To Stand Hill' 'Red Hill Mining Town' 'In God's Country'가 이어졌다. 모두 《TJT》 첫 한국 발매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돼 한국판엔 존재하지 않던 곡들이다. 약물 중독 풍자와, 노동자 애환을 다뤘다는 게 금지 이유다. 올드팬으로선 아예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곡, 풍문으로만 알고 있던 곡이 잇따라 라이브로 불리는 걸 보며 각별했을 것이다.
● "월드컵 수준" 공연 확인…정치 밴드 강박은 옥에 티
U2 43년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공연의 대미는 'One'이었다. 보노는 남과 북이 하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U2 투어는 지상 최대의 쇼"라는 해외 청자들의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고 과연 로커 한대수가 "완전 월드컵 수준"이라고 평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오래 기다렸던 만큼 아쉬움도 있음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론 그동안 투어에서 웬만하면 빠지는 법이 없던 'Bad'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정치적 밴드'로서의 강박관념이 지나쳤을까. 이 땅의 첨예한 정치와 외교안보 지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옥에 티다. 특히 최근 투어에서 'Ultraviolet (Light My Way)'을 부를 때마다 LED 패널에 띄우고 있는 페미니스트 작가 앨리스 워로와의 공동 작업 '허스토리' 대목이 그랬다. 한 시대와 입장, 또는 태도를 대변하는 여성 아이콘들을 보여주는 이 아트웍에 느닷없이 한 '귀빈'이 등장해 관객들 실소를 자아낸 것이다. "한국의 풍경이 좋았다"며 분명 다시 돌아온다고 한 U2니 다음 서울 공연에선 나아지길 믿어 볼 뿐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