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피아노 조율사 기사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등장한 이유

81세 조율사 이종열 선생 뉴스에 조성진 '우정 출연'하다

김수현 기자 shkim@sbs.co.kr

작성 2019.11.19 09:17 수정 2019.11.20 19: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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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조율사 이종열의 조율의 시간(사진=연합뉴스)81세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 선생. 예술의전당 음악당과 롯데 콘서트홀 공연에 오르는 피아노를 전담해 조율하는 사람이다. 그가 최근 '조율의 시간'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이 흥미로워 당장 인터뷰 요청을 했고, 승낙을 받았다. 그런데 실제로 기사가 나갈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까지 같이 취재하느라 그랬다.
▶ "조율은 예술이다" 피아노 음을 빛내는 81세 '명장' (2019년 11월 17일, SBS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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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 선생의 책에는 64년 조율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는 교회의 풍금 소리가 좋았던 어린 시절, 고장 난 풍금을 뜯어보고 고치면서 조율의 세계에 처음 입문했다. 피아노를 접한 뒤에는 일본어 조율 교재를 혼자 공부하며 기술을 익혔다. 1958년, 몇 달을 기다려 일본에서 출간된 피아노 조율 교재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의 흥분을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사전을 찾아가며 수없이 뒤적였던 그 책을 선생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고 만지면 바스라질 정도로 오래된 책이지만, 이 책을 종종 펼쳐보며 젊은 시절의 '열정'을 되새긴다.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그는 군대 제대 후 서울의 악기사에 취직해 피아노 조율사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점 바빠졌고, 이 선생의 솜씨에 반한 연주자들이 추천해 세종문화회관의 전담 조율사가 되었다. 지금은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전담 조율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조율 명장 1호이기도 하다. 그의 제자들이 세종문화회관과 금호아트홀 등 주요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다.

피아노 조율사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피아니스트들만큼 잘 아는 사람들은 없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자신의 취향과 요구에 딱 맞춰 조율해주는 전속 조율사를 세계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닌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아예 공연장에 자기 피아노를 가져가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조율을 하기도 한다. 이 선생의 책에 보면 지메르만 연주회 때의 일화가 나온다. 그 까다로운 지메르만이 이 선생이 해준 조율에 만족해서, 공연 커튼콜 때 '이 선생에게 감사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거다. 지메르만은 이후 내한공연에서도 이종열 선생을 찾는다고 한다.

피아노 조율사가 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피아노 줄을 감거나 풀어서 장력을 변화시켜 도레미파솔라시도, 음정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을 조율이라 한다. 그리고 건반 깊이를 국제 규격으로 잘 만들고, 피아노 해머가 움직이는 과정을 정밀하게 조정함으로써 연주자가 원하는 표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조율사의 일이다. 또 소리를 정리 정돈하는 '정음(Voicing)'도 중요하다.

"음정은 맞아도 소리가 가지각색이면 안되죠. 소리가 너무 작다, 혹은 너무 쨍쨍해서 시끄럽다, 이런 걸 정리정돈 하는 게 '보이싱'입니다. 조율사는 정음을 위해서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야 해요. 눈도 정확해야 되고, 음악을 잘 듣는 귀도 있어야 하고, 이왕이면 피아노를 연주해 볼 수 있는 기능도 가지면 좋죠. 스스로 연주를 해보고 제가 불편하면 연주자도 분명히 불편하거든요."

조율에 따라서 피아노의 소리가 달라진다. 똑같은 피아노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피아노라도 어떻게 조율했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이 선생이 조율할 때 양털을 뭉쳐 만든 피아노 해머 머리 부분을 가는 바늘로 콕콕 찌르는 과정이 있다. 해머 머리 부분이 단단하게 뭉쳐 있으면 건반을 때릴 때 '쨍한' 정도가 커진다. 반대로 이 양털이 뭉친 정도가 성기면 좀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 바늘로 뚫어서 양모의 단단한 수준을 변경시키는 작업인데, 그냥 아무 데나 뚫는 게 아니고, 이 위치에 바늘이 들어가면 소리가 어떻게 변할 거다, 예측을 하면서 해요. 작업하면서 그 소리가 나오면 거기서 멈추죠. 또 모든 건반이 다 고른 소리를 내야 하거든요. 브라이트한(밝은) 소리라면 전체가 다 브라이트해야 하고, 부드러운 소리라면 전체가 다 부드러워야 하죠. 브라이트한 소리 부드러운 소리 막 섞여 있으면 노래가 안 돼요. 그래서 음색을 고르게 하는 작업이 중요하죠. 바늘을 어느 위치에 어느 정도나 뚫을 것인지는 제 감각에 따라 결정하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배울 수 있으나 실제로 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첫째도 경험, 둘째도 경험이다.

"경험보다 더 큰 선생님은 없어요. 실패도 많이 해봤어요. 잘못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 때도 있죠. 그럴 때는 큰 교훈이 되죠. 경험이 하나하나 쌓이는 거예요."

공연장 피아노 조율사의 일은 대부분 혼자 피아노와 씨름하는 것이지만,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와 소통하는 걸 빼놓을 수 없다. 공연 전에 조율사는 (피아니스트의 취향에 따른 요청을 반영해) 피아노 조율을 마쳐 놓는다.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조율된 피아노를 실제로 쳐본다. 이 과정에서 피아니스트의 추가 요청에 따라 조율을 더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공연이 시작되었다고 조율사의 일이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다. 공연 중에 피아노 줄이 끊어지거나 하는 돌발상황이 드물지만 생긴다. 이 때는 다시 조율사가 '출동'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사에 이 선생이 혼자서 작업하는 모습뿐 아니라 무대에 오르기 전 피아니스트와 소통하며 조율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또 피아니스트가 직접 조율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대목이 있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이 선생이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연주자 중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체류 일정이 짧은 데다 조성진 자신이 주연인 기사도 아니어서 취재에 응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취재 요청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 조성진 측으로부터 취재에 응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놀랍고 기쁘기도 했다. 그래서 일요일이었던 지난 10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예술의전당에서 취재했다. 공연을 앞두고 이 선생이 피아노를 조율하는 모습, 조성진이 이 선생이 조율한 피아노로 연습하는 모습, 그리고 이 선생과 조성진이 피아노 소리 관련해 대화하는 모습, 이 선생이 조성진의 요청에 따라 공연 직전까지 막판 조율하는 장면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과 피아니스트 조성진모두 '연출'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조성진이 이 선생이 조율해 놓은 피아노로 콘서트홀 무대 위에서 연습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 선생이 이 자리에 있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카메라 기자는 조성진의 리허설을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 선생에게 무대 쪽으로 빨리 오시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사무실에 가보니 전화기를 놓고 나갔다. 혹시나 싶어서 음악당 콘서트홀 옆에 있는 리사이틀 홀에 가봤다. 이 선생이 텅 빈 리사이틀홀에서 피아노를 조율하고 있었다. 리사이틀홀 피아노도 급하게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림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카메라 기자는 콘서트홀에 가 있었다. 내가 급한 대로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렇게 내가 찍은 화면도 리포트에 한 컷 나갔다.)

조성진은 이 선생과 자신의 인연, 그리고 조율의 중요성에 대해 '짧지만 강력한' 코멘트까지 해줬다. 알고 보니 조성진은 이종열 선생과 오랜 인연이 있었다.

"2003년인가 2004년에 제가 영창 그랜드피아노를 처음 썼었는데 그때부터 이종열 선생님의 제자이신 이정규 선생님(현재 세종문화회관 전담 조율사)이 저희 집 피아노를 조율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종열 선생님에 대해서는 이정규 선생님을 통해서 익히 들었었고요. 제가 그 당시에는 그냥 학생이었기 때문에 예술의 전당, 이런 데서 연주할 기회는 없어서, 제가 처음 이종열 선생님이 조율해 주신 피아노를 쳤던 게 2009년이었어요.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향이랑 협연했을 때. 그때부터 10년 정도 선생님과 인연이 됐네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조성진은 인터뷰가 짧든 길든 아주 신중하게 임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훌륭한 조율사가 피아니스트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너무나 잘 알려줬다.

"제가 음악이나 음색 같은 걸 표현할 때 추상적인 표현을 쓰는 걸 싫어하는 편이긴 한데, 선생님이 조율해 주시면, 약간, 피아노 음에서 빛이 나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 피아노 조율사, 피아노 테크니션이 피아니스트한테 굉장히 중요한 분들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아예 연주를 망치게 할 수도 있고, 더 좋아지게 할 수도 있는 그런 게 피아노 조율사의 역할이고 힘인데, 이 선생님처럼 좋은 피아노 조율사가 한국에 있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그래요"

그래서 피아노 조율명장 이종열 선생을 취재한 내 기사에 조성진까지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의 주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조율사 이종열 선생이 주인공인 기사에 '우정출연'한 것이다. 평소의 주역과 조역이 내 기사에서는 바뀐 셈이다. 조성진이 인터뷰에서 '피아노 소리에서 빛이 나게 하는 조율사'라고 이야기한 이종열 선생은, 자신이 하는 일 역시 '예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조율사는 소리를 갖고 조각을 해요. 소리를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 것이 저한테는 작품이죠. 그래서 저는 '조율은 예술이다'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조성진은 이번 내한에서 다른 취재 요청은 사양했다 한다. 이번 일로 알게 된 사실 두 가지. 첫째는 그만큼 피아니스트에게 조율사 이종열 선생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뭐냐고? 조성진이 이종열 선생 관련 인터뷰에 응했다는 얘기를 들은 음악계 지인들이 '조성진 의리 있네!' 하고 감탄했다. 맞는 얘기다.

평생 무대 뒤의 조역으로 살아온 이종열 선생은 책을 낸 후 요즘 종종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책의 반응이 좋아 북 콘서트도 했다고 하니 스스로 무대에 서는 '주역'이 된 셈이다. 하지만 81세에도 여전히 현역인 그의 하루 일과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그는 여전히 피아노 조율에 미쳐서 산다.

"한 우물을 계속 판 덕에 지금은 물이 펑펑 나오는 우물을 가지게 된 거죠. 중간에 돌아서서 내가 딴 거 해본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이제 기술이 겨우 쓸 만한데 80이네? 그런데 지금도 내가 진화하고 있거든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당장 뭘 새로 만들어요. 만들어 갖고 피아노에다 실험을 해봐요. 새로 만든 이 공구가 얼마나 편리하게 쓰일 수 있는 건가. 지금도 옛날 풍금 만질 때 그 극성이 살아있어요."

평생 갈고닦아온 기술이 '이제 겨우 쓸 만하다'는 이종열 선생. 앞으로 피아노가 나오는 공연을 보게 되면, 무대 뒤 피아노 조율사의 땀방울까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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