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내 마음 챙기는 방법 - 건포도에 집중하라!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19.11.07 11:00 수정 2019.11.07 14: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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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내 마음 챙기는 방법 - 건포도에 집중하라!
"점심엔 뭘 드셨어요? 반찬이 뭐였어요?"

"네? 아… 그게 뭐였지? 잠시만요. 이게 왜 금방 안 떠오르지?"

진료실에서 자주 만나는 과거와 미래에 사는 사람들. 가끔씩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과 흔히 돌아오는 반응이다.

역시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한 30대 남성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집안의 경제적 위기를 겪은 후 그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연히 주말은 없었다. 이 삶의 방식은 그가 새 가정을 이루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뒤에도 멈춰지지 않았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미래의 행복만 바라보며 달리다 현재에 머무르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쉼 없는 질주는 공황장애라는 브레이크에 의해서야 비로소 멈춰졌다.

왜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전 식사도 잘 떠올리지 못하는지, 이게 왜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과 이어지는지 설명하려면 '마음챙김(mindfulness)'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이 개념은 직접 체험에 의해 훨씬 잘 받아들여질 수 있기에 마음챙김의 입문 단계인 건포도 명상을 소개해 보겠다.

건포도가 있다면 한 번 시도해보시라. 없다면 다른 것도 괜찮다. 아몬드 명상, 햄버거 명상, 쌀밥 명상 모두 가능하다. 단 지시문 사이 적어도 10초간 멈추며 천천히 진행하셔야 한다.

[건포도 명상]
- 건포도 하나에 집중하면서 이것을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 한 알을 잡아서 손바닥 위에 올려 보세요.
-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세요.
- 이것을 전에는 절대로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주의 깊게 바라보세요.
- 손가락 사이로 뒤집어 보고, 질감을 느껴 보세요.
- 빛에 비추어 밝은 부분과 움푹 들어간 주름을 살펴보세요.
- 건포도의 모든 부분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처럼 탐색해보세요.
- '지금 이걸 대체 왜 하는 거지?' 같은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을 단지 알아차리고 주의를 다시 건포도에 되돌려보세요.
- 이제 건포도의 냄새를 맡아 보세요.
- 침이 고이는지 주목하면서 이제 천천히 건포도를 당신의 입으로 가져가세요.
- 건포도를 부드럽게 입으로 가져가서 입안에서 생기는 감각을 느껴 보세요.
- 의식적으로 건포도를 씹어 보고 풍겨 나오는 맛에 주목해 보세요.
- 입안에 생기는 침과 변화되는 건포도의 밀도에 주목하면서 천천히 씹어 보세요.
- 건포도를 삼킬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면, 실제로 삼키기 전에 삼키려는 의도를 먼저 감지했는지 살펴보세요.
- 마지막으로 삼킬 때 느껴지는 감각을 따라가보세요. 식도를 지나 위로 내려가는 것을 느껴보세요.


강연장에서 건포도 명상을 진행할 때면 매번 관찰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들 냄새를 맡는데 입에 넣은 분들은 흔하며, 심지어는 손에 들어온 즉시 자연스럽게 먹어버려 추가로 받는 분들도 항상 있다. 이는 자동조종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손을 놓아도 굴러가는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우리의 생각과 행동들 중 상당 부분이 의식 밖에서 자동으로 굴러간다.

아침 출근길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기계처럼 움직인 우리는 어느새 사무실 자리에 앉아있다. 점심 식사 땐 오후 업무를 생각하며, 저녁에는 그날 일들을 돌이키며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먹는다. 일 생각을 하기 싫을 땐 동영상을 보며 먹는다. 고작 건포도 한 알에도 이렇게 큰 풍미가 담겨 있는데, 다양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냥 삼켜버린다.

명상 도중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자꾸만 두리번거리고, 여러 잡념들에 '난 이거 하나도 잘 못 하네'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럴 땐 이 건포도 명상의 지시문처럼 '아, 내가 지금 이런 생각들이 드는구나'라고 알아차리고 다시금 일부러 현재로 주의를 돌리면 된다. 그럴 때마다 내 탓을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마음챙김은 우리의 일상 순간순간을 건포도 명상하듯 충실하게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지금 여기'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여 자동조종에서 빠져나오도록, 계속해서 밀려오는 잡념의 파도들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도와준다.

정신과 의사가 왜 명상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다. 이 마음챙김 명상은 미국 메사추세츠 의과대학의 존 카밧진 교수가 동양 불교의 개념을 따와 만든 것으로, 오늘날 정신과 치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우울증, 불면증, 심지어 신체 통증에까지, 여러 질환들에 그 치료 효과가 입증되었다.

진료실에서 뵙는 분들은 보통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생각한다. 적당함을 지나친 이런 과도하고 불필요한 생각들은 뇌에 과부하를 일으켜 다양한 증상들을 만든다. 마음챙김은 마치 컴퓨터의 필요 없는 프로그램들을 정리하듯 생각의 양을 줄여 뇌가 안정을 찾도록 도와준다.

다음 글에서는 이 마음챙김이 현실의 삶에서 적용되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오늘 남은 식사 시간, 무엇을 드시든 여태껏 그 어떤 끼니보다 더 집중해 보기를, 마음을 채우고 있는 생각들을 비워내며 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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