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대한민국은 산재공화국…법원 판결 이대로 괜찮나?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19.10.11 11:02 수정 2019.10.11 14: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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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71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하루 평균 2.6명, 노동자 1,000명당 5명꼴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현실, 과연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우리는 보통 산재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사업주가 노동자 안전을 위한 투자에 최선을 다할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업주는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경제적 선택'을 한다.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받는 형사처벌의 수준, 민사소송에서 지급해야 할 피해배상액의 규모 등을 고려해 얼마만큼 투자를 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그럼 먼저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받는 형사처벌의 수준을 보자. 지난해 인천지방법원에서 선고된 사건(2018고단6359)에서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사업주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회사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정한 양형기준 권고형의 하한보다도 낮은 형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의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명시하고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턱없이 낮은 양형의 이유로 제시했다.

…피고인들이 범행을 자백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피해자의 유족에게 요족급여(필자 추가: 유족급여의 '오타'라고 보임) 및 장의비로 일정 금원이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이 동종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이게 정말 산재사망사건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할 만큼, 양형기준의 권고형의 하한보다 낮은 형을 선고할 만큼 유리한 사유일까? 본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20대의 노동자가 죽었는데, 자백과 반성을 하지 않는 사업주가 있을까? 산재보험은 모든 사업주가 가입해야 할 의무사항이고, 산재를 통해 유족들이 받는 유족급여는 1,300일 치의 임금에 불과한 최소한의 보상인데, 이게 왜 유리한 사유로 언급되는 것일까? 생명은 단 하나 뿐이고 그 생명이 앗아간 이 사건에서 동종전과가 없다는 것이 집행유예를 해 주어야 할 만큼 유리한 사유일까?

유감스럽게도 이런 판결문은 대한민국에서 특이한 판결이 아니라 보편적인 판결이다. 지난 10년 동안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0.5%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걸 말해준다. 현재 산재사망사건에 대한 법원의 양형기준은 사업주로 하여금 어떤 경제적 선택을 하게 만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형사처벌 수준이 그러하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어떠할까? 산재사망사건 발생 후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 액수가 크다면 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 노력을 기울일 동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원은 1991년도 전국 손해배상 전담 재판부 재판장회의 논의 결과 산업재해와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사건의 위자료 기준을 3,000만 원으로 정한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5년 그 기준액을 1억 원으로 정할 때까지, 산재피해사망사고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지급받을 수 있는 위자료 액수를 교통사고와 동일시하고 있다.

'사람이 사망했는데 위자료가 10억이 아니라 왜 1억일까?'라는 문제 제기는 차치하고라도, 산업재해와 교통사고의 위자료 기준을 동일시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일까? 교통사고는 일반적으로 계약관계 없는 상대방 차량 운전자의 과실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이고, 산재사건은 피해자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고용)에 있는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인데, 그 정신적 고통에 대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까? 세월호 참사를 단순 교통사고에 비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재해 또한 교통사고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늘도 사업주는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여 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설비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현재 상태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집행유예 선처를 받을 수 있고, 위자료로 최대 1억 원만 배상해 주면 되는 현실에서 사업주가 더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걸 현재 법원의 태도로 막아낼 수 있을까?

노동청의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가해자를 더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현행 법원의 태도가 유지되는 한 대한민국은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법원은 이제부터라도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숙고하고, 시민들과 함께 합리적인 양형기준과 위자료 기준을 정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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