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40배 수익" 끊이지 않는 가상화폐 사기에 속지 않으려면

배정훈 기자 baejr@sbs.co.kr

작성 2019.11.12 09:05 수정 2019.11.14 06: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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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어진 지문을 읽고 이어지는 질문에 답하시오.

<지문>

"자, 제가 여러분들께 소개드리는 건 정말이지 놀랍고도 신기한 '상품'입니다. 뭐가 그렇게 신통방통하냐고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할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최첨단 기술로 무장된 '상품'인데요, 자세히는 말씀 못 드리지만 앞으로 많은 곳에 쓰이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얼마냐? 단돈 25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결단코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저희 회사가 책임지고 이 '상품'의 가격을 1천 원까지 올리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가만히 갖고만 계셔도 40배로 이득을 보실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확률 높은 방법으로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여흥거리도 제공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대박을 향해 이 '상품'에 한 번 투자해보시겠습니까?"

Q1. 다음 중 화자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한 사람은?


1. 성진 : "신뢰감 있는 말로 사람들의 투자 의욕이 샘솟게 하고 있어"
2. 준호 : "근거를 대지 않고 그럴듯한 얘기로 사람들을 홀리려 하고 있어"

Q2. 다음 중 화자의 정체로 적절한 것은?

1. 외판원
2.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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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해킹과연 성진이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거의 대부분은 준호의 의견에 동의할 겁니다. 어떤 '상품'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을 뿐 정확한 근거도, 제대로 된 설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2번 문제의 정답이 무엇인지 고르는 데 고민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요.

하지만 아무도 속이지 못할 것 같은 지문의 화자는 그야말로 마법처럼 여러 사람을 구렁텅이에 빠뜨렸습니다. 제시된 지문의 '상품'이라는 명사를 '가상화폐'로 바꿨을 뿐인데 말입니다.

● "40배로 올려드립니다"

가상화폐란 아시다시피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암호화된 화폐를 뜻합니다. 지난 2017년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비트코인을 비롯해 이더리움, 리브라 등이 잘 알려진 가상화폐입니다. 30살 김 모 씨는 지난해 12월 이런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사이트, 이른바 '가상화폐 거래소'를 열었습니다.

전형적인 가상화폐 거래소의 수익 모델은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하고 거래 수수료를 챙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 씨가 연 A 거래소의 포부는 그보다 더 컸습니다. 직접 만든 가상화폐인 A 코인을 상장해 가치를 키우는 방법으로 수익을 내겠다고 투자자들에게 공언한 겁니다. 목표 금액은 1천 원. 최초 발행액이 25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가격을 40배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투자자들에 도박까지 부추긴 가상화폐거래소사뭇 허황되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그 나름대로 제시했습니다. 이른바 '바이백'과 '소각' 전략입니다.

가상화폐의 가치도 결국 '수요와 공급'의 경제법칙으로 움직입니다. 거래소 운영으로 얻는 수익금을 모두 A 코인을 되사들이는 투자하는 '바이백'으로 A 코인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일정 규모의 가상화폐를 태워 없애는 '소각'을 통해 A 코인의 공급을 줄여 가격을 올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가치를 올려도 되는 거야?' 싶으시겠지만, 중소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펌핑'이라 불리는 너무나도 흔한 전략입니다.

● 다이스, 따면 좋고 잃어도 그만?

A 거래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가상화폐와 주사위 게임을 접목한 겁니다. 주사위 게임은 0~100까지 무작위로 나오는 숫자를 맞히는 일종의 도박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 이용자가 50을 골랐는데, 50 아래의 숫자가 나오면 돈을 따고, 50 이상의 숫자가 나오면 잃는 식이지요.

A 거래소는 이런 주사위 게임을 운영하는 B 사이트와 협약을 맺어 A 코인으로 배팅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B 사이트에서 주사위 게임으로 얻은 수익의 일부가 A 코인의 투자로 선순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A 코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사위 게임을 해서 수익을 얻으면 좋고, 잃어도 코인의 가치가 올라가니 그만이라는 겁니다.
투자자들에 도박까지 부추긴 가상화폐거래소'어쨌든 도박인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일부 투자자들의 우려도 거래소에서 직접 나서 불식시켰습니다. B 사이트가 자신들의 거래소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그러니까 한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 사이트고, 돈이 아닌 가상화폐 A 코인을 배팅하는 거라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또 실제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자문까지 받아두었다며 국내 유수의 로펌들 이름을 줄줄이 대기도 했습니다.

앞서의 모든 약속과 장담이 실현됐던 걸까요. 한 때 A 코인의 가격은 발행 가격의 10배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펌핑'이 됐던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A 코인의 가격은 급전직하했고, 주사위 게임으로 큰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가상화폐 판'에는 A 거래소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투자금을 싸 들고 오는' 신규 투자자마저 발길이 끊어졌습니다. 사려는 사람은 없고 팔려는 사람만 있다 보니, 25원 이하로는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며 '최저가 보상제'를 내 건 A 거래소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A 코인의 가격은 극적으로 붕괴돼 그 가치가 휴짓조각만도 못하게 돼버렸고, 지난 6월 거래소는 문을 닫았습니다.

● 거품이 꺼진 진짜 이유는

많은 A 코인 투자자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단순히 운이 없었던 걸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애초부터 A 거래소 대표 김 씨에게는 A 코인의 가격을 끌어올려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투자자들에 도박까지 부추긴 가상화폐거래소김 씨의 주된 관심사는 투자자들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이었습니다. 직원 이름을 빌려 계좌 두 개를 만들고, 그 계좌 사이에 가상화폐를 주고받는 식으로 없는 거래를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 A 코인의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마치 자신이 돈을 수백억 원 가진 것처럼 조작한 다음, 그 돈으로 A 코인을 사서 투자자들에게 팔아 이득을 챙겼습니다. A 거래소가 운영되는 몇 달 사이 받은 투자금은 모두 127억 원에 달했는데, 김 씨는 그 가운데 12억 원을 현금화해 부인의 계좌로 송금시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김 씨가 이렇게 돈을 빼돌리는 와중에도 다른 '바지사장'을 내세워 또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를 만든 다음 사기 행각을 계속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있는 상탭니다.

주사위 게임이 별개의 외국 사이트라 문제가 없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공지를 영어로 하는 등 '마치 외국 사이트인 양' 눈속임 해왔던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주사위 게임 사이트의 주인도 김 씨였습니다. A 코인 투자자들이 주사위 게임으로 잃는 돈이 고스란히 김 씨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간 셈입니다. 물론, 법적 자문을 받았다는 얘기도 모두 다 거짓이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일부에서는 주사위 게임 자체도 조작이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김 씨가 애초에 투자자들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설계해놨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결국 김 씨는 지난달 사기와 사설 도박장 개설 등의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잃어버린 돈을 찾을 길은 요원한 상황입니다. 김 씨가 벌어들인 수익을 생활비 등으로 모두 탕진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는 A 코인 투자자 모임 SNS 채팅방에는 소수의 투자자만 남아 조금이라도 돈을 회수할 방법이 있는지 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 "가상화폐의 탈을 쓴 '폰지 사기'"

이러한 모든 문제는 A 코인과 거래소 대표 김 씨에게 국한되는 걸까. 불행하게도 답은 "아니오"입니다. 지난 8월 '손실 100% 보전'을 내걸고 500억 대 사기 행각을 벌인 C 거래소의 운영자 박모 씨 등 3명이 경찰에 구속됐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가상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내고, 직원 계좌로 돈을 빼돌린 건 A 코인의 경우와 판박이였습니다. 이에 더해 일부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A 거래소, C 거래소와 비슷하게 운영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는 D 거래소의 경우도 경찰에서 현재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보를 바탕으로 가상화폐 거래소를 검증하는 유튜버 '코인캅스'에 따르면, 자신들이 지난 1년 동안 받은 '사기 의심' 제보만 수백 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떼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가상화폐 대부분의 실상은 나중에 들어온 사람의 돈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의 이익금을 챙겨주는 이른바 '폰지 사기'와 다르지 않은데, '가상화폐'의 탈을 쓰고 수많은 사람들을 홀린다는 게 '코인캅스' 운영자들의 설명입니다.
비트코인 가상화폐● '일확천금'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이라고 알려진 블록체인 기술.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요? 글쎄요, 일부 가상화폐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데이터를 분산해 저장함으로서 원본 데이터의 임의 변조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앞서 언급된 A 코인, C 코인 등은 관리자 권한으로 마음껏 위변조가 가능했습니다. 결국 블록체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상화폐라는 '가짜 명패'를 단 사기 수단에 불과했던 겁니다.

'가상화폐 투자' 그 자체를 엄금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섣부른 결론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가짜 가상화폐'는 걸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떻게 하면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있을까'의 답일 겁니다. 그 답을 내기 위해서는 글의 맨 첫머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가상화폐엔 놀라운 가치가 있고, 쓰임새도 많고, 추가 수익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미사여구 앞에 붙은 가상화폐(암호화폐)를 슬며시 지워보면 됩니다.

갑자기 내 손에 엄청난 수익이 주어진다고 하면 어느 누가 싫어할까요. 일확천금의 기회를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 기회를 미끼로 우릴 속이려 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나' 있고, 그 미끼에 화려한 분칠(☆최첨단 기술,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