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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같이 연주해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이세형 | 퓨전 재즈밴드 '라스트폴'의 기타리스트

[인-잇] 같이 연주해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유학 시절 일이다. 학생들이 각자 팀을 짜서 수업 시간에 연주를 하고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으로부터 연주 평을 듣는 수업이 있었다. 나는 지미 핸드릭스의 'Little Wing'이라는 곡을 스티비 레이 본이 다시 연주한 버전을 연습했다. 기타의 솔로 인트로가 인상적인 연주곡이기에 해당 부분을 열심히 연습했고, 드럼, 베이스와 같이 맞춰본 뒤 수업에 들어갔다.

연주가 끝난 후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나의 인트로 연주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신 교수님은 나보다 오히려 같이 연주해준 드럼, 베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분명 기타가 돋보이는 연주곡이지만, 드럼과 베이스가 묵묵히 기타를 받쳐주는 역할을 해 준 덕분에 전체적으로 좋은 연주가 됐다는 평가였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연주 평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그 교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좋은 연주가 되려면 도드라지지 않는 악기들의 역할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는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보다 전체가 만들어내는 느낌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 등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을 같이 해봐야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같이 여행을 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같이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쳐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고도 한다. 다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기타 연주자인 나는 어떤 사람과 같이 연주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성향을 분명히 알게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베이스 연주자가 틈만 나면 기타나 건반이 채워야 할 자리에 먼저 솔로를 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노래 후반부에 열정적인 솔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악보에 나와 있는 이상은 연주하지 않는 기타리스트도 있다.

연주자들의 성향이 연주를 보는 재미가 될 수도 있고, 또 솔로로 연주하는 곡이라면 혼자서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된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라 할지라도 합주를 할 때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을 넘는다면 전제적인 음악은 좋아지기 힘들다. 합주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연주자들과의 상호작용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셈이다.

요즘 들어 사람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 평생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가는 이상 언제나 그 관계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잘 파악하고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책임감과 협업, 협력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기타가 됐든 춤이 됐든 공부가 됐든 자신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이렇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스스로의 모습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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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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