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부국 중 하나인 칠레에서 지하철 요금이 우리 돈으로 50원 오른 것을 계기로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현재까지 18명이 숨졌습니다.
레바논에서는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 이용자에 하루 20센트, 한 달 6달러의 세금을 부과했다가 일주일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수개월간 세계 곳곳에서 이처럼 비교적 사소한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시위는 소셜미디어를 매개 삼아 모인 불특정 다수가 벌인다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발생국들은 모두 특정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습니다.
국민의 민주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소수 정치 계급이 부를 독차지하며, 젊은 세대가 살아가기 힘든 나라들이란 점입니다.
지난 17일 외신 인터뷰에서 자국의 사회적 안정성을 자랑했던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그 이튿날부터 수십 년래 최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자 "강력하고 인정사정없는 적에 대항한 전쟁"까지 언급하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레바논의 사드 하리리 총리는 정치권을 향한 시민의 분노가 뜨겁게 타오르자 급히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시위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이셸 제도의 호화 리조트에서 만난 비키니 모델에게 1천600만 달러(187억 원) 상당의 선물을 했던 과거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주 메신저 앱 프로그램에 대한 과세를 발표하자 정치 엘리트의 부정부패에 신물이 나 있던 레바논 국민은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레바논은 1975∼1990년 내전의 상흔이 여전하고 35세 미만 청년의 37%가 무직일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주요 정치인을 포함한 상위 0.1% 부자들이 국민소득의 10분의 1을 차지한 채 사치를 즐겨왔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치 전문가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는 최근 들어 가시화한 것일 뿐 이런 형태의 시위는 꾸준히 늘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세계 경기 둔화와 빈부격차 심화, 청년실업률 상승으로 좌절하고 분노한 젊은 세대가 민주적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정부를 변화시킬 수단은 거리 시위가 유일하다고 믿게 됐다는 것입니다.
중동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은 미국에서 낡은 정치체제에 대한 회의가 선거에서 포퓰리즘이나 민족주의 득세로 나타나는 것처럼 "국민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른 나라에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칠레와 아이티,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중남미에서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진 데는 원자재 주도 경제 구조로 인한 경기 급등락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0~2010년 원자재 가격 인상 등에 힘입어 호황을 누렸다가 갑자기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일제히 경제난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했던 것이 충격을 가중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양극화와 세대 갈등에 가까운 양상을 지닌 탓에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과거처럼 종파적, 이념적 차이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