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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포의 40분' 제주항공 회항과 "기도하라" 논란

안 그래도 기도하고 있을 승객들에게 '공포'를 더했다

[취재파일] '공포의 40분' 제주항공 회항과 "기도하라" 논란
지난 25일 김해발 김포행 제주항공 여객기 회항 사건이 논란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무사 귀환한 건 참 다행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180여 명의 인명을 살린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칭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과가 좋으니 된 거 아니냐는 얘기인데, 항공 운항에 있어 비상한 상황이 일어났다면 원인과 과정을 철저히 따져 교훈을 남기는 게 상식입니다. 국토교통부가 조사를 천명한 이상 결과를 지켜보겠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 "기도하라" 논란…2017년 '에어아시아 회항'의 경우

보도 이후 가장 논란이 된 건 "비상착륙을 할 테니 잘 되게 기도하라"는 기내 안내가 적절했느냐는 점입니다.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통제하는 데 여러 방법이 동원될 수 있겠지만 "기도하라"는 건 좀 황당한 주문 아니냐는 겁니다.

비슷한 사례가 지난 2017년 6월 외국에서도 있었습니다. 호주 퍼스를 출발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저가 항공 에어아시아 D7237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승객 359명을 태운 여객기는 엔진 문제로 이륙 1시간 15분 만에 인도양 위에서 "세탁기에 앉은 것" 같이 떨리기 시작했고 결국 2시간에 걸쳐 회항했습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당시 조종사는 "우리의 생존은 당신들(승객)의 협조에 달려있다"며 두 차례나 "기도하라"고 요청한 걸로 드러나 서구 언론을 달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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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이 쏟아지자 당시 에어아시아 CEO 토니 페르난데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승객들을 진정시켰다"며 "위기 상황서 엄청난 리더십을 보여준 조종사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페이스북에 적었습니다. 이사회 의장 역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신의 개입을 구한 게 무엇이 잘못된 일이냐"고 자사 조종사를 두둔했습니다. 한 마디로 "잘했다"는 겁니다.

에어아시아 밖에선 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은퇴한 항공기 조종사이자 피어리스플라이트닷컴 창립자 론 닐슨은 "조종사는 승객의 감정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위급 상황서 기도해달라는 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승객에게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시켜줄 뿐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해달라고 해선 안 된다"고 포천지 기고에서 밝혔습니다. 세계조종사협회 부회장 셰인 로니 역시 "조종사는 승객한테 기도해달라고 하지 않는다"며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요컨대 안 그래도 기도하고 있을 승객들에게 굳이 두려움을 더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대한항공 한 승무원 역시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승객에 따라선 두려움을 더했을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 충분한 훈련을 받아왔으니 믿고 지시에 따라 달라고만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실제 제주항공에 탔던 탑승객도 이런 점을 지적합니다. 손자 100일 잔치를 위해 해당 여객기를 탄 김영순 씨는 "기도를 하라니, 그게 무슨 뜻이었겠느냐"며 "손자를 보기는커녕 자식들 연락도 안 되는 상황서 이제 다 죽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회항 제주항공 여객기 출발 전에도 '이상 징후'
● 정말 비상상황?…제주항공은 정작 "별일 아니었다"

다음 따져볼 문제는 '과연 어느 정도로 심각했었느냐'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국토교통부 조사로 밝혀질 일입니다. 보통 항공 운항 과정에서 비상한 일이 일어났을 경우, 국토부는 사태 경중에 따라 조사 수위를 결정합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항공안전장애'의 경우 국토부 항공안전감독관의 조사로 끝나지만, '준사고' 또는 '사고'로 분류할 정도 사태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해야 합니다. 국토부는 이번 사건을 항공안전장애로 분류해 조사 중인 걸로 전해집니다.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주항공 역시 이번 사건이 "자동항법장치의 가벼운 소프트웨어 이상이 발견"돼 벌어졌다고 밝혔습니다. 항공기 고도에 따라 적절한 자동항법 모드를 제공해야 할 신호 표출 패널이 이상을 일으켜 수동 운항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항공기 조종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건 아니란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이상하지요. 대단한 난기류를 만난 것도 아닌 상황서 왜 항공기는 요동을 쳤을까, 패널 이상으로 계기 비행마저 어려웠다면 시계(육안) 비행으로 운항하면 되지 왜 승객에게 공포를 안겼을까. 당연히 따라오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해당 항공기는 회항하기까지 무려 40분을 운항했습니다. 김포에 닿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조종사는 김해공항 관제실에 "메이데이"를 외치지도 않았고 공중에서 선회하며 대기까지 한 뒤 착륙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별일 아닌데 승객에게 "기도하라" 하고 "브레이스(충격 방지 자세)"를 요구했다는 겁니다. 국토부의 조사 결과를 지켜볼 일입니다.

제주항공은 이번 비행을 1시간 넘게 지연해 출발했습니다. 그 이유 역시 자동항법장치 이상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제주항공 측은 처음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에겐 "항공 당국에 서류를 전달하는 일상 업무가 늦어져 지연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상공에서 문제가 일어나 회항까지 하게 만든 장비가 출발 전에도 이상이 있어 점검했었다는 건데, 이런 사실은 숨긴 겁니다. 역시 국토부의 조사 결과를 지켜볼 일입니다.
회항 제주항공 여객기 출발 전에도 '이상 징후'
● '저가 항공 사고'로 치부할 일 아냐…프로는 프로다워야

제주항공은 국내 2위 국적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회사입니다. 이번 사건을 그저 '저가 항공에서 벌어진 사고'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하고, 일을 잘 못 했으면 비판도 받아야지요. 그래야 교훈이 남고 목숨 달린 일에서 사고를 예방하는 겁니다. 이번 사건은 당국과 모든 항공사들이 항공 안전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입니다.

제주항공이 사고 이틀이 지난 어제 "(승객) 불편을 겪게 한 점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한 점은 다행입니다. 제주항공은 "회항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철저하게 분석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운항 체계 개선 등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또 하나 특기하고 넘어갈 건 승객들의 침착함입니다. 공포의 순간에도 승무원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습니다. 기도하라는 등의 지시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떠나, 기내를 통제하는 승무원들을 따르는 성숙한 소비자의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승무원이 '서비스 제공'과 '안전 책임'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갖고 있지만 비상 상황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신속하고 단호하며 결정적인 안전관리 본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항공업계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해하는 승객이 다수가 됐다는 것을 확인한 점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내 안전은 함께 비행하는 모두에게 달려 있다는 당연한 상식을 다시금 깨우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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