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아베 총리에 잇단 암초…이번엔 문부상 '입'이 화근

"뒤로만 숨는 아베" 비판 안팎에서 쏟아져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19.11.09 09: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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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사임한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상 소식을 ▶ [2019.10.26 취재파일] '안정과 도전' 내걸었던 아베 새 내각, 장관 사임 사태로 휘청 을 통해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지난달 30일 가와이 가츠유키 법무상도 마찬가지로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7월에 참의원에 당선된 부인이 선거운동원에게 규정 이상의 보수를 지급해 사실상 '매수'했다는 내용-으로 사퇴하면서 이례적인 '도미노 사퇴'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두 장관급 인사의 연이은 사퇴로 9월 11일 '안정과 도전'을 내걸고 출범한 아베 정권의 새 내각이 두 달도 지나지 않아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만, 아베 총리 입장에서 각료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드러났을 때 스스로 사퇴하는 것은 어찌 보면 깔끔한 일입니다. 총리 본인이 '임명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끝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지금 아베 총리에게는 장관급 두 명의 연쇄 사퇴로 인한 후폭풍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 입시 정책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 육성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면서 '교육 재생'을 국정의 커다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총리 관저 주도로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교육재생실행위원회'를 만들고 대학 입학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위원회는 논의의 결과로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연결하는 이른바 '접속 부분'을 손보기 위해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입학센터시험'을 폐지하고 대학입학공통테스트라는 새로운 시험을 2020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공통테스트'는 지식과 기술에서 사고력과 판단력 등을 평가하는 문항으로 내용을 바꾸고 서술형 문항의 비중도 높이는 방향으로 설정됐습니다.

이 가운데 영어 과목은 읽기-듣기-말하기-쓰기의 4가지 기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여기에 추가로 민간 시험도 활용하는 방안이 결정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해에 민간 영어시험에 응시해 그 점수(두 차례까지 제출)로 '공통테스트'의 영어 과목을 대체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후 대학에서 인정되는 민간 영어 시험이 토플 IBT 등 7개로 추려졌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대입 공통테스트'가 내년부터 시행되니 내년에 고3이 되는 수험생들은 내년 4월부터 민간 영어시험에 응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험 응시를 위해 예비 고3들이 응시용 아이디를 신청하는 기간이 지난 1일 시작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입시 영어 점수에 민간 영어시험 성적을 반영하는 이 제도의 시행이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그것도 예비 고3 수험생들이 ID를 신청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날에 말입니다.
교실, 수험생문제는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사퇴한 스가와라 경산상, 가와이 법무상과 함께 지난 9월 11일에 장관이 된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의 '입'에서 시작됐습니다. 민간 영어시험은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시험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명확했습니다. 한 번 시험을 보는 데 최대 2만 5천 엔(약 26만 원)에 달하는 비싼 응시료도 만만치 않고, 또 대도시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도서 지역의 학생들이 시험을 보기 위해 대도시로 나와야 하는 경우 교통비와 숙박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수험생 각각의 빈부 격차와 거주 지역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겁니다. 집에 돈이 많고 대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연습 삼아 여러 번 시험에 응시해서, 그 가운데 좋은 점수 두 개를 대학에 제출하면 되는데,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 학생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겠죠. 그런데 지난달 24일 한 방송에 출연한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이 이 문제에 대해 '부유하지 않은 수험생들도 분수에 맞게 두 번의 시험에서 승부를 보았으면 한다'며 사실상 수험생간 환경의 격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겁니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당연히 수험생은 물론 국민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갔습니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은 사태의 파장을 직감하고 국회에서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번에는 논란이 대입 공통테스트의 영어 과목에 민간 시험을 이대로 도입하는 게 맞느냐는 논쟁으로 옮아 갔습니다. 이미 전국의 공립고등학교 교장들의 협의체인 전국고교장협회가 영어 민간시험 인정과 관련해 '준비 부족'을 강하게 지적하며 제도의 전면 연기와 재검토를 요청해 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논란이 확산하면서 11월 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민간 영어시험 응시용 수험생 ID 신청이 당일 오전에 긴급 중단된 겁니다. 게다가 집중포화를 받았던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이 직접 중단 사실을 발표하면서 정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낯부끄러운'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마침 국회 회기 중이라 야당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의 '배려 없는' 발언이 문제의 발단이 됐지만, 이런 문제 투성이 정책을 아무런 검증과 검토 없이 추진해 온 아베 정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냐는, 좀 더 근본적인 비판들입니다. '교육 재생'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전문가들 불러서 회의할 때는 전면에 나섰던 아베 총리가 이번 사태에서는 전면에 보이지 않는다는 쓴소리도 당연히 나왔습니다. 지난 5일 열린 자민당 총무회에 참석한 한 각료 경험자는 '아베 정권이 자초한 문제'라는 날 선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권한이 강한 총리 관저(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실')의 간부들이 '영어 시험 문제는 문부과학성의 소관'이라며 일제히 총리를 '심기 경호'하고 나선 것도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베 총리가 스가와라 경제산업상과 가와이 법무상 때처럼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을 '말 잘못 한 이유'로 경질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앞의 두 장관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바로 교육, 그 가운데서도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은 '대학 입학제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공식 석상에서 직접 사과하는 등 전면에 나서지 않는 전략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문제가 갖는 '파괴력'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