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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평양 올림픽 물 건너갔다"

[취재파일] "서울-평양 올림픽 물 건너갔다"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19.10.18 09:01 수정 2019.10.23 17: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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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와 서울특별시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가 큰 암초를 만났습니다.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남북 대결의 여파 때문입니다. 대한축구협회,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는 지난 7월 17일 2차 예선 조 편성 확정 이후 다각적인 경로를 통해 북한 측에 '붉은 악마' 응원단 파견, 취재단 파견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측은 답변을 제때 하지 않은 채 거의 3개월이나 질질 끌다가 막판에 가서 중계 방송까지 거부했습니다. 결국 응원단-취재진-중계 방송 3가지가 없는 이른바 '3무 경기'가 된 것입니다.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 평양 남북전 무관중 경기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아시아축구연맹(AFC) 규정상 2차 예선 중계권은 홈팀이 보유하게 돼 있습니다. 즉 이번 남북 대결의 중계권이 북한축구협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생중계는 물론 녹화 방송 등 어떠한 중계도 허용하지 않은 것은 국제 스포츠계 상식상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취재단과 응원단의 입북까지 막은 것은 AFC 대회 운영 지침 <제33조 2항>을 위반한 것이 분명합니다.

한 술 더 떠 북한은 자국 주민의 입장마저 허용하지 않고 '무관중 경기'를 강행했습니다. 더군다나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직접 관전하는 상황인데도 김일성 경기장에 단 1명의 관중도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인판티노 회장은 "역사적인 경기인 만큼 관중석이 가득 찰 것으로 기대했는데, 경기장에 팬들이 한 명도 없어 실망스러웠다. 경기 생중계와 비자 발급 문제, 외국 기자들의 접근 등에 관한 여러 이슈를 알고 놀랐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명백히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북한 측의 몰상식한 태도를 비난했습니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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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깜깜이 경기'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전 개회식에 참석해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은 공동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서울시민과 체육인들께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 개최를 위해 다시 한번 앞장서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할 만큼 강한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공동 유치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국내 체육계 인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 유치 명분이 사라졌다

2032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원하는 도시 가운데 선두주자는 단연 호주 브리즈번입니다. 브리즈번은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데다 세계인들의 축제를 즐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안전한 도시입니다. 이에 반해 평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핵무기', '독재 국가', '3대 세습' 등 온통 부정적인 것뿐입니다. 인프라에서도 평양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평양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남북 화해를 통해 세계 평화 증진에 기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준 북한 측의 태도는 남북 화해와 세계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지난 2월 우리 측과 약속한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관련 여러 합의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평양이 공동으로 올림픽 유치에 나설 명분이 약해지면서 IOC 위원들을 설득할 무기가 사라진 것입니다.

● 올림픽 개최국 자격 없다

올림픽 개최국은 각국 선수단은 물론 외국 관광객에게 자유로운 왕래와 통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외국 취재진과 관광객이 평양 뿐 아니라 인근 도시들도 제한 없이 돌아다녀야 하고 북한에서 자국으로 전화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도 아무런 제약이 없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보면 한국 선수단은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사실상 '감금 생활'을 해야 했고 문자 중계를 하는 데도 조선시대 '봉화'를 연상케 할 만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올림픽 개최국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 경쟁 도시가 비판하면 속수무책

북한은 이번에 국제 스포츠계 관례와 상식, 그리고 규정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2032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될 예정인데 경쟁 도시들이 이번 평양 경기를 지적하면서 '평양 개최 불가론'을 들고 나오면 우리 측이 어떻게 변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런 국가에서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느냐?"고 따지고 나올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취재진과 응원단 거부에 '무관중 경기'라는 횡포를 저지르는 집단에게 세계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개최권을 줄 리는 만무합니다.

● 공동 개최 지지율 추락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반북 정서'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입에서 "안 다치고 온 게 다행"이란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원정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을 유치하려면 투표권을 쥔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IOC 위원들이 개최 후보도시의 객관적인 조건 외에 주목하는 것이 주민 지지율입니다. 강원도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경쟁 도시들을 압도하는 주민 지지율이었습니다. 평창의 경우 올림픽 개최 지지율이 90%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행태가 계속될 경우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 지지율이 매우 낮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연아가 성화를 점화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사진=연합뉴스)
● 천문학적 비용, 우리가 거의 부담

서울시가 지난해 서울시의회를 통해 제출한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 유치 동의안'에 따르면 서울과 평양에서 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비용으로 34억 달러(약 4조 원)가 책정돼 있습니다. 이는 다만 개회식과 폐회식, 경기장 보수, 경기 운영 등 순수 운영 예산만 반영한 결과로 올림픽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도로와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 비용은 제외됐습니다. 북한의 전반적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상황을 감안할 때 공동 올림픽을 개최할 경우 천문학적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비용을 대한민국 정부와 서울시가 부담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 국민이 선뜻 수용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최악의 '평양 원정' 사태가 벌어지자 남북 공동 올림픽 유치를 실무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대한체육회도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북한이 2020년 남북 단일팀과 관련해 지난 2월에 했던 기존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데다 이번 남북 대결로 국내 여론이 악화돼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에 난관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만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연합뉴스)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남북 스포츠 교류가 꽉 막힌 가운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오늘(18일)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가 열리는 카타르 도하에서 북한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정수 체육성 제1부상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기흥 회장은 난항에 빠진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 문제와 관련해 북한 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 준비 계획도 논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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