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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헤게모니 상실 자초한 문재인 정권…'중도층'의 선택은?

[취재파일] 헤게모니 상실 자초한 문재인 정권…'중도층'의 선택은?
● 안정적이던 문재인 정권 헤게모니의 급속한 상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41%입니다. 하지만 집권 직후부터 국정운영 지지율은 치솟았고 그 뒤 2년여 동안 부침은 있었지만 50%를 넘는 안정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해왔습니다. 이런 안정적인 지지율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찍지 않고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특히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후보를 선택했던 이른바 '스윙보터–중도층'이 문재인 정권을 '비판적 지지'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문 대통령이 '국정운영 잘한다'는 응답이 67%가 나왔던 지난해 2월 설 명절 SBS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54%, 유승민 후보 지지자의 55%가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한다'고 답했습니다.

<2018년 SBS 설 특집 여론조사>
김정윤 취재파일 표1
[2018년 SBS 설 특집 여론조사 / 조사기관 : 칸타퍼블릭, 조사기간 : 2018년 2월 11일~14일, 조사방법 : 성인 1051명 유무선 RDD 전화조사, 응답률 : 12.4%, 오차한계 : 95% 신뢰수준에서 ±3.0%p, 상세 결과표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

그런데 이번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나온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다시 지난 대선 때 득표율 수준으로 주저앉은 모습입니다. 열성적인 지지층 외에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받쳐주었던 '스윙보터–중도층'이 대거 '이탈'했다는 해석들이 많습니다. 이런 흐름은 여론조사 결과로도 확인됩니다. 지난달 추석을 맞아 SBS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를 찍었던 이들 중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지지율은 23%, 유승민 후보 지지층은 18% 선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2019년 SBS 추석 특집 여론조사>
김정윤 취재파일 표2
[2019년 SBS 추석 특집 여론조사 / 조사기관 : 칸타퍼블릭, 조사기간 : 2019년 9월 9일~11일, 조사방법 : 성인 1026명 유무선 RDD 전화조사, 응답률 : 11.1%, 오차한계 : 95% 신뢰수준에서 ±3.1%p, 상세 결과표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

이는 문재인 정부가 '헤게모니'를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년여를 돌아보면, 문재인 정부 정책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촛불'로 집권한 정권이라는 정당성과 문재인 대통령 개인 캐릭터가 갖고 있는 높은 신뢰성을 바탕으로, 정권의 성격보다 조금 더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국민들의 '비판적 지지'를 얻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반대 진영은 '적폐' 혹은 '친일' 등의 프레임으로 압도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2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조국 사태'로 이 안정적인 헤게모니는 급속하게 상실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진지(陣地)가 거의 허물어져 있던 정치적 반대 진영은 이제 '조국'을 지렛대로 무너진 진지를 순식간에 다시 회복함은 물론 굳건하게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우파 집회는 늘 있었지만 유력한 '정치적 시민권'은 갖지 못했었는데 불과 두 달 사이에 강력한 시민권을 회복한 것이 이를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급속한 전환은 현재의 보수 야권이 무엇을 잘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서가 아닐 겁니다. '조국 강행'을 택한 문재인 정권이 헤게모니 상실 상황을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지난 총선 서울 ⅓이 5%p 이내 '박빙'…'스윙보터-중도층' 9백만의 선택은?

여권으로선, 문제는 총선이 불과 6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일 겁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다시 돌아보면, 당시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달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단독 개헌선인 2백석도 넘을 거라는 전망까지 있었고요. 그런데 정작 4월 13일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이 과반은커녕 2당으로 전락한 것이었죠.

당시 최종 득표율을 분석해 봤더니, 득표율 5%p 안쪽에서 승부가 갈린 곳이 전체 서울 의석(49석)의 ⅓에 달했습니다. 3%p 이내 초박빙 승부도 서울 지역구 중 20%나 됐고요.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으로 넓혀 봐도 지역구 33곳이 5%p 이내 접전지였습니다. 내년 총선에서도 격전이 예상되는 수도권에선 이렇게 적은 표차로 당락이 엇갈리는 곳이 많을 겁니다.
김정윤 취재파일 표3

박빙 대결에서 승부를 가르는 열쇠는 '스윙보터-중도층'의 선택이란 게 많은 정치학자들의 분석입니다. 특히 민주당 계열과 한국당 계열의 고정 지지층이 확고한 한국 정치에선 '스윙보터-중도층'의 결정력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전체 유권자의 20%에서 40%가량 차지한다고 보는 '스윙보터-중도층'의 여론이 어디로 흘러가느냐, 더 구체적으로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를 찍은 700만 명, 유승민 후보를 찍은 220만 명, 도합 9백만여 명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거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물론 현재 야권의 통합/재편 상황에 따라 변수가 있겠습니다만)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조국 법무부 장관
● 헤게모니를 쥘 쪽은 어디?

여권은 스스로 상실한 헤게모니를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요? '나라도 두 동강, 진보도 두 동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친문'이라 불리는 열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선거를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일 겁니다. '조국 사태'로 등 돌린 '스윙보터-중도층'을 다시 끌어와야 할 텐데 그럴 수 있는 전략이 있고 제시할 비전이 있는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스윙보터-중도층'의 동의를 다시 얻어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의 승리를 한다면 정권의 후반기도 안정적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헤게모니 재구축에 실패한다면 또다시 후반기가 불행했던 과거 정권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을 겁니다. 현 정권이 내세웠던 각종 '개혁' 공약들은 보수야당의 문제제기에 꽁꽁 묶이고, 그럴수록 정권은 꼭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지요.

보수 궤멸까지 거론되다가 '조국 사태' 덕분(?)에 진지를 회복하고 재구축한 보수야권은 중도층을 끌어와 새로운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정치 구도 측면에선 야권의 재편과 통합이 있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윙보터-중도층'에게 제시할 수 있는 보수의 새로운 미래 전략과 비전을 갖춰야 가능한 일일 겁니다. '무능'·'적폐'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새롭고 능력 있는 인물들을 얼마나 어떻게 수혈하느냐도 관건일 거고요. 보수야권 역시 내년 총선에서 반등을 넘어 새로운 헤게모니 형성에 실패한다면 다음 대선을 바라보기도 쉽지 않게 될 겁니다.

양 진영 외 새로운 헤게모니의 등장 가능성은 있을까요? 바른미래당은 내분으로 정신없어 보이고 아직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역량은 부족해 보입니다. 보수야권 통합의 길로 갈지, 독자 정립으로 갈지도 불분명해 보이고요. 정의당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오히려 '진보정당'으로서의 길을 잃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진보진영 안에서조차 나오고 있습니다. 공정과 정의, 기득권 등의 문제에서 노동자와 새로운 세대에게 '민주당과 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심지어 일각에서는 전혀 새로운 한국적 극우의 출현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합니다. 유럽 등지에 등장한 젊고 스마트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극우세력처럼 한국적 상황에 맞는 '新극우'의 탄생 가능성 말이지요. 경제·사회적 불평등 심화하고, 계층 이동은 가로막히고, 약자와 타자에 대한 배타성이 커지고 있는 한국 사회 모습들을 보며 최소한 극우 등장의 '토양'은 형성된 것 아니냐, 다만 인물이 없을 뿐이지라는 냉소적 분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소한 이런 가능성은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이 여전히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조국 장관이 불러일으킨 사태가 한국적 파시스트의 출현으로 이어진다면, 그 또한 하나의 비극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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