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고요? 그건 없습니다만…

서메리 | 작가 겸 번역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저자

SBS 뉴스

작성 2019.11.16 11:00 수정 2019.11.20 18: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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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 상당수가 보였던 반응이다.

"앞으로 절대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나요?"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라는 책을 냈을 때 많은 이들로부터 들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두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모두 "아니요"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솔직히 미래는 알 수 없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은 명언을 남겼다.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진다. 용도조차 모르는 희한한 물건들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는 돌잡이를 시작으로, 시시각각 찾아오는 다양한 질문과 그에 따른 대답으로 점철된다. "넌 꿈이 뭐니?", "어떤 전공을 배우고 싶니?",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니?" 각각의 답은 이어질 삶의 방향과 형태를 결정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게 있다. 사르트르가 짚어냈듯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과거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한 판단이나 앞으로 이어질 선택에 대해 우리는 얼마든지 예전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접근할 수 있다. 연필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씩 웃던 돌잔치 사진 속 내 모습을 지울 수는 없지만, 직업을 택할 때(혹은 그만둘 때)는 연필과 아무 상관 없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본디 끊임없이 이동하며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잇 서메리 삽화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소설 <방랑자들(Flights)>에 등장하는 한 화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간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 그의 생에 굳이 연속적인 무엇을 부여하려 애쓰지 않으면서 말이죠." 또 다른 화자는 말한다. "파티에 가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떤 책이냐, 그리고 어떤 파티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 우리가 한결같으며 우리의 반응이 전부 예측 가능하다는 가설은 치명적이에요."

저자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방랑자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 116개가 엮여 큰 줄기를 이루는 책이다. 화자도, 줄거리도, 시대적·공간적 배경도 제각각이지만, 작품 속 모든 단편들은 '이동(혹은 여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이는 중이다. 어떤 이는 출근을 하고, 어떤 가족은 여행을 떠나며, 또 다른 이는 독재정권의 횡포를 피해 해외로 탈출을 시도한다. 이때 토카르추크가 말하는 이동은 물리적 이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각의 기준이 변하고, 주어진 상황이 변하고, 지금껏 지녀왔던 신념이 변하는 그 모든 순간은 인간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이동의 순간이다.

깊은 고민 없이 한 사람을 평가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건 참으로 편리한 일이다. 그 '누군가'에는 물론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너는(나는)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니까", "걔는(나는) 그런 행동을 했던 사람이니까", "그들은(나는) 저런 배경을 갖고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다가올 모든 선택의 기준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그렇게 간단히 고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릴 땐 김밥 속에서 골라내기 바빴던 채소의 맛을 어느새 즐기게 되었듯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을 포함하여 퇴사할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듯이, 나는 앞으로도 지금 시점에선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변화를 겪으며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끊임없이 이동할 것이다. 그 끝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변화가 인생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그 여정은 두려움보다 기대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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