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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2 - 치마만 입어야 하는 사람들

[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2 - 치마만 입어야 하는 사람들
여성 근로자가 자신의 근무 활동에 가장 최적화된 근무복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프리스커트 캠페인>은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할까. 다시 말해, 치마만 입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의전이 중요한 곳, 말쑥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 곳, 다수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책 또는 그러한 업종. 가장 쉽게 생각에 이른 곳은 역시 '안내데스크'였다.
여성 주차 안내 직원
● 안내 직원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

취재진은 서울 시내에 있는 국내 대형 백화점 세 곳(롯데, 현대, 신세계)의 본점을 돌아보기로 했다. 고충을 짐작하기보다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 했다. 먼저 중구 소공동에 있는 백화점을 찾아갔다. 급격히 기온이 떨어져 거리의 행인들은 옷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걸었다.

백화점 정문으로 들어가기도 전 몇 명이 눈에 띄었다. 회사에서 유니폼으로 제공한 갈색 겨울 코트를 입은 주차 안내 직원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백화점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조금씩 늘었다. 야외에 마련된 대기 부스 안쪽엔 난방기가 있었다. 앉았다 일어서는 일을 반복하며 차 열쇠를 가지고 왔다 갔다 했다. 여유가 좀 생길 무렵,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따뜻하고 실용적인 게 최고죠. 유니폼은 관리자들이 주니까 잘 모르겠는데 일하기로 하고 휴게실에 가니까 '이거 입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치마밖에 안 받긴 했는데 코트로 가려지니까 바지 입어도 될 것 같긴 해요."

"키가 작으면 굽이 5cm 이상인 구두를 신어야 하고 키가 크면 3cm 정도도 괜찮아요. 규정은 딱히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잘은 모르겠는데 3cm 이상은 신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치마 입는 것도 익숙해졌는데 아 그런 거 있어요. 이런 코트 말고 패딩 같은 거 입고 싶어요."
백화점 여성 근로자
● 유모차 안내 직원도, 짐 운반 안내 직원도 모두 '치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난방이 잘 돼 있어 추위 걱정은 덜해도 높은 구두에 짧은 치마를 입은 안내 직원들이 많았다. 한 백화점에는 장을 보러 온 고객들로 붐비는 지하 식품관 에스컬레이터 앞에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운송 서비스를 안내하는 직원이 서 있었다. 배송 직원을 연계해주는 안내원 역할인데, 바지 유니폼이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치마를 입고 있었다.

층을 올라가니 유모차 안내소가 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매장에 온 고객을 위해 유모차를 대여하는데 이곳에도 익숙한 치마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있었다. 백화점에 출근하고부터는 치마만 계속 입었다고 한다. 익숙해지다 보니 크게 불편하진 않다고 대답했다.

다른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도 치마 입은 직원들을 쉽게 찾았다. 쪽진 머리와 정돈된 화장, 짧은 치마와 높은 구두는 공통점이다. 치마를 입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다 보니 가끔 말려 올라가는 치마에 신경이 쓰인다.

"바지가 편하긴 하죠. 계속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데 사실 지나가시다가 가끔 쳐다보는 고객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게 좀 불편하긴 한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가 없으니까."

'치마 복장' 강요는 야외 판촉 사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명동 거리에서 화장품 매장 가격 할인 판촉을 위해 밖에 나와 가게를 장식하고 있는 여성 직원을 발견했다.

"저희 가게에는 바지 유니폼 없어요. 여자 직원들은 다 치마 입어야 해요. 사계절 내내 치마만 입어요. 처음엔 좀 불편했는데 익숙하게 됐어요. 겨울엔 스타킹 두꺼운 거 신어야죠. 히터 빵빵하게 틀고."

● 복장 규정 따로 없는데…불편함은 '당연한 것'?

불편함이 있지만 누구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치마 유니폼을, 그럼 누가 이 여성들에게 강요한 걸까? 일부 직영 소속 직원을 둔 백화점을 제외하곤 대부분 안내 데스크 직원들은 인력업체를 통해 알선된 도급 업체 소속 직원들로 확인됐다. 유니폼을 소속 회사에서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급업체를 찾아가 봤다.

도급업체 A 관계자는 인력 하청을 주기 전 백화점 등이 소속 직원에게 나눠주던 유니폼 형태가 이어져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매장에 통일감을 주기 위해 소속 직원들에게 지급할 유니폼 형태는 같기 때문에 도급업체가 자의적으로 직원 설문을 통해 바지도 함께 지급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유니폼보다는 환경 쪽으로 저희가 개선하려고 해요. 좀 덜 추운 곳으로 이동해서 근무를 하도록 한다든지 손난로를 지원한다든지. 패딩 조끼 같은 걸 추우면 지급해주는 식으로. 유니폼 변경은 아무래도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주차 직원도 그렇고 안내 데스크도 그렇고 딱 보면 어느 백화점이다, 라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니까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지."
여성 복장 규정
● SBS <프리스커트 캠페인>, 우리 주변 누군가는 늘 겪었던 불편함

확인 요청을 받은 백화점 세 곳은 현재 특정 직군에 치마 유니폼만 제공된 경위에 대해 모두 사내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활동량'에 따라 유니폼을 지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내데스크 등 움직임이 거의 없고 문의 고객을 기다리며 '응대'하는 직군엔 '치마'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두 직원들의 의사를 표집해 앞으로 유니폼을 새로 제작하는 데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5년 전 이미 디자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또 언제 다시 유니폼을 바꾸게 될진 모르겠다"고 다소 유보적으로 답한 곳도 있었다.

'치마만' 입어야 하는 근로자들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백화점, 공항뿐 아니라 대도시 고층 빌딩, 그리고 심지어 공공기관에서도 가장 먼저 고객을, 시민을 대하고 인사하는 여성 근로자들 대부분이 치마를 입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규정은 소속 도급 회사에도, 원청 회사에도 없다. 우리 주변에 늘 있었지만 '익숙해져야 했던' 불편함,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이 오래된 관념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을지 모른다.

▶ [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1 - 치마 유니폼에 담긴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자!
▶ [취재파일] 프리스커트 캠페인 3 - "여성은 치마" 고정관념 재생산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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