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태형과 구속…조국에 봉사하는 '명분'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9.10.11 15:32 수정 2019.10.11 16: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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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태형과 구속…조국에 봉사하는 명분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는 아직도 태형 제도가 존재합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볼기를 몽둥이로 때리는 고전적인 형벌입니다. 인권단체들을 태형이 지나치게 잔인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신체형을 금지하는 국제법에도 위배된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폐지 주장에 동의하시는 분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 불공정성의 문제와 논점 일탈의 오류

그런데 태형 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어느 나라에서 법무부 장관의 동생이 태형에 처하기로 규정한 일을 저질렀는데도 형을 받지 않고 풀려난 일이 벌어졌다고 합시다. 지난 3년 동안 같은 행동을 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 태형을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두고 '태형은 폐지되어야 하는 잔인한 형벌이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의 동생에게라도 태형 금지의 원칙이 관철된 것은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상일까요, 아니면 '같은 일을 저지른 다른 사람에게 예외 없이 집행된 태형이 왜 법무부 장관의 동생에게만 실시되지 않는 것인가'라며 불공정함을 비판하는 것이 상식적일까요?

저는 후자가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태형으로 인한 인권침해는 법무부 장관의 동생에게만 태형이 적용되지 않은 상황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쟁점은 제도가 누군가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불공정성인데, 갑자기 불공정성과 별개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논점 일탈의 오류입니다.
법원현실에서는 처벌 수단으로 기능하는 '구속'

갑자기 태형 문제를 꺼낸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 동생에 대한 법원의 이례적인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형사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는 것이 적절하다는 '불구속 수사의 원칙'에 동의합니다. 구속이 처벌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것이 부당하다고도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도 구속이 실질적 처벌 수단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개선하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글을 쓰겠습니다.)

그럼에도 구속이 사실상 처벌로서의 효과를 가지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입니다. 영장이 발부돼 구속된 피고인은 대부분 수개월 이상 구치소에 수감됩니다. 수개월 간 징역형을 받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구속된 피고인은 나중에 징역형이 확정될 경우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기간을 징역형을 복역한 기간으로 계산해줍니다.) 사회적 낙인 효과 역시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구속은 단순히 수사 수단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유·무죄 선고이며, 구속은 처벌의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시길 권합니다. 구속된 상태로 6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다가 무죄 판결을 선고받는 경우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유죄를 선고받고 벌금형이나 집행유예형을 받는 경우 중 어느 편을 선택할지 물어보면 어떨까요? 아마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지 않고 벌금형을 선고받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이것만 놓고 봐도 구속이 현실적으로 처벌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조국의 동생● 조국 장관 동생에 대한 극히 이례적인 영장 기각

조국 법무부 장관의 동생 조 모 씨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현실에서는 실질적으로 처벌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구속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 씨의 상황을 살펴보면 대단히 이례적인 점을 다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조 씨는 영장판사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인 영장심사 출석을 포기했습니다. 조 씨의 구속 여부를 판단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조 씨와 같이 구속영장심사 출석을 포기한 피의자에 대해 한 명의 예외도 없이 100%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당연히 조 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조 씨는 조국 장관 일가가 운영하는 사학재단인 웅동학원의 사무국장이었는데, 조 씨의 지시를 받고 교직원 채용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하급자 2명은 조 씨보다 앞서 구속된 상태였습니다. 금품 수수 범죄에 있어서 지시를 받은 하급자보다 지시를 한 상급자의 죄질을 나쁘게 보는 법원의 태도에 비춰볼 때도 조 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매우 유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명재권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조국 장관의 동생 조 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이 같은 결과는 2015~2017년간의 3년간의 통계, 그리고 하급자들이 구속된 상황에 비춰볼 때 분명히 이례적이고,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극히 예외적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 수술을 앞뒀다는 조 씨의 건강 상태, 조 씨가 교직원 채용 비리 관련해서는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기각 사유는 이례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평범합니다. 이 같은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되는 것이 정상적이라면, 구속영장심사를 앞둔 피의자들은 일단 허리 디스크 수술을 예약한 뒤 영장심사를 포기하고 대신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게 될 것입니다. 구속영장 발부를 피하는 길일 테니까요. 하지만 단언컨대 조 씨와 같은 행운은 다른 '일반 피의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동원되는 명분들

이같이 명백한 불공정한 상황을 두고서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국 장관의 동생이 실질적인 처벌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구속을 피한 상황의 불공정성 대신, 구속이 처벌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현실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며 조 장관의 동생에게 원칙이 충실하게 적용된 것을 두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식의 반응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태형의 비유로 돌아가면, 태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된 범죄를 저지른 장관의 동생이 태형을 받지 않은 일이 발생했는데, 이 사태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태형 제도의 인권침해 요소를 비판하는 셈입니다. 제도 비판을 위한 명분과 원칙이 제도의 불공정한 운용이라는 문제를 가리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모습입니다.

저는 조국 장관 사태를 둘러싸고 유독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 장관 일가와 관련된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이들의 문제를 다루는 현재의 방식이 문제라는 원칙적으로는 정당한 '대의명분'을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고 나서는 상황 말입니다.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검찰 출석이 다가오자 피의자 공개 소환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공개 소환제도가 폐지됩니다. 조 장관 일가의 범죄 혐의를 언론이 적극 보도하자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을 내세우며 피의사실 공표 금지 관련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강화하는 작업이 신속하게 추진됩니다. 검찰 특수부가 직접수사를 통해 조 장관 일가를 수사하자, 검찰 특수부의 직접 수사에 문제가 많다고 질타하며 특수부 축소 방안을 이끌어 냅니다. 심지어 기존의 입장과 달라진 이야기를 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중요한 명분들이 조국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동원되는 것입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원칙이 중요한 이유

불구속 수사의 원칙, 피의사실 공표 금지, 검찰 직접 수사 축소. 모두 우리 사회의 사법제도와 수사 관행이 진전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정당하게 해결책을 찾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들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과제, 이 같은 명분과 원칙들이 지금 조국 장관 가족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갑자기 일제히 동원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붕은 언제라도 기회 될 때 고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냉소와 방관 속에 특정 사람들의 의견만 반영해서 과제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이 과제들이 품고 있는 대의명분을 훼손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상황이 바뀌고, 권력을 잡은 세력이 교체되면, 부당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해치운 문제들은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더욱 나쁜 모습으로 악화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의명분이 있는 중요한 과제들을 이런 방식으로 이용하면 안 됩니다. 조국 장관이 자리를 지키느냐 물러나느냐보다, 개혁과제들의 정당성이 유지되고, 문제들이 정상적이고 올바른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충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