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시달리다 '부부 살인'…정당방위 인정될까?

정혜경 기자 choice@sbs.co.kr

작성 2019.10.06 20:58 수정 2019.10.06 22: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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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몇십 년을 함께한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대해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집중 보도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6일)은 오랜 시간 폭행에 시달린 피해자가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 정당방위로 볼 수 있는지 판결문들을 살펴봤습니다.

정혜경 기자입니다.

<기자>

그날도 남편은 귀가한 아내를 폭행했고 37년에 걸쳐 흉기까지 동원된 폭행을 당했던 A 씨는 남편을 살해했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뒤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는 증거와 가족들 증언이 제출됐지만 법원은 끝내 '정당방위였다'는 A 씨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SBS 마부작침 분석 결과 최근 내려진 부부 살인 관련 판결 중, 1, 2심을 포함해 정당방위가 언급된 건 모두 11건, 이 가운데 정당방위가 인정된 건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피고인이 두려움보다 분노를 표출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당하던 현장을 떠날 수 있었다는 이유로, 그간 당했던 가정폭력이 심각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정당방위 주장은 기각됐습니다.

법전만 보면 정당방위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성, 상당성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공격과 이에 따른 대응이 얼마나 동시에 발생한 것인지 또 그 대응이 얼마나 합당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해외 법체계에 비해 우리 법이 보수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명숙/변호사 : 어느 한 죄에 대해서만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기본적인 생각에서 더 이상 진도를 못 나가고 있는 것 같고요.]

미국 등 해외에서는 폭력 발생 전이라도 피해자가 충분히 공포심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는지, 누가 먼저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중요하게 따집니다.

[최선혜/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 :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이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한 그 상황만 볼 뿐 이 여성이 어떤 상태에서 이 남성을 사망에 이르게 밖에 할 수 없는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 폭력에 한해, 정당방위를 인정해주는 범위를 넓혀주자는 법 개정도 추진됐으나 국회 논의는 2년 넘게 제자리입니다.

(영상편집 : 김종태, VJ : 김초아·정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