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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록의 전설 U2, 내한공연서 존 레논 추모

43년 만에 첫 내한…"월드컵 수준의 공연" 확인

[취재파일] 록의 전설 U2, 내한공연서 존 레논 추모
누구나 처음 팝 음악에 이끌리는 계기가 있다. 내 경우엔 록그룹 U2의 초대를 받았다. 중학생 때 우연히 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록 음악"이라는 앨범 광고 문구에 홀려 산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ATYCLB》; 2000년) CD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던 때라 이들의 절판된 앨범을 구하기 위해 지방까지도 찾아갔던 기억이다. 당시 국내 《ATYCLB》 앨범 발매사가 끼워 넣은 CD 속지엔 "앨범 발매를 시작으로 세계투어를 기획 중이라는데 한국에는 글쎄.."라는 대목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 U2를 한국에서 보기까지 나에겐 햇수로 20년이 필요했다.

대표작 《The Joshua Tree》(《TJT》; 1987년) 앨범 발매 30주년을 맞아 2017년 시작한 U2 세계 투어는 마침내 올해 오세아니아를 거쳐 아시아까지 확장됐다. 그동안 한 번도 찾지 않은 도시 3곳이 포함됐고, 이 가운데 서울이 있었다. 앨범 1억 8천만 장을 팔아치우고 그래미를 22번 수상한 데다 저 유명한 아이튠즈 '아티스트 아이콘' 실루엣 주인공의 내한 치고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데뷔 43년 만의 내한공연을 기다려온 2만 8천 명 팬들이 어제(8일) 서울 고척돔에 모였다.

● '전설'이 '전설'을 추모…가사 바꿔 존 레논 기억
U2 첫 내한공연 (사진=연합뉴스)
명불허전이었다. 예정 시간을 20여 분 넘겨 나타난 이들은 초장부터 "우리와, 우리 음악은 소개도 필요 없다"며 기염을 토했다. 래리 멀린 주니어의 진군가 같은 익숙한 드럼 소리에 공연장 안 팬들은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내질렀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도 선보여 세계에 '사회파 밴드' U2를 각인시킨 곡 'Sunday Bloody Sunday'로 문을 연 것이다. 여전히 단단하고 시원하게 내지르는 프론트맨 보노의 보컬은 환갑 나이를 무색케 했다.

초창기 히트곡 'I Will Follow'와 'New Year's Day'로 이어간 초반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뒤이어 부른 'Pride (In The Name Of Love)'였다. 보노는 관객 모두에게 휴대전화 손전등을 밝히라고 한 뒤 "39년 전 오늘이 존 레논이 숨진 날"이라며 또 다른 전설을 추모했다. 그리곤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추모해 만든 원곡 가사에서 킹 목사 암살 날과 장소를 레논 암살일과 장소로 바꿔 불러 청중을 숙연케 했다. 밴드 역사에 남을 이 진귀한 애드립만으로도 43년을 기다린 보상을 받았다는 팬이 많을 것이다.

● 초고해상도 대형 디스플레이 압도적…'금지곡 라이브'에 격세지감
초대형 스크린에 펼쳐진 U2의 음악세계 (사진=연합뉴스)
사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 대한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DVD 등으로 접해온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무대에 비해 어딘지 초라해보였다. 《주TV》, 《팝마트》, 《360°》 투어의 엄청난 구조물과 조명을 떠올리면 단순히 가로 61m, 세로 14m로 크게 이어붙인 LED 패널 자체는 특별할 게 없어보였다. 이런 생각은 다음 곡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에서 보기 좋게 깨졌다. 컴컴하기만 했던 7.6K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패널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패널에 뜬 미국 서부의 황량한 도로 영상은 디 엣지의 기타 연주와 함께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U2 특유의 비디오 아트가 패널을 통해 공연 내내 계속됐다.

U2하면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게 보노의 프로파간다다. 유엔에서, 다보스 포럼에서 기아와 난민 이슈를 논해온 슈퍼스타 보노는 공연장에서도 대중을 상대로 한 선전을 잊지 않는다. DVD로 접하면 '노래하다 말고 뭐하는 건가' 싶다는 팬도 있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보고 들으니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동료들이 연주로 받쳐주는 가운데 또박또박 분명하게 완급을 조절해가며 뱉는 말들은 여느 종교나 정치집회 연사의 말보다도 설득력 있었다.

장년 팬이라면 감회가 새로웠을 대목도 있다. 《TJT》 앨범 곡 전체를 소화하는 걸로 유명한 투어답게, 'Bullet The Blue Sky'부터 'Running To Stand Hill' 'Red Hill Mining Town' 'In God's Country'가 이어졌다. 모두 《TJT》 첫 한국 발매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돼 한국판엔 존재하지 않던 곡들이다. 약물 중독 풍자와, 노동자 애환을 다뤘다는 게 금지 이유다. 올드팬으로선 아예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곡, 풍문으로만 알고 있던 곡이 잇따라 라이브로 불리는 걸 보며 각별했을 것이다.

● "월드컵 수준" 공연 확인…정치 밴드 강박은 옥에 티
U2 첫 내한공연 (사진=연합뉴스)
반대로 젊은 팬들에겐 《TJT》 앨범의 모호한 가사와 일부 컨트리풍 노래가 지루할 수 있었다. 한국 청중 특유의 '떼창'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이들을 다시 들썩이게 한 건 'Stand By Me' 'She Loves You' 등 선배 가수들 커버곡을 비롯해 <TJT> 앨범 전곡과 'Desire'까지 다 부르고 사라진 뒤 앵콜 무대에 등장한 '90년대 이후의 U2'였다. 'Elevation'을 시작으로 'Vertigo' 'Beautiful day' 등 건재를 과시했던 2000년대 히트곡에 청중들은 열광적 환호와 합창으로 화답했다. 보노는 '미스터 맥피스토'와 '미러볼 맨'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자신의 페르소나 캐릭터까지 보여줬다.

U2 43년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공연의 대미는 'One'이었다. 보노는 남과 북이 하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U2 투어는 지상 최대의 쇼"라는 해외 청자들의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고 과연 로커 한대수가 "완전 월드컵 수준"이라고 평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오래 기다렸던 만큼 아쉬움도 있음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론 그동안 투어에서 웬만하면 빠지는 법이 없던 'Bad'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정치적 밴드'로서의 강박관념이 지나쳤을까. 이 땅의 첨예한 정치와 외교안보 지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옥에 티다. 특히 최근 투어에서 'Ultraviolet (Light My Way)'을 부를 때마다 LED 패널에 띄우고 있는 페미니스트 작가 앨리스 워로와의 공동 작업 '허스토리' 대목이 그랬다. 한 시대와 입장, 또는 태도를 대변하는 여성 아이콘들을 보여주는 이 아트웍에 느닷없이 한 '귀빈'이 등장해 관객들 실소를 자아낸 것이다. "한국의 풍경이 좋았다"며 분명 다시 돌아온다고 한 U2니 다음 서울 공연에선 나아지길 믿어 볼 뿐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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