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 아베 총리에게는 장관급 두 명의 연쇄 사퇴로 인한 후폭풍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 입시 정책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 육성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면서 '교육 재생'을 국정의 커다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총리 관저 주도로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교육재생실행위원회'를 만들고 대학 입학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위원회는 논의의 결과로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연결하는 이른바 '접속 부분'을 손보기 위해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입학센터시험'을 폐지하고 대학입학공통테스트라는 새로운 시험을 2020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공통테스트'는 지식과 기술에서 사고력과 판단력 등을 평가하는 문항으로 내용을 바꾸고 서술형 문항의 비중도 높이는 방향으로 설정됐습니다.
이 가운데 영어 과목은 읽기-듣기-말하기-쓰기의 4가지 기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여기에 추가로 민간 시험도 활용하는 방안이 결정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해에 민간 영어시험에 응시해 그 점수(두 차례까지 제출)로 '공통테스트'의 영어 과목을 대체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후 대학에서 인정되는 민간 영어 시험이 토플 IBT 등 7개로 추려졌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대입 공통테스트'가 내년부터 시행되니 내년에 고3이 되는 수험생들은 내년 4월부터 민간 영어시험에 응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험 응시를 위해 예비 고3들이 응시용 아이디를 신청하는 기간이 지난 1일 시작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입시 영어 점수에 민간 영어시험 성적을 반영하는 이 제도의 시행이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그것도 예비 고3 수험생들이 ID를 신청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날에 말입니다.
마침 국회 회기 중이라 야당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의 '배려 없는' 발언이 문제의 발단이 됐지만, 이런 문제 투성이 정책을 아무런 검증과 검토 없이 추진해 온 아베 정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냐는, 좀 더 근본적인 비판들입니다. '교육 재생'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전문가들 불러서 회의할 때는 전면에 나섰던 아베 총리가 이번 사태에서는 전면에 보이지 않는다는 쓴소리도 당연히 나왔습니다. 지난 5일 열린 자민당 총무회에 참석한 한 각료 경험자는 '아베 정권이 자초한 문제'라는 날 선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권한이 강한 총리 관저(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실')의 간부들이 '영어 시험 문제는 문부과학성의 소관'이라며 일제히 총리를 '심기 경호'하고 나선 것도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베 총리가 스가와라 경제산업상과 가와이 법무상 때처럼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을 '말 잘못 한 이유'로 경질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앞의 두 장관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바로 교육, 그 가운데서도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은 '대학 입학제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공식 석상에서 직접 사과하는 등 전면에 나서지 않는 전략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문제가 갖는 '파괴력'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