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2011년 7월 3수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숙원을 풀었지만 '스키의 꽃'인 활강 경기장 장소를 확정하지 못해 고심해왔습니다.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진 결과 정선의 가리왕산이 국제 규격에 맞는 경기장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판단했습니다. 활강 코스의 관건인 표고차를 비롯한 여러 조건에서 국제스키연맹(FIS)의 규정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림청은 난색을 표시했고 환경단체는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가리왕산에는 분비나무, 신갈나무 등 희귀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은 점점 다가왔지만 정선 스키장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첫 삽조차 뜨지 못했습니다. 장 프랑코 카스퍼 FIS 회장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은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테스트 이벤트에 맞춰 정상적으로 건설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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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과 슈퍼대회전 등의 종목이 치러진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스키 5개 종목을 치를 수 있는 동북아 유일의 스키장"이란 평가를 받으며 올림픽 성공 개최에 큰 힘을 보탰습니다. 이에 고무된 강원도는 이 경기장의 존치를 원했습니다. 남북 동계 아시안게임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곤돌라와 경기장 운영 도로를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산림청은 올림픽 이후 산림으로 전면 복원한다는 사회적 약속을 전제로 가리왕산 경기장을 건설했기 때문에 강원도가 이제 그 말을 지켜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스키 경기 장소로 계속 사용하겠다는 주장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곤돌라와 운영 도로만이라도 살려놓아야 정선 스키장을 관광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즉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주변의 멋진 경관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을 개발할 수 있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강릉에는 3개 신축 경기장이 올림픽 유산으로 남아 있다. 또 평창에도 슬라이딩센터가 그대로 있다. 정선의 유일한 올림픽 경기장이 바로 이 스키장인데 전면 복원할 경우 올림픽을 치렀다는 흔적이 전혀 남지 않게 된다. 또 전면 복원하는 게 환경적으로 타당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오히려 환경을 더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곤돌라 아랫부분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다 해체하려면 또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그대로 놔두어도 자연적으로 풀도 나고 복원되는데, 엄청난 돈을 들여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원래대로 심을 필요가 있겠는가?"
복원할 경우 들어가는 예산을 누가 부담할지도 난제입니다. 일단 복원 자체는 강원도가 주관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그 비용을 국가와 강원도가 어떤 비율로 분담할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강원도의 한 관계자는 "산림청의 뜻대로 전면 복원이 결정될 경우 정선 주민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고, 산림청이 강원도와 정선군의 입장을 수용할 경우에도 복원 비용 분담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19일 어떤 결론이 나든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앞으로 스키 대회를 개최할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스키장으로는 그 수명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을 실제로 사용한 기간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테스트 이벤트를 합쳐 20일 정도입니다. 결국 20일 사용하는 데 국민 세금이 4,000억 원 들어갔으니까, 하루 평균 200억 원이 투입된 것입니다. 일반 우리 국민은 이 경기장을 단 1시간도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이쯤 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키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한 번만 쓰고 문을 닫은 최초의 올림픽 경기장으로 세계 스포츠사에 남을 전망입니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 때문에 세금이 4,000억 원이나 쓰이게 됐는데도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단 1명도 없는 현실이 더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