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내 마음 챙기는 방법 - '익숙한 것'에 속지 마라!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19.11.22 11:00 수정 2019.11.22 11: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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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즉 현재에 가장 집중하는 명상과 같은 상태가 가장 잘 되는 때는 언제일까? 여러 가지 순간들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여행을 꼽을 수 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의 어떤 부분이 이런 작용을 만들어내는 걸까? 여행지에는 자꾸만 쳐들어오는 번민들을 막아주는 장벽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여행지의 '새로움'이다. 색다른 날씨, 음식, 처음 보는 풍경들은 계속해서 그 장소와 순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지금 여기'에 생각이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는 '새롭고 신기하지 않아서'이다. 일상의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자동조종 상태에 빠지고,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생각은 습관처럼 또 과거와 미래로 향한다. 잘해봐야 1년에 1~2주 휴가를 낼 뿐,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면 정녕 답이 없는 걸까?

지난 글에 소개한 '건포도 명상'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이전에 자주 먹었던 건포도이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주의를 집중하며 바라보았을 때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새로울 것 하나 없어 보이던 일상에도 건포도 명상처럼 호기심과 주의를 기울여 바라본다면, 작은 순간순간들을 여행처럼 살아내려 시도해보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우리 집 앞 귤나무에 귤이 열렸어!"

아이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다. 서울 아파트에 무슨 귤나무란 말인가. 예전 제주도에서 감귤 따기 체험을 했던 추억과 상상이 결부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그럴 나이지. 하지만 다음 날 출근길에 정말 작은 귤나무가 아파트 현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놀랐다. 아니, 나는 왜 이걸 못 봤지? 그것은 내가 매일 아침마다 자동조종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 빨리 준비했어야 됐는데! 첫 환자 진료 시간에 늦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과거와 미래의 생각에 빠진 채 집부터 지하철역까지 기계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생각과 몸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었고, 의식 밖에서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몸에게는 출근길과 다른 방향으로 고개 한 번 돌릴 자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자동조종 상태에서 벗어나 내 삶 속에 있던 다양한 장면들을 더 눈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처음 바라보는 것처럼 살펴보면 꽤 놀랍다. 그 자리에 항상 있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나는 보지 못하고 있었던가. 햇살의 따스한 느낌, 바람이 스치는 감각을 더 느껴보려고 시도해본다. 현재에 닻을 내리고, 과거와 미래에서 온 상념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나 역시 마음 수련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글로 적은 것들을 머리로는 알지만 또 반복한다. 계속해서 자동조종 상태로 빠져든다. 특히나 스마트폰이란 녀석이 내 발목을 잡는다. 길을 걷기 시작함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손과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대신 숙여지는 고개가 자연스럽다. 나뿐 아니라 인류의 보행법이 새로 패치된 것 같다.

물론 스마트폰 자체가 상념들을 끊어내는 데 도움될 때도 많고, 개인적으로도 웹툰 속 세상을 나만의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면, 알아챈 순간 끊어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조금 더 내 뜻대로, 나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굴러가는 대로' 대신 마음챙김을 시도해보자. '지금 여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해보자. 잘 안 되어도 자책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다시 시도하자. 꾸준한 노력을 통해 단단해지는 마음 근육이 나를 현재에 머무를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글 막바지에 온 지금 내게는 어떠한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마음을 챙겨본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 후회하는 마음이 있다. 매주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 괜히 쓴다 그랬나? 걱정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늦은 밤인데 내일 진료 때 잘 집중할 수 있을까? 아… 한숨이 나온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마음챙김을 연습하는 나는 더 이상 이 감정들에 휩쓸려 가지 않는다. 휩쓸려 가는 초기에 알아채고 벗어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래, 그렇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다면 더 글에 집중해 빨리 마무리 짓고 자야겠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현재 마음은 어떠한가?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읽었구나!'이길 바라지만, '오늘도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보다가 이 글까지 왔구나.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있었구나. 망했다' 같은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망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자. '그렇구나, 망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내가 또 매번 하던 대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러면 이제 다시 현재에 집중해야겠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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