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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1 - 치마 유니폼에 담긴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자!

[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1 - 치마 유니폼에 담긴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자!
이제는 내복과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아침,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사 1층 안내데스크 여직원들은 왜 짧은 치마만 입는 건가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몰랐습니다. 아니, 어떤 옷을 입는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질문, 정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요즘 항공사 승무원들도 바지 입고 일하잖아요?"

2013년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이 치마 유니폼이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불편하다면서 바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회사를 제소했고, 그 결과 회사는 바지 유니폼을 도입했습니다. 그 기사를 다름 아닌 제가 썼는데, 정작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한동안 머릿속에서 '치마 유니폼'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겨울에 치마 유니폼을 입게 된 걸까요? 치마 유니폼을 입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여성 복장 규정
● "여자가, 치마를 입고, 해야 한다"…왜?

'누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기로 했습니다.

건물 안내데스크 직원, 은행 창구 직원, 호텔이나 식당 서빙 직원, 비서, 항공사나 열차 승무원 여기에 야외에서는 백화점 주차요원, 화장품 판촉사원… 직종은 주로 서비스업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응대하고 편의를 제공하거나 고충을 해결하는 일, 무언가를 알리거나 홍보하는 일, 나아가 누군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까지, 업무는 다양했고 활동량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여성 직원들이 치마 유니폼을 입게 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여자라서', '단정해 보이니까', '여자가 단정하면 보기 좋으니까', 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요즘 시대에 저런 구태의연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고 하실 수도 있는데 현실이 그렇습니다. 저희가 접촉한 회사 가운데 '여성 직원은 치마를 입는다'는 식의 명확한 복장 규정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으니까요.

물론 위에 언급한 직원들이 모두 치마만 입는 건 아닙니다. 바지 유니폼을 지급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치마를 입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를 응대하는 일은 여자가 치마를 입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업무와 관계도 없고 규정도 없이 오로지 치마만 입으라고 강요하는 회사의 암묵적인 분위기, 여성 직원을 동료가 아니라 장식품으로 여기는 조직 문화… 저희가 바꾸려는 건 바로 이런 오래된 관행입니다.
여성 복장 규정
● 치마와 바지, 유니폼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치마와 바지 유니폼, 둘 중에 선택하라면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으면 되겠지요. 저희가 치마 유니폼을 입고 일한 직원들을 인터뷰했을 때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하지만 이 직원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치마 유니폼을 입는 직원들은 한결같이 스타킹과 구두, 머리색과 모양, 화장 방식까지 부수적인 규정이 뒤따라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차려입고 일을 해보니, 남들이 보기엔 단정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자신은 일하는 데에 너무 불편하다는 겁니다. 움직일 때마다, 계단 오를 때마다 속옷이 보일지 몰라 옷을 고쳐 입어야 하고, 바닥이 미끄러운 곳을 오갈 때는 구두를 신고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웠고, 스타킹에 올이 나가진 않는지, 머리 모양이 흐트러지진 않는지 수시로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비행기나 열차 승무원들이, 쉼 없이 객실을 오가며 승객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도 매번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겁니다. 불편한 수준을 넘어서 한겨울에 감기에 걸리는 건 다반사였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치마를 입고 일을 해야 할까? 직원들은 복장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면, 자신의 업무인 서비스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습니다.

이런 고충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들이 선택한 일이 아니냐', '서비스를 팔고 돈을 받으면서 용모를 단정하게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치마가 좋아서 입는 것 아니냐' 등등 의견이 늘 뒤따라옵니다. 물론 '남자들도 더운 날 반바지 못 입어서 불편하다'는 식의 반응도 빠지지 않습니다.

치마가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회사 유니폼을 없애자는 것도 아닙니다. 치마 유니폼을 전부 바지 유니폼으로 바꾸자는 것도 당연히 아닙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그동안 업무와 관련 없이, 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가 치마 유니폼만 입으라고 강요했던 건 명확한 규정이나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고정관념이나 회사의 암묵적인 분위기 때문이었기에, 그 구태의연한 생각을 바꾸고 여성 직원들도 업무에 적합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자는 겁니다.

그래서 '프리-스커트(Free-Skirt)', 치마 유니폼에 담긴 고정 관념에서 여성 직원들이 자유로워지고, 회사가 여성 직원들에게만 과도하게 부여한 복장 규정을 바꾸려는 캠페인을 지금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남성 직원의 경우에도, 회사가 한여름에 긴 팔, 긴바지 형태의 유니폼만 입으라고 강요하는데 이 복장이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고, 역시 유니폼에 대한 선택권도 없고, 게다가 불편해서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라면 당연히 취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해서 취재가 진행되지 못했는데, 이런 불편을 호소하는 분이 있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청년흥신소 썸네일용
● SBS 안내데스크 직원 유니폼이 바뀌었습니다

다른 회사를 바꾸기 앞서, SBS 안내데스크 직원들의 유니폼부터 바꾸기로 했습니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에 밝은 스타킹, 검은 구두… 다른 회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복장이었습니다.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도급 업체 소속이었는데, SBS나 업체 어느 곳에서도 복장 규정은 없었습니다. 역시나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유니폼이었던 겁니다.

평소대로(?) 취재하다가는 오해만 쌓일 것 같아 사내 총무팀에 협조를 구했습니다. 최근에 유니폼을 바꾸려는 분위기가 있었던 데다 마침 업체와 재계약을 하는 시기여서, 유니폼 교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업체는 길이가 좀 더 긴,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와 바지를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직원들은 두 유니폼을 모두 받아 번갈아 가며 입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옷이 바뀌는 데는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업체와의 도급 비용 문제 말고는 다른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SBS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긴 치마를 입기도 하고, 바지를 입기도 합니다. 업무에 따라 좀 더 편한 옷을 선택해서 입는 겁니다. 오래된 관행을 바꾸는 것, 다른 회사에서도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치마 유니폼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저희가 계속 취재하고 보도하면서 바꿔 나가겠습니다.

▶ SBS x 청년 프로젝트
▶ [청년흥신소] "나의 치마 유니폼 이야기" 세번째 회의
▶ [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2 - 치마만 입어야 하는 사람들
▶ [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3 - "여성은 치마" 고정관념 재생산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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