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 끝난 후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나의 인트로 연주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신 교수님은 나보다 오히려 같이 연주해준 드럼, 베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분명 기타가 돋보이는 연주곡이지만, 드럼과 베이스가 묵묵히 기타를 받쳐주는 역할을 해 준 덕분에 전체적으로 좋은 연주가 됐다는 평가였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연주 평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그 교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좋은 연주가 되려면 도드라지지 않는 악기들의 역할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는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보다 전체가 만들어내는 느낌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 등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을 같이 해봐야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같이 여행을 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같이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쳐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고도 한다. 다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기타 연주자인 나는 어떤 사람과 같이 연주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성향을 분명히 알게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베이스 연주자가 틈만 나면 기타나 건반이 채워야 할 자리에 먼저 솔로를 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노래 후반부에 열정적인 솔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악보에 나와 있는 이상은 연주하지 않는 기타리스트도 있다.
연주자들의 성향이 연주를 보는 재미가 될 수도 있고, 또 솔로로 연주하는 곡이라면 혼자서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된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라 할지라도 합주를 할 때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을 넘는다면 전제적인 음악은 좋아지기 힘들다. 합주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연주자들과의 상호작용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셈이다.
요즘 들어 사람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 평생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가는 이상 언제나 그 관계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잘 파악하고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책임감과 협업, 협력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기타가 됐든 춤이 됐든 공부가 됐든 자신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이렇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스스로의 모습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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