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의 전제 조건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9.10.23 16:00 수정 2019.10.23 23: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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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바뀐다. 하지만, 때론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보이는 풍경이 바뀌기도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위치를 이동하면, 자신에게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 이후 '윤석열 체포'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과 몇 개월 전에는 윤석열 지키기에 앞장섰다.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 후보자의 거짓말 의혹을 보도했던 뉴스타파에 대해 비판과 후원 중단으로 응답했던 사람들은 이제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 비판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반 시민들 뿐만이 아니다.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 엄호에 앞장섰던 한 여당 의원은 이제 검찰 비판의 최선봉에 서 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까지 서슴지 않으며 조국 전 장관 일가를 보호하며 검찰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만의 드라마틱한 변화다. 이런 변화는 검찰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검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 조국 사태가 낳은 기준의 재정립

조국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가치의 기준이 재정립되고 있다. 고위공직자나 고위공직자 후보자는 '합법적 불의'에도 국민께 사과하고 자리를 내어놓아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 합의는, 범죄적 혐의라고 해도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화여대 특혜입학 비리해명 촉구 교수 학생 행진국정농단 사태의 시발점이 됐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시 비리 의혹 당시 많은 국민들은 외견상 보이는 불의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불법성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것 만으로도 비판의 목소리는 충분히 높았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겪으며 합법적 불의는 불법은 아니지 않느냐, 입시 문제에 대대적인 수사력을 투입하는 것이 맞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몇 년 전 정유라 씨와 최순실 씨를 비판했던 사람들에게서다.

불과 몇 개월 전 전직 대통령과 소위 적폐 세력, 재벌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이제 검찰을 '적폐'로 규정하고 있다. 몇 개월 전엔 환호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적폐로 규정된 사람들은 거의 동일한 사람들이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들이 바뀐 것일까,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뀐 것일까.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언론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국정농단과 적폐 수사 당시, 때론 무리한 보도를 하기도 했던 언론에 박수를 보냈던 시민들은 이제는 정당한 의혹 제기까지 폄훼하고 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여러 사람을 탐문하며 취재하던 모습을 칭찬했던 국민들은 음식 배달원을 상대로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보내고 있다.

핵심 참고인이자 피의자인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 사람의 주장을 충분히 싣지 않았다는 데 많은 시민과 유튜버 언론인, 유사 언론인들이 비판하고 있다. 해당 인터뷰이의 진술이 사실과 부합하는지를 크로스 체크하고, 의견과 사실을 분리해 사실관계 위주로 보도를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이 우리 편에 대한 유불리가 생각의 기준이 됐다. 이런 주장과 비판 대로라면, 국정농단 사건 당시 최순실 씨나 박근혜 전 대통령 측 주장도 확인이나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됐어야 하지만, 그런 주장을 들어보진 못 했다.

물론, 언론은 독자를 탓할 수 없다. 바뀐 상황에 동조해 자아 비판과 타자 비판에 열을 올리는 언론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검찰 취재에 목을 매었던 일부 언론사와 일부 언론인은 지금은 과거부터 검찰발 뉴스에 대해 문제 의식이 있었다며 얼굴색을 바꾸고 있다. 조국 사태로 사회의 기준이 재정립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잃어가고 있다.

● 개혁의 전제가 되어야 할 '일관성'

조국 전 장관 사태를 겪으며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참패가 국내 프로축구 흥행으로 이어졌던 아이러니의 데자뷔 같기는 하지만, 개혁은 언제가 되었든 이뤄져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쥔 검찰 권한의 분산은 필요하다. 권한이 분산 돼 상호 견제하게 된다면, 검찰의 편의적 권한 행사는 줄어들 것이다. 포털 중심의 국내 뉴스 유통 구조가 바뀐다면, 언론의 무리한 속보 경쟁과 선정성 경쟁은 줄어들 것이다. 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옳다면, 개혁은 언제 진행되더라도 옳다.

그런데 검찰 개혁이 되었든, 언론 개혁이 되었든 전제 되어야 할 것이 있다. 일관성이다. 개혁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 시각의 일관성, 개혁 대상의 운용에 대한 평가의 일관성 등이다. 이런 일관성의 부재가, 개혁이 우리 사회에서 상시적으로 필요한 상황을 만든 건 아닐까. 일관성이 상실된 이중 기준, 우리 편엔 관대하고 상대방에겐 가혹하게 들이댔던 기준 때문에 '개혁'은 진영을 바꿔 가며 계속해서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 '공수처 설치'가 검찰 개혁의 해답이 되려면

지금 정치권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선 '공수처 설치'가 검찰 개혁의 해답처럼 논의되고 있다. 불과 1년 전 검찰의 특수 수사를 명문화했던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해당 논의가 전개되고 있고, '조국 수호'에 목소리를 높였던 시민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검찰 권한을 분산 시킨다는 측면에서 공수처 설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기소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이냐, 공수처장은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는 논의도 충분히 의미 있다. 하지만,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해답으로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선 공수처 운용에 대한 평가의 일관성이 담보 되어야 한다.
공수처 찬성 집회최근 조국 사태처럼 열렬히 환호했던 검찰을, 우리 편에 칼을 들이대자 개혁의 대상으로 규정한다면, 공수처가 우리 진영에 칼을 들이댈 때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공수처를 바라보는 시각의 일관성, 평가의 일관성이 담보 되지 않으면 검찰 개혁의 해답이라는 공수처가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 개혁'이라는 현재의 구호가 언젠가는 '공수처 개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언론 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향한 보도에는 열광하다가, 그 보도가 우리 편을 향할 때 비난한다면 언론 개혁은 요원해진다. 언론의 취재 관행, 기사 작성 관행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면 단언컨대 언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개혁은 있을 수 없다. 모두를 위한 개혁이 있을 뿐이다. 우리 편을 위한 개혁, 상대를 겨냥한 개혁은 개혁이라는 외피를 둘렀을 뿐 정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상대방에 유리하고 우리 편엔 불리하더라도 내용이 맞다면, 시기적으로 우리 편에 해가 되고 상대방에게 득이 되더라도 개혁의 동력을 살리기 가장 좋은 시점이라면 개혁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개혁 논의는 어디에 서 있나.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