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2019년 6월과 11월의 홍콩…그리고 1989년 베이징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9.11.23 17:18 수정 2019.11.23 17:1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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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내라" "반항하라" "복수하라"

지난주 홍콩의 금융중심지인 센트럴 지역. 오후 12시가 되자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하며 '함께 점심을(和你LUNCH)' 시위를 열었습니다. 앞서 세 번의 홍콩 송환법 시위 출장에서 잘 듣지 못했던 구호 하나가 들렸습니다. "홍콩인 복수하라"였습니다. 지난 6월 12일 송환법 시위 첫 취재 현장에서 많이 나온 구호 가운데 하나는 "홍콩인 힘내라"였습니다. 7월 1일 입법회 점거 시위가 발생하고, 시위가 이어지고, 충돌이 격화되면서 이 구호는 "홍콩인 반항하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복수라는 섬뜩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이 계속 커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홍콩 과기대 학생이 시위 현장 인근 건물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고, 경찰이 시위 참가자에게 총격을 가하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이었습니다.

6월의 대규모 평화 시위는 이제 경찰과 시위대의 '극한 충돌'로 바뀌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찾은 홍콩 중문대는 최루탄과 화염에 휩싸인 바리케이드에서 나오는 연기가 뒤덮고 있었습니다. 앞선 충돌에서 불에 완전하게 타버린 차량의 잔해, 바닥에서 화염병을 만들고 있는 시위대, 멈추지 않는 최루탄 포성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지난 12일 홍콩 중문대학교 시위그리고 언론에서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 홍콩 이공대에서 17일 벌어진 충돌은 제가 취재한 시위 중 가장 격렬했습니다. 경찰은 수 백발의 최루탄, 염료를 섞은 물대포와 함께 음향 대포까지 시위 현장에 투입했습니다. 시위대는 이에 맞서 화염병과 벽돌을 던졌고, 이공대 안에서 목격한 시위대는 새총으로 쇠구슬을 쏘고 활과 자체 제작한 투석기까지 사용하며 저항했습니다.
17일 홍콩 이공대 시위최루탄과 물대포 등에 맞아 피를 흘리는 시위대, 화살에 종아리를 맞은 경찰. 시위가 반년 가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폭력과 총격 사건 같은 경찰의 과잉 진압에 분노한 시위대와 격렬하게 계속되는 게릴라 시위와 경찰을 노린 흉기 사건까지 겪고 있는 경찰 모두 악에 받쳐 물러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도들의 폭력행위"

홍콩의 평일 출근길은 시위대의 교통 방해 시위로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시위대가 고속도로와 터널을 점거했고, 지하철 선로에 화염병과 장애물을 던졌습니다. 지하철 객차를 부수기도 했습니다.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과 시위대는 설전과 몸싸움까지 벌였습니다. 시위대는 밤마다 게릴라 전을 벌이며 중국계 상점은 물론 교통 신호등, 도로 등도 파손했습니다.

경찰이 시위 참가자를 향해 실탄 사격을 한 11일, 오후에는 시위대가 언쟁을 벌이던 한 남성 몸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시위대와 시위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벽돌을 던지며 충돌하다 70대 남성이 숨지기까지 했습니다.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 장관은 11일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폭력과 비극을 낳을 것"이라며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도들의 폭력행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위대가 중국계 은행을 공격하고 있다잦은 충돌, 폭력성, 다른 홍콩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시위 방식에 대해 시위대는 어떤 생각일지 많이 궁금했습니다. 인터뷰에 나선 시위 참가자들은 말은 비슷했습니다. "폭력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맞고, 홍콩 시민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이전 평화적인 시위에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송환법은 철회됐지만, 경찰 과잉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나 직선제 수용 같은 나머지 4개의 요구에 대해서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시위 방식을 바꿔 정부에 대한 압박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5년 전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던 데모시스토당의 아그네스 차우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8월 불법 시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번 시위에서 자신은 참가자이라고 말한 그녀는 "경찰은 합법적으로 무기를 사용하지만 시위대는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6월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우산혁명 시위는 평화적으로 정부 청사 근처를 점거하고 평화적으로 했는데,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또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다. 시위 방식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함께 점심을! 함께 투표를!"

"선거를 위해서 해외에서 들어왔습니다. 경찰의 폭력이 도를 넘었습니다. 정부는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센트럴 지역 시위에서 만난 55세 남성의 말입니다. 닷새 연속 센트럴 점거 시위가 열린 이 날은 다른 날보다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정장과 유니폼을 입은 직장인들은 센트럴 거리를 점거하고 '5대 요구'를 뜻하는 다섯 손가락을 펼쳐 들었습니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격렬해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크게 줄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시위대에게 고무적으로 해석됐습니다.
홍콩 센트럴 지역 '함께 점심을' 시위24일 구의회 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는 6월 송환법 사태 시작 이후 홍콩 시민들의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선거입니다. 지난 6월과 7월 시위 현장에서 많은 시민들이 서로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올해 등록 유권자는 413만명으로 역대 최다입니다. 특히 올해 신규 등록된 유권자 수도 39만 명으로 역시 최다 기록을 세웠는데,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35세 이하의 젊은 유권자입니다. 다만, 최근 중국계 상점 공격이나, 반시위 시민들과의 충돌, 교통방해 시위 등으로 시위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도 있는 만큼, 송환법 사태 초기의 민의가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이번 선거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홍콩의 수반인 행정장관을 뽑는데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홍콩의 행정장관은 직선제가 아닙니다. 1천200명의 선거인단이 뽑습니다. 이 선거인단은 산업·금융계와 전문직군, 농어업·노동·사회·종교계, 그리고 정치권 등 4개 부문에 300명씩 배정돼 있습니다. 구의회는 정치권에 속하는데, 117명이 할당돼 있습니다. 그런데 117명의 선거인단을 표결을 통해 다수파가 모두 차지합니다.

지금 구의회는 친중파가 73% 정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범민주 진영이 이번 선거에서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면 행정장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됩니다. 또 구의원들은 국회의원 격인 입법회 의원도 겸직할 수 있습니다. 입법회 의원 70명도 행정장관선거인단에 들어갑니다. 내년 9월에 입법회 선거가 열리는데 구의원 선거에 이어 그때까지 반정부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친중파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위 진영에서는 선거 전까지 격렬한 시위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다만, 선거에서 민주 진영이 과반수를 넘는다고 해서 시위가 멈추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이공대에서 만난 한 시위 참가자는 현재의 선거제도는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위대의 요구 사안 가운데 하나인 행정장관 직선제가 도입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홍콩을 통제하기 원하는 중국 정부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작다는 것입니다.

● "지금이 1989년 6월 4일인가?"

홍콩을 걱정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시각 중 하나는 "홍콩에 중국 군대가 투입돼 톈안먼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센트럴 지역엔 '지금이 1989년 6월 4일인가'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직접 개입은 7월부터 논란이 됐습니다. 중국 정부는 홍콩 옆에 있는 광저우 선전에서 무장경찰과 군대의 훈련 영상을 공개하며 시위대를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시위가 격화되면서 중국은 다시 군 개입을 강하게 거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홍콩 시위사실, 이미 홍콩에는 1만 2천 명의 인민해방군이 주둔해 있습니다. 11개 지역에 있는데, 지난 주말에는 홍콩 침례대 옆에 있는 주둔지에서 군인들이 나와서 논란이 됐습니다. 시위 진압은 아니었고, 반팔 차림으로 시위로 망가진 도로의 복구를 돕기 위해 나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이 홍콩 정부의 요청이 없었지만 거리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시위 진영에는 압박으로 다가왔고, 이들 가운데는 중국 대테러 부대도 있는 것으로 나중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또 이공대 옆에도 중국 군대 주둔지가 있는데요, 이공대 시위가 한창일 때 주둔지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총에 총검을 꽂은 채 경계를 서고, 망원경으로 시위를 관찰하는 모습은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홍콩이나 서방 언론도 그렇고 홍콩 현지 분위기도 아직까지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면 개입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결과가 가져올 후폭풍이 크기 때문입니다. 만약 군이 투입된다면 무역전쟁, 패권 다툼을 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서방 세계가 중국에 대한 강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홍콩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들도 위협을 느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홍콩은 외국 자본들이 중국에 투자하는 창구인데, 올들어 8월까지 중국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 투자 가운데 70%가 홍콩을 통해 유입됐습니다. 홍콩의 역할이 갈수록 축소된다고는 하지만 중국에게는 아직 버릴 수 없는 카드입니다.

중국은 홍콩 경찰력을 이용한 최대한의 강경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강경파인 크리스 탕 홍콩 경찰청장이 새로 취임했는데, 이공대 시위 현장에 음향 대포를 등장시켰고, 소총을 든 경찰을 여럿 배치했습니다. 또 침사추이를 비롯한 도심 시위 현장에서 잡은 시위 참가자들을 바로 폭동 혐의로 무더기 기소했습니다. 폭동 혐의로 유죄를 받으면 최고 10년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 충원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이공대 시위 진압으로 시위대의 예봉이 일단 꺾인 상황에서 더 몰아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말 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 즉 4중 전회에서 중국의 영토인 홍콩에 대해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최근 두 번이나 폭도에 강경 대응할 것을 주문하며 시위대 요구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홍콩 사태의 여파가 타이완과 티베트, 신장위구르 등으로 번지는 것에 대한 경계도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경제와 사상, 삶에서 자유를 누렸던 젊은 홍콩 시민들은 시위대는 우산혁명의 실패를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국제사회, 특히 중국에 강하게 말할 수 있는 미국의 개입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홍콩 정부와 경찰의 강경 대응 속에 24일 선거 이후 홍콩 사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두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홍콩의 혼란은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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