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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부부 살인' 리포트 ③ 58년 함께 살다 '황혼 살인'

[마부작침] '부부 살인' 리포트 ③ 58년 함께 살다 '황혼 살인'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절대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로 그 결과가 매우 중하고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는 중대한 범죄로 피고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부가 되어 수십 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유 없는 살인은 없었다. 길게는 35년 징역형부터 짧게는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까지 다양한 선고가 내려졌다. 생명을 앗아갔다는 중대 결과는 다르지 않지만, 판결문의 '그러나' 다음은 각 사건마다 차이가 있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그러나' 이후에 주목했다. 결혼과 혼인신고를 거쳐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살해하는 비극, '부부 살인' 사건을 판결문을 통해 살펴봤다. 극단적인 결과가 빚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판결문에 나타난 차갑고 건조한 언어를 통해 이면을 들여다보고 비극을 피하고 또 줄이기 위한 방법은 있을지 고민했다.

① 71% 배후에 가정폭력 있었다
② 남편은 15.8년·아내는 7.6년…왜?
③ 58년 함께 살다 '황혼 살인'
④ 37년 시달리다 범행…정당방위 아닌 이유는


● 인생의 황혼에서 맞닥뜨린 '부부 살인'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인 폭행 및 폭언에 시달려왔고, 특히 2007년 피해자가 청각을 잃은 후부터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수시로 피해자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2013년 피해자가 치매 증상을 겪으면서 피해자의 폭행 정도가 더 심해져 이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2015년 1월, 충남 논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58년 동안 혼인 생활을 유지해 오면서 노년에 이른 노부부 가운데 85세 남편이 자기 집에서 살해된 것이다. 더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범인이, 함께 살던 77세 아내였다는 점이었다.

'황혼 이혼'은 결혼 후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오다 나이 들어 하는 이혼을 뜻한다. 정식 이혼까지 가지 않더라도 결혼생활을 끝낸다는 의미로 '졸혼'이라는 말도 이미 십 여 년 전 등장했다. <마부작침>은 '부부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 연령대에도 주목했다.(대법원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피고인 연령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 사건처럼 노년기에 이르러 빚어진 '부부 살인'에 대해 '황혼 살인'으로 명명했다.

● '황혼 살인' 비율 23%... 남편 살해 비율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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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이 세운 '황혼 살인' 기준은 피해자 나이 60세 이상인 사건이다. 피해자가 남편인 사건이 13건, 아내인 사건이 10건으로 합쳐서 전체 100건 중 23건이 '황혼 살인'에 해당했다. '부부 살인' 4건 중 1건인 꼴이다. 피해자 연령은 평균 70.9세로 남편은 72.3세, 아내는 69세였다. 60대와 70대 피해자 남녀 비율이 5:5로 같았고 80대 피해자는 모두 남편이었다.

2018년 결혼한 부부의 초혼 연령은 남편 33.2세, 아내 30.4세이다. '황혼 살인' 피해자와 비교해보면 남편이나 아내 모두 약 4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뒤 비극적인 결과를 맞은 것이다. 각 사건마다 차이는 있으나 과거 초혼 연령은 더 낮았다는 걸 감안하면 '황혼 살인' 당사자들의 결혼 기간은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 황혼 살인 69.6% 배후에도 가정폭력

수십 년을 함께 살며 자녀도 다 키워 놓고 서로 건강에 신경 쓰며 노년의 삶을 여유 있게 보내야 할 시점에 왜 저런 '황혼 살인'이 벌어지는 걸까. '황혼 살인'도 '부부 살인'과 다르지 않았다. 판결문에 가정폭력이 언급된 사건은 23건 중 17건, 69.6%였다.

위에 언급한 2015년 충남 논산 사건의 피고인은, 수십 년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그날도 피해자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폭행 당하자 범행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2013년 7월 전남 해남에서 80대 남편을 살해한 할머니의 '황혼 살인'도 남편의 간병과 생계 유지를 위해 수십 년 간 매우 힘든 생활을 해왔던 피고인을 남편이 폭행하고 무시해왔던 게 원인이었다. 좀 더 가깝게는 지난해 1월 경기도 성남에서도 '황혼 살인'이 벌어졌는데 57년 함께 산 82세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범행 동기 또한 반복적인 남편의 폭행과 폭언이었다.

● 가정폭력, 주변에 도움 요청 1.1%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도 등에 관한 법률'은 가정폭력이 단순한 개인 문제나 가정 내 문제로 치부하기엔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했다는 인식 아래 만들어진 법이다. 이 두 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마부작침>의 '부부 살인' 리포트에서 드러났듯 가정폭력 문제, 특히 살인까지 이어지는 극단적인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왜 그런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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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정폭력 발생시 주변 도움을 요청했다는 응답은 가장 최근 조사인 2016년에도 1.1%, 그 이전에도 한 자릿수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폭력에 당하고도 스스로 해결하려 하거나 참거나 외면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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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주변에 도움 요청한 비율이 낮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으나 이런 조사 내용도 있다. 가정폭력 발생시 도움 요청을 한 대상이 경찰인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2010년에는 그래도 8.3%인데, 2016년에는 이마저 줄어서 2.8%로 나타났다.

● 가정폭력, 도움 요청하지 않는 이유는...

왜 그랬던 것일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조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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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순위로 가장 많이 답했던 이유는(중복답변 가능)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 생각해서'였다. '이 정도 가지고 도움 요청하긴 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다음은 '집안 일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였다. 남편한테, 혹은 아내한테 맞고 산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신고해도 소용 없을 것 같아서'였다. 2018년 10월 이혼한 전 처를 살해한 김 모 씨 사건에서 피해자의 딸은 "너무 무서웠고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 못하고 당하면서 살아왔다, 신고한 뒤에는 경찰이 직접 가해가 아니면 처벌 수위가 약할 거라고 말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공권력에 도움 요청하는 걸 경험을 통해 소용 없다고 판단, 자력으로 피해보려 했지만 이 또한 허사였던 것이다.

이 사건 피해자 유족을 지원했던 한국 여성의 전화 김수정 여성인권팀장은 "극심한 폭력이 있던 날 경찰에 신고했는데 피해자 가족들은 하룻밤이라도 격리되길 바랐지만 가해자가 겨우 두 시간 만에 훈방 조치되기도 했다"면서 "2심 나오기 전에도 혹시 감형될까 봐 유족들은 걱정을 많이 했고 (원심과 같은 형이 나오자) 어떤 면에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가정폭력처벌법 시행 20주년의 평가 및 향후 과제> 논문에서 "폭력으로 멍든 가정을 적절한 개입 없이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것보다는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 보장을 더 우선 가치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특히, 가정폭력의 특성상 피해자의 의사가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왜곡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존재하기 때문에 피해자 의사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적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김민아 디자이너
이유림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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