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꼰대 욕하는 우리, 혹시 '내로남불'하는 건 아닐까?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SBS 뉴스

작성 2019.11.21 11:00 수정 2019.11.21 11:2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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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사내 메일함을 열어보니, '검토 결과'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해 있다. 최근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취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공모를 했는데, 그것에 대한 심사국의 최종 답변이 온 것이다. 답이 뭐라고 왔을까? 얼른 열어봤다.

검토 결과: 반려
반려 이유: (핵심만 요약하자면) 복장이 편해진다고 조직이 진취적으로 변한다는 상관관계 없음

실망하는 마음에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꼰대 같은 양반들이 앉아 심사를 하니 그렇지."

찡그린 표정으로 중얼중얼 거리는 걸 내 앞에 앉아있는 김 대리가 들었나 보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응, 내가 제안한 복장규정 변경안이 최종적으로 반려가 돼서."

"아. 우리도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 회사가 그렇지 뭐.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임원분들, 웬만해선 자신들 생각 안 바꾸잖아. 내가 보기에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사고방식인데 말이야. 시대가 변한 걸 모르고."

무심코 말하다 보니 '아차' 싶다. 말하자면 도둑이 제발 저린 셈인데, 사연은 이랬다.

한 달 전인가 김 대리가 나한테 건의한 제안이 있었다. 일요일 당직을 없애자는 거다. "굳이 나와서 할 일도 없는데 만에 하나 경우 때문에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또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상황 보고하고 바로 조치할 수 있는 방법들도 많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이유로 "우리 회사 특성상 일요일에도 현장이 돌아가는데 어떻게 현장을 관리하고 총괄하는 우리가 쉴 수 있나?"라는, 나무람이 포함된 걱정을 늘어놓았다.

당시에는 '이 친구가 아직 뭘 모른다' 생각하며 건의를 묵살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김 대리가 지금의 나처럼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어 괜히 뜨끔한 것이다.

"노인 양반! 당신은 칠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명예도 얻었소. 그리하여 당신은 스스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말라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소. 새로운 세대는 마치 난파된 배를 버리듯이 지나간 세대가 벌여놓은 사업을 버리는 법이라오."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사상가였던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제는 고전이 된 자신의 대표작 <월든>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러고 보면 과거부터 있어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세대 갈등'은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꼰대 꼰대' 하듯 서양에서는 요즘 '오케이 부머'(OK boomer, 기성세대에게 하는 "알았으니 됐어요'라는 의미의 말)가 유행이라고 하니, 동서고금 다를 게 없다.

소로의 말을 빌리자면 40대인 나에게 '노인 양반'은 50~60대의 나이 지긋한 임원들이었지만, 30대 초반의 김 대리에게는 내가 되었을 것이다. '노인양반'으로 구성된 심사국이 현명하다고 믿으며 내린 결정은 나에게 있어서는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듯, '나의 스마트한 판단'은 김 대리에게 있어서 '이제는 버려야 할 지난 세대의 사업'이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일요일에 어떻게 우리가 쉴 수 있나?"라는 나의 비난과 우려는 수치적, 법적 데이터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회사생활을 해온 나의 감과 관행에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일해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 감과 관행이란 것,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나는 조용히 김 대리를 불렀다. "일전에 얘기했던 일요 당직 폐지 건 말이야, 다시 한번 논의해 보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 대리 의견이 맞는 것 같기도 해."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이미 꼰대인 걸 아니라고 우겨봤자 무엇 하겠나. 그저 내가 꼰대라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꼰대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말고, 수시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직장에서 '꼰대'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면, 좀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꼰대라도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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