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안타까워서 충고하는데…" 상대도 원했던 걸까?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SBS 뉴스

작성 2019.10.25 11:00 수정 2019.10.29 10: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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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꼰대' 15편: "안타까워서 충고하는데…" 상대도 원했던 걸까?

'이 친구, 완전 반골이군.'

대구지사 점검을 나갔다 그곳 관리팀장인 송 과장을 만나고 든 생각이다. 내가 한 마디 하면 두 마디를 하고 지적을 하면 번번이 그건 아니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한 마디도 지려고 하지를 않는다.

참 대단한 놈이다. 똑똑한 것 같기는 한데 실무자도 아니고 과장이 저러니 당황스럽다. 대구지사장도 옆에서 무안했는지 좀 쉬었다 다시 하자고 한다. 그리고는 송 과장이 자리를 뜨자 나를 달래듯 한마디 한다.

"김 팀장, 송 과장을 이해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 생각이 확실하잖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저랬다. 내가 대리, 과장일 때는 송 과장보다 더했던 것 같다. '지들이 뭘 제대로 알아?'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직속 상사와 많은 마찰을 일으켰고 당연히 그들은 날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변한 것 같다. 남들은 이제 회사에서 잘리면 갈 데 없는 나이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변한 걸 가지고 정신승리 한다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심 이제 철이 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명'(正名)의 뜻을 깨우쳤다고 생각한다. 바를 정, 이름 명으로 이루어진 이 단어가 말하는 바는 '이름'대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이름'대로 올바르게 대우해주라는 거다. 이름대로 올바르게 대우해주라는 말을 직장 생활에 적용하면, 팀장은 팀장에 걸맞게, 임원은 임원에 걸맞게 존중하라는 뜻일 거다.

그 사람이 그 자리까지 올라간 데에는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혹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그걸 무시하고 내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럴 때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일의 성과를 내려는 목적 외에 다른 감정이 들어가 있고는 했다. '내가 직위는 당신보다 낮지만 능력은 당신보다 낫다'는 교만함, 그리고 그걸 드러내고 싶은 마음. 때로는 '나는 당신보다 더 윗사람과 상대할 거다', '절대로 손해 보거나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거다' 같은 생각도 했다.

결국 난 조직에서 퇴출되었다. 본사 핵심 부서에서 졸지에 지방 말단으로 쫓겨났었으니 말이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지금도 '자기 뜻대로 하는 팀장', '입바른 소리 하는 팀장'으로 알려져 운신의 폭이 좁다. 나는 많이 변했는데, 과거의 이미지가 아직도 나를 옭아매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과거를 후회하는 이유는 그 과정 속에서 나 스스로가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확 질러는 댔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불이익받을까 봐 속으로는 전전긍긍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고 그것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의 과거를 떠올리다 보니, 송 과장에게 충고를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겪어봐서 누구보다 잘 아니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구지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송 과장을 따로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송 과장, 점검 온 나한테 왜 자꾸 가르치듯 말하는 거지?"

그가 놀란 표정으로 반박하려는 것을 막고, 내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당신이랑 '같은 과'라서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야. 다른 사람 같으면 굳이 불편하게 싫은 소리 안 하지."

내 딴에는 진심 어린 충고를 이어갔다.

"이건 정말인데, 당신이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요. 회사 생활 오래 하다 보니 그런 게 결국 다 손해더라고. 나 같은 우를 범하지 말라고. 윗사람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도 아닌데, 존중해서 듣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지. 계속 '그게 아니라'라는 말부터 꺼내면 어떡하나."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잠자코 듣기는 했다. 우리는 어색한 대화를 마무리 짓고 다시 점검 작업을 재개했다. 이후 송 과장은 지적 사항에 대한 '반박 릴레이'를 멈췄다.

내 충고를 받아들인 것일까? 더럽지만 꾹 참고 있는 건가? 그 속을 어떻게 알랴? 점검을 마치고 송 과장과 담당자들이 나간 뒤 나는 지사장에게 아까 송 과장과 나눈 얘기를 간단히 전했다.

지사장은 말했다. "하하, 고마운 말인데 송 과장이 받아들일까 모르겠네. 그런데 당신도 꼰대 다 됐네. 젊은 친구들에게 당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말이야."

저녁 식사 후 숙소에 돌아와 쉬는데, 송 팀장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꼰대가 다 됐다'는 지사장의 말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심란했다.

요즘 많이 되새기는 말 '정명'. 그런데 남에겐 다른 사람을 이름대로 올바로 대우하라고 충고하는 나는 정작 지금 이름대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걸까? 요즘 '직장 선배'나 직장 상사'라는 이름 안에 '충고해주는 혹은 충고할 수 있는 관계'라는 뜻이 포함돼 있는 걸까? 그걸 잘 모르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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